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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사촌리의가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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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5-19 05:30 조회1,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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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서림(沙村 西林)





(출전 : 의성군지, 의성군지편찬위원회, 1998년 pp506∼507)



---점곡면(點谷面) 사촌리(沙村里) 서쪽에 길이 약 800m, 폭 40여m의 숲이 있다.



이 숲에는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약 10종의 노거수(老巨樹)가 울창



하게 솟아 있으니, 수령은 300년에서 600년 사이, 나무 높이는 대개 15m∼20m



정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 고려 말기, 안동김씨 입향 시조 감목공



(監牧公) 자첨(子瞻)이 안동으로부터 이곳 사촌(沙村)으로 이거할 때 마을 서편



긴 평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방풍림이다. 까닭에 소유주는 안



동김씨 문중으로 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 그 경관은 바뀌어 지지만 가을철의



단풍은 특히 절경을 이루고, 철따라 새와 짐승들이 우짓고 노닐며, 한여름에는



농부들이 일손을 멈추고 짙은 녹음 아래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이 숲은 또한



임진란 수습 공신이며 퇴계의 학통을 승계한 석학 서애(西厓) 류성용(柳成龍)의



출생지라는 전설이 있다.



---1972년 내무부에서 발간한 「보호수지(保護樹誌)」에는 이 숲의 회나무, 상수



리나무가 거수목으로 등재되어 있고, 또한 경상북도 지정 보호림 1등급 9-75호



로 등록된 바 있다. 1972년에는 홍수의 피해를 막고자 사천(沙川) 양쪽에 축대



공사를 했으며 길손과 마을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벤치시설도 갖추었다. 한편



점곡초등학교 자연관찰원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야영훈련 교육의 집회



행사, 예비군, 민방위대, 훈련 교장으로도 제공된다. 1986년 면장 김사수(金沙



秀)씨의 주선으로 사적비(事蹟碑 : 金昌會 撰)를 세웠다.











사촌 서림사적비(沙村 西林事蹟碑)





(출전 : 의성군지, 의성군지편찬위원회, 1998년 pp530∼531)





■소재지 :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서림내)



---이 비석은 경상북도 보호림 1등급 9-75호로 지정된 사촌 서림의 조성 경위와



연대를 밝혔으며 현재의 관리상태를 기록하였다.





■사촌 서림사적비문(沙村 西林事蹟碑文)



---동해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내리 뻗은 태백산맥이 보현산(普賢山)에서 멈추었



고 그 일지(一枝)가 서북으로 거슬러서 솟재(鼎嶺)가 우뚝하다. 이곳에서 발원한



기수(沂水)가 협곡을 따라 장장 팔십리를 관류하여 대천을 이루고 다시 서북으



로 구비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이 언저리에 주회 수십리의 옥야(沃野)가 펼쳐



졌고 여기에 자리잡은 사촌은 영남의 명기로 널리 알려졌다. 높은 산, 깊은 물



은 천작으로 설화를 남겼고, 고목과 노거수림은 인작으로서 연유가 있다. 거듭



되는 창상에 후손을 찾을 수 없는 라씨(羅氏), 손씨(孫氏)의 뒤를 이어 고려 충



렬왕 때 도원수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 함길도 감목관 자첨공(高麗 忠烈王 때



都元帥 忠烈公 金方慶의 5世孫 咸吉道 監牧官 子瞻公)이 서기 1392년(태조 원



년 임신) 안동(安東) 회곡(檜谷)으로부터 이곳에 입향하여 세전의 기지를 닦았



다. 이후 서편의 허를 막기 위해 조림한 가로숲은 대곡천을 중심으로 양안에



자리하여 남북 1㎞, 동서 40m에 걸쳐 둘레 3∼4m, 높이 15∼20m 정도의 태고



연한 수목이 울연히 들어섰다. 주종을 이루는 수종은 상수리와 괴화나무, 느티



나무 등이나 그 외 수십종의 잡목이 자생하고 있으며 산토끼, 다람쥐 등 야생



조수가 사시로 서식하고 후조 외(왜)가리는 매년 우수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



와 새끼를 부화하고 백로와 추분사이에 남쪽으로 가버린다. 대개 으슥한 바위



나 고목, 거수에는 전설과 토속 신앙이 깃들어 있듯이 여기에도 임란(壬亂)의



치란명상이며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선생의 외손자이신 서애(西厓) 류성용



(柳成龍) 선생의 출생지라는 전설과 사촌리의 연중 무사 안녕을 비는 성황신(城



隍神)을 이곳에 봉안한 바 있었는데 영정조(英正祖) 시대의 유학자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선생에게 현몽하여 기령산(奇靈山)에 이안했다.(축문 령자조령



시봉서림 난피풍우 현몽천사 . . . . . 이하 략. 祝文 靈自鳥嶺 始奉西林 難避風



雨 顯夢川沙 . . . . . 以下 略) 지금도 천고의 비밀을 간직한 채 무제평원을 남



북으로 가로질러 삼동에는 삭풍을 막아 동리를 보호하고 춘하에는 계절풍을 막



아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며 성하에는 벌레와 모기가 없는 녹음 아래서 농부들



이 땀을 식히고 오수를 즐긴다. 옛날에는 지나가는 운사(韻士)들이 시상을 일으



켰고 어린 시절 여기에서 뛰놀던 이향객(離鄕客)에게는 향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세사가 변천함에 따라 새마을 다리가 놓여지고 인마의 내왕이 차량의 통



행으로 바꿔지니 왕사는 한갓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서기 1972년에 경상북도



보호수 1등급 9∼75호로 지정되고 자연보호정책의 일환으로 행정기관이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이에 선조(先祖)의 슬기와 원대한 경륜에 감복하고 그 사적을 후



인에게 전하고자 점곡면장 김사수(金沙秀)씨의 주관으로 재일(在日) 김희학(金



熙鶴), 희범(熙範)의 협찬을 받아 이 사적비(事蹟碑)를 세운다.





- - - - - - - - - - - - - - - -1986년 3월 20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金 昌 會 글 짓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柳 時 洵 글씨 쓰다









▣ 김태서 - 윤만아저씨 글 감사드립니다.

▣ 김정중 - 깊이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 부문 김희학/희범씨는 저의 종숙부님 이십니다

▣ 김정중 - 아울러 이 비석이 건립 자초지종을 저의 아버님 (熙國)께서 주선을 하셨습니다 서림에 처음 기념물이 놓이는 순간 이었지요 이때 감사패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전 주민의 이름으로...

▣ 김은회 - 사촌 서림에대한 글 잘읽었습니다

▣ 김영환 - 글 감사.. 정중씨 감사...

▣ 김항용 - 늦었지만 정중씨 아버님의 훌륭하신 활동에 고개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 김주회 - 감사드리고, 잘 읽었습니다.

▣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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