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근의 조부는 백곡 김 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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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7-04-23 13:44 조회1,517회 댓글1건본문
충효자료실 > 인물별 > 효자
인물이름 김가근 지역 서산시
출생·사망 1688~1740
구분 효자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충부 부총관 행 정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김자근 영
종 50년 갑오에 명정되었다. 김가근의 조부는 직제학공의 15세손으로 본관은 안동이오 휘는 득
신이고 호는 백곡이다.
1604년 선조 37년생으로 38세에 진사가 되고 5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등과해서 가선대부에 올
라 안풍군에 봉해졌다. 그 손자가 바로 김가근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를 모시었는데 할아버지의 노환으로 곁에서 병간을 하던 중 갑
자기 수 10명의 화적이 들이닥쳐 와서 할아버지께 공갈 협박하는데 노복들은 도망하고 나이 어
린 손자가 묵판으로 할아버지의 위급을 가리워 드리며 병환에 계신 할아버지께 있을 수 없는 일
임을 부르짖고 "아저씨들도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시오. 이럴수가 있소"하니까 화적들은 "이놈 보
게 , 잘못하면 너도 죽는다."하였다. 그는 또 "우리 할아버지를 당신들이 구해 드릴 수 없소, 할
아버지께서 무슨 잘못이 있으셔요? 당신들에게 해 끼치신 일이 있어요? 아무런 죄가 없지 않
소?"
의연한 태도로 무서움도 생사도 가리지 않고 서슴치 않으며 "할아버지 노환장병에 돈이 어디 남
아 있겠소!"하니 어린 가근의 말에 화적들도 인간인지라 생각이 있었는지 " 아 그놈 보게 그럴
듯 한데. 그러나 너 이 놈 돈을 내어놓지 않으면 않돼"하고 재다짐하자 "여보시오, 내가 다 말했
잖소, 창고에 벼밖에 없으니 가지고 가쇼. 그것이 전부 다요"하자 화적들은 저희들끼리 중얼거
리며 나가 버렸다. 그래서 조부의 병환위급에서 묘면했다 한다.
그후 이러한 사연을 알게된 유림들은 도 관찰사에게 건의하고, 관찰사도 감탄하여 조정에 상주
했다.
영조대왕이 이제까지 효자 효열부의 정표 사실은 많았어도 효손정표란 처음일이다 하고 책상머
리에 밀어놓고 의아해하며 생각중에 계신 찰라 바람이 불어 어전에 갖다 놓여졌다. 그러므로 전
하께서는 "아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이는 출천지 효손이기에 하느님께서도 재가를 촉구하는
뜻이다.!"하시며 효손명정을 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효손정문이란 희귀한 일로 재차
마음이 쏠린다.
댓글목록
김희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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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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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백곡선생께서 1684년에 돌아가셨는데 어찌 손자께서 할아바지를 지켜드릴수 있습니까?
그래서 저의 소견으로는 양할아바지를 지켜드렸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