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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金宣弓), ?김선평(金宣平)은 경순왕의 재종질(*6촌형제의 아들), 모두 문성왕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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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4-24 23:34 조회1,88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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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순왕(敬順王)

?∼979 

신라 제56대왕

재위 927∼935

성은 김씨, 이름은 부(傅). 문성왕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신흥대왕(神興大王)으로 추봉된 효종(혹은 효종이 할아버지라는 설도 있음.)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桂娥太后)이며, 할아버지는 의흥대왕(懿興大王)으로 추봉된 관○(官○)이다.

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아들이 둘 있었다. 큰아들은 마의태자(麻衣太子)이고 막내아들은 범공(梵空)이다. 고려에 항복한 뒤에 왕건의 큰딸 낙랑공주와 다시 결혼하였다.

927년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이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살해된 후 견훤에 의해 옹립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931년 왕건이 경순왕을 알현하여 수십일을 머물렀다. 왕건은 부하들에게 질서와 규율을 지키도록 하니, 수도의 아녀자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늑대와 범을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고 한다.

935년 그는 고려에 신라를 넘겨 줄 것을 신하들과 논의하고 김봉휴(金封休)로 하여금 왕건에게 항복하는 국서를 전하게 하였다.

이때 마의태자는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범공은 머리를 깎고 화엄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그가 신하를 거느리고 고려에 귀의할 때 향거(香車)와 보마(寶馬)가 30여리에 뻗쳤다. 왕건은 그를 정승공(正承公)으로 봉했는데, 그 지위는 태자의 위였다. 왕건은 또 그에게 녹(祿) 1000석을 주고 그의 시종과 원장(員將)을 모두 등용하였으며, 신라를 고쳐 경주라 하고 그의 식읍(食邑)으로 주었으며, 그를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으로 삼았다.

무덤은 장단에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高麗史 高麗史節要



■【유적명칭】김선궁 유허비(金宣弓遺墟碑)

【소 재 지】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 59

김선궁은 신라 알지왕 29세손이며 경순왕의 재종질(*육촌 형제의 아들. ≒재당질.

)이다. 고려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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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궁(金宣弓)

생몰년 미상. 고려 태조 때의 공신. 본관은 선산.

이(吏)출신으로 태조가 숭선(嵩善: 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에서 후백제를 칠 군사를 모집할 때 응모하니, 태조는 기꺼이 자기가 쓰던 활을 내려주면서 선궁이라는 이름도 함께 하사하였다. 뒤에 대광문하시중(大匡門下侍中)이 되었고, 정종 때 대승(大丞)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순충(順忠)이다.

참고문헌 新增東國輿地勝覽. 〈李貞信〉


김선궁(金宣弓) ---

신라 김씨 원조이신 대보공(大輔公)의 30세손이며 신라 김씨 왕세대의 마지막 왕손인 체의(體誼)의 아들로 신라 46대 문성대왕(文聖大王)의 8세손으로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상해를 입힌 자의 목을 베고 처벌을 자청하여 투옥된 후 조정에 의해 효자라고 석방, 표창까지 받았다. 공은 일찍이 웅재대략의 자질을 보였으나 경순대왕이 나라를 기울여 고려에 양국함으로써 그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건국에 많은 역할을 맡아 공훈을 세웠다. 이에 고려개국벽상공신 삼중대광문하시중이 되었고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순충(順忠)이다. 그 뒤 3대왕 정종(定宗)때에 대승(大丞)에 추증되었으니 바로 일선김씨(一善金氏)의 시조가 되었다.


공은 약간 15세에 고려태조 왕건의 원정군에 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니 명장으로서의 위명을 날리게 되었고 왕건태조가 어궁을 하사하였으며 공의 이름까지 선궁(宣弓)이라 고쳐부르게 하였다. 공의 자손들이 대대로 선산 봉하루지(鳳下樓址)에 살게 됨으로써 선산(善山)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으니 현재의 선산군 선산면 완전동(善山郡 善山面 莞田洞) 군청사와 그 주변 일대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까지도 공의 유허비각 및 화수정(花樹亭)의 대지 1천여 평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善山金氏族譜 (古 999.81 김53)

木活字本. - [發行事項不明].

10卷10冊 ; 34.3x23cm.

四周單邊. 半匡 ; 26.7x19cm.有界.橫6段.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선산 김씨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이며,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인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한다. 문헌에 의하면 김선궁의 처음 휘(諱)는 김선(金宣)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복하려해도 군병이 부족하여 의병을 모을 때 선(宣)이 자진하여 태조를 도와 나서니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좋은 활을 하사하고 활궁(弓)자를 더 넣어 선궁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때부터 그는 태조 왕건을 보필하여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개국벽상공신(開國璧上功臣)과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라 후손들이 본관을 일선(一善)으로 하였으나 태종 때 지명이 선산(善山)으로 바뀜에 따라 본관도 선산으로 바꾸었다. 영남을 중심으로 집단세거하여 온 선산 김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시조 선궁의 맏아들 봉술(奉術)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둘째 봉문(奉文)은 삼사우윤(三司右尹)을 역임하였으며, 그의 아들 흥림(興林)은 대호군(大護軍)을 지내 가문을 빛내기 시작했다. 이 세보는 책머리에 범례(凡例), 김씨사적(金氏事蹟), 세계원류(世系源流)가 수록되어 있고, 각 분파의 세보가 수록되어 있다.



■ 김선평(金宣平)

생몰년 미상. 고려 태조 때 공신. 본관은 안동.

930년(태조 13) 태조가 견훤(甄萱)과 싸울 때, 안동에서 권행(權幸)·장길(張吉)과 더불어 태조를 도운 공으로 대광(大匡)에 임명되었다. 뒤에 벼슬이 아부(亞父)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新增東國輿地勝覽. 〈李貞信〉



■ 김순(金恂, 1258~1321) 묘지명

---公諱恂字歸厚系出新羅王金傅內孫三韓壁上功臣司從亞父三重大匡金宣平公爲金傅十五代孫而安東府卽其桑梓之鄕也--- 

---공의 이름은 순(恂)이고, 자는 귀후(歸厚)이며, 가계가 신라왕(新羅王) 김부(金傅 : 敬順王)에서 나왔는데, (김부의) 內孫(?8촌이내←7촌 재종질)으로 孫三韓壁上功臣司從亞父三重大匡을 지낸 金宣平이 있다. 공은 김부의 15대손으로 안동부(安東府)가 곧 그 고향이다.---



<김태완>

안동 3태사 중에 한분인 김선평은 시대적 배경으로 봐서 경순왕 김선평 왕건과 동시대(935년)의 인물이다. 고려 개국에 큰 역할을 한 분들이다. 경순왕과 김선평은 몇촌인지는 몰라도 한 할아버지의 자손인 (內孫)의 관계였던 것은 분명하다. 민지공께서 문영공(김순)의 묘지명을 찬하며 고려 개국에 크게 공헌한 두분(경순왕,김선평)을 부각시켜 주신게 아닌가 판단된다. 적어도 경순왕과 김선평은 내손의 관계 즉 할아버지나 증.고조부님가 한 할아버지 였을 것으로 봐야 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정밀하게 해야 할 것이다. ---


일반적으로 일가, 종친, 현종, 종인, 족친등의 표현은 촌수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멀어져 있을 때 사용한다, 즉 안동김씨라면 어느 표현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내손이라함은 손자(孫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예를 들면, 이태조(이성계)의 내손이라면 이성계의 손자들로써 방원이 낳은 양영대군, 효령대군, 창령대군(세종)과 방석등이 낳은 대군들간에 내손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좁은 의미로는 손자인 4촌의 관계이다. 좀더 넓은 의미로는 6촌 8촌의 관계도 내손의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할아버지나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범주로 보아야 할 것이다.


公諱恂字歸厚系出新羅王金傅內孫三韓壁上功臣司從亞父三重大匡金宣平公爲金傅十五代孫而安東府卽其桑梓之鄕也...

공의 이름은 순(恂)이고, 자는 귀후(歸厚)이며, 가계가 신라왕(新羅王) 김부(金傅 : 敬順王)에서 계출하였다. (김부)와 내손관계인 三韓壁上功臣司從亞父三重大匡을 지낸 (자랑할만한) 金宣平이도 있다. 공(김순)은 김부의 15대손으로 안동부(安東府)가 곧 그 고향이다.---



<김윤식>

■<파한집> 中 17

-전략-

나의 벗 이담지(李湛之)는 바로 좌사(左司)의 내손(內孫)으로 내게 그 진필(眞筆)을 보여 준 일이 있다.

-하략-


※ 좌사(左司) : 이중약(李仲若)

이인로 : 1152-1220(의종6-고종7)

이담지 : 생몰년 미상. 고려 명종ㆍ신종 때의 문인.

이중약 : ?∼1122(인종 즉위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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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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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신와중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