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계일기(竹溪日記) - 눌암 김찬 선조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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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7-03-26 06:33 조회1,532회 댓글2건본문
十四日 辛巳
府啓韓山郡守 姜德瑞無意治官差役之事付之奸吏民甚怨苦請罷○江原監司書狀旌善郡守 李好約棄官罷黜事○余見金宇顒 金瓚因與趙仁得往齊安大君房功城守 義城都正 永城都正 箕城君 李輅及任禮臣 洪仁憲 李逢春 權주 齊會醉罷
1596. 3. 14. 신사.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한산 군수 강덕서는 관청 업무를 다스리는 데 뜻이 없습니다. 부역을 차출하는 일을 간사한 아전들에게 맡겨서 백성들이 매우 원망하니 파직시키소서”라고 하였다. ○ 강원 감사의 서장이 들어왔는데, “정선 군수 이호약이 관직을 버리고 가버렸으니 파직시켜 축출하소서.”라는 내용이었다. ○ 나는 김우옹 김찬을 만났다. 인하여 조인득과 함께 제안대군의 방에 가니 공성수 의성 도정 영성 도정 기성군 이로 및 임예신 홍인헌 이봉춘 권주가 모두 모여 취하도록 마시고 파했다.
初五日 辛丑
陰金瓚拜禮判 趙宗道拜淸風 李燦拜茂朱 李承休拜長城 柳浚拜漢城判尹趙希輔拜禮佐 朴東亮拜戶議 李台濠拜相禮余參副望權僖拜禮正 金虎秀拜司瞻主簿 李隨亨拜博川 鄭穀拜司書 魏天佑拜監察 權悏拜副校理 李廷龜拜典藉 申忠一拜咸判○ 傳曰許震仍任前職
1596. 4. 5. 신축.
흐림. 김찬은 예조 판서로, 조종도는 청풍 군수로, 이찬은 무주 현감으로, 유준은 한성 판관으로, 조희보는 예조 좌랑으로, 박동량은 호조 참의로 임명되었다. 이태호는 통례원 상례로 임명되었는데 나는 부망에 들었었다. 권희는 예조 정랑으로, 김호수는 사섬서 주부로, 이수형은 박천 군수로, 정혹은 세자시강원 사서로, 위천우는 사헌부 감찰로, 권협은 홍문관 부교리로, 이정귀는 성균관 전적으로, 신충일은 함흥 판관으로 임명되었다. ○ 전교하시기를, “허진은 전직에 그대로 유임시키라” 하셨다.
二十五日 辛卯
大雨金瓚拜吏判 黃汝一拜司禦 金晬拜戶判 洪進拜禮判 李繼祿拜刑正 金元祿拜禮佐 沈訔拜錦山 洪耆英拜楊根
1596. 5. 25. 신묘.
큰 비가 내렸다. 김찬은 이조 판서로, 황여일은 세자익위사 사어로, 김수는 호조 판서로, 홍진은 예조 판서로, 이계록은 형조 정랑으로, 김원록은 예조 좌랑으로, 심은은 금산 군수로, 홍기영은 양근 군수로 임명되었다.
閏八月 二十五日 己丑
都體察使及全羅監司密啓入來假都事 成準聽密 旨出去○吏判 金瓚覲親呈辭○李光庭拜接伴使
1596. 8. 25. 기축.
도체찰사와 전라감사가 밀계를 올려 가도사 성준이 밀지에 따라 물러났다. ○ 이판 김찬이 벼슬을 버리고 부모를 뵈옵기를 청하였다. ○ 이광정이 접반사에 임명되었다.
初十日 癸酉
院啓淸州牧使 李巖前任木川與兵使失擅自棄官今又敍用未下而旋卽還授政體苟且請本職及敍用竝改正嘉山郡守 李繼祿短於吏才請遞○忠淸監司狀啓吏判 金瓚辭職疏上送事
1596. 10. 10. 계유.
“가산군수 이계록은 관리로서의 재주가 부족하니 파직 시키소서”라고 청하였다. ○ 충청감사의 서장이 올라왔는데, ‘이조판서 김찬이 사직소를 올려 보낸다.’는 일이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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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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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연재 감사함니다.
덕분에 계암일록에서 이해되지 않던 부분들이 상당히 해소됩니다.
黃汝一에 대해서는 좀더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양쪽 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계암일록의 '여희'도 황씨인데, 황여일과 관계가 있을 듯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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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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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홈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