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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요동백김응하장군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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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미 작성일02-05-18 10:17 조회1,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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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rect.gif위     치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278번지
( 현위치 화지리 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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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rect.gif지정번호 강원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10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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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rect.gif개     요
요동백 김응하 장군묘정비는 조선조 광해군때(1619) 명나라군 주위의 반란을 진입하기 위하여 조선 원군의 좌영장으로 출정하여 이름을 떨친 충무공 김응하 장군의 무훈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9년(1683)에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향교골(전 철원부 서화전리 일봉산 밑 역촌동)에 세운 기념비이다.

화강암의 석재를 사용하여 정면을 응시한 거북이 조각받침을 한 위에 250cm의 높이와 폭 98cm, 두께 33cm의 사면 비석으로 장군의 일대기를 현종 10년(1669) 6월 우암 송시열(좌의정)의 글과 사헌부 지평 박태유의 글씨에 영의정 문곡 김수향의 서제자를 곁들여 제작하였다.

당초에는 화지리 향교골 포충사에 함께 있었으나 6.25의 전화로 인하여 포충사우는 소실되고 비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 고장 출신으로 육군 제3군사령관이었던 이세호 장군이 1974년 2월 사령부 연병장으로 이전보호중 1984년 4월 3일 철원의 유생 및 철원군수의 노력으로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진 곡암산 기슭인 철원읍 화지리 산 1 -1번지에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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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rect.gif시     대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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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rect.gif이     름 김응하(金鷹河)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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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rect.gif개     요
김응하는 1580년 철원군 어운면 갈원동 하갈리에서 안동 김씨인 아버지 김지사(金地四) 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나, 14세에 전염병으로 양친을 잃고 동생 응해(鷹海)와 함께 자라면서 사냥을 즐겨 맨손과 단검으로 범과 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25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에서 변방을 지켰고 31세 때 선천 군수를 하면서 청렴하게 백성을 다스렸다.

1616년 만주에서 누루하치가 후금국을 세우고 명나라를 침범하자 명나라의 원군으로 나가 용감히 싸우던 중 뒤에 숨어 있던 적군의 기습으로 1619년 40세로 전사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요동백(遼東伯)의 벼슬을 내리고 조선에서는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갈리어 철원김씨의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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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철원군청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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