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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외속리면 봉비리 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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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7-03-28 22:27 조회1,99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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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2.gif 봉비리
icon3.gif 위치
면적3.58㎢,101가구 314명(1999년말).본면의 남쪽에 위치하며,동은 불목리,서는 하개리,남은 탄부면,북은 서원리에 접하고 있다.
icon3.gif 연혁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으로서 새비랭이 또는 봉비리랑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비라라고 하교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icon3.gif 자연마을
- 새비랭이 : 봉비리 중심마을 옛날 마을 뒷산인 구병산 줄기에 나무가 무성하고, 들에는 잡초가무성하여 철새들이 모여 살았고, 오림숲에는 봉황이 살고 있어 아침이면 날아서 앞 마을 황곡리 빙경산에서 놀고, 밤이면 오리미숲으로 날아 온다고 해서 새비랭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마을 뒤 꼴미산이 봉황이 나는 형국이라 해서 새비랭이라고 했고, 새가 날아가면 마을에 좋지 않다고 해서 마을앞에 봉황이 깃들 수 있게 오리미를 만들었다고 한다.
- 오리미 : 새비랭이 서쪽에 있는 마을 꼴미산의 봉황이 날아가지 않도록 오동나무 숲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icon3.gif 현황

(2007.2.1현재)

- 가구수 : 93가구
- 인구수 : 232 명 ( 남자 120명, 여자 112명 )
- 농경지 : 123.8㏊ ( 전 44.8㏊ , 답 79㏊ )

icon3.gif 특징
농업위주의 농촌마을로 11개리중 가장 인구가 많고 사과, 배등 과수농가가 많이 있음
icon3.gif 전설및설화
@진사래 보@
인조반정의 공신으로 뒤에 영의정을 지낸 김자점은 면장 임경업 장군을 죽인 반역자다.
그러나 황해도 지방에 가면 그의 덕을 기리는 비가 이곳저곳에 적지 않게 서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수리시설인 보를 가장 많이 그리고 잘 만든 사람으로 꼽힌다.
"자점이 보 막듯 하여라"는 속담이 칠전팔기하라는 뜻으로 이야기 되리만큼 그의 보막이 사업은 대단한 집념이 있었던 것이고 자연과 각박하게 대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자연과 대결하여 자연과 싸워 그 자연을 굴복시켜 사람축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어는 누구보다 훌륭한 것이다.
역사에서 반역자로 처형된 김자점이지만 황해도에 와서 수리시설인 보를 여기저기에 만든 김자점이 황해도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더 훌륭한 것이다.
현재 외속리면 하개리와 봉비리 앞들에 관개에 큰몫을 하는"진사래"도 한 인간의 의지의 승리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조선 정조 때의 일이다.
외속리면 봉비리에 정가묵이라는 이가 살았다.
그의 호는 낭간으로 일찍 성균진사에 1등으로 합격하여 이름을 날렸으나 벼슬길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독서와 산책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마을앞 수만평이나 되는 토지가 황무지로 되어 있음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였으나 그 부근의 전답들도"달밤에도 가뭄이 탄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리시설이 말이 아니었다.
원래 공익심이 남다른 데가 있던 그는 지방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 앞을 흐르는 삼가천냇물을 이용하여 황무지를 개간할 것을 마음먹었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하여 금강에 흘러가는 삼가천은 지금은 내속리면 삼가리에 큰저수지를 막아 유수한 수리시설을 갖춘 냇물이었지만 그때는 이곳 외속리면 하개리에 이르면 냇물은 모두 자갈 속에 스며들어 장마때가 아니면 좀처럼 물구경 하기가 어려운 때라 이곳에 보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으로 알던 때였다.
이것을 잘 아는 정진사는 이곳에서 약 십리가량 상류로 올라가 외속리면 서원리 북두무니라는 냇물 웅덩이에서부터 냇물 바닥을 파서 하류로 물길을 잡아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정진사는 동민과 하인들을 독려하여 냇물바닥을 파서 새로운 물길도 찾아가면서 계속해 하류로 파 내려왔다. 그리하여 하개리 마을을 아래에 이르러 돌러 제방을 쌓아 보는 완성하니 엄청난 양의 물이 모였고 이 물을 이용하여 황무지를 전답으로 개간하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마을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가난한 빈촌에서 부촌으로 탈바꿈해 가니 비로소 정진사의 공덕이 크다고 칭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진사에 보라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중에 사투리로 변하여"진사래보"로 변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icon3.gif 마을봉사자

- 이 장 : 어 광 수 542-6032

- 새마을지도자 : 정 용 길 542-6057
- 부 녀 회 장 : 김 숙 영 542-6004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대부님, 반갑습니다.
시간 나시는 대로 시군지 순례 해 주세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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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낙서공의 또 하나의 전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