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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능동의 충렬공 안내 자료(김광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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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5-11 13:28 조회1,357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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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동의 도유사이신 광현종친님으로부터 메일로 받은 안동 능동의 <충렬공 소개 팜플렛 자료> 원문입니다.    

개인적 노력으로 집필, 편집, 제작하셨다고 합니다. 노고를 칭송해 드리니 오히려 더 부끄러워하시며 겸손해 하십니다.

도유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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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


우리의 선조님들께서는 숭조 이념과 충효정신, 예의 법도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셨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핵가족화 되어 가고, 가족이 멀리 흩어져 살아가는 현실에서 덕망 높으신 선조님의 묘소에 참배도 자주 자주 못 할뿐 아니라,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후손도 있으며 훌륭하신 선조님의 행적을 몰라서 선조님을 탓하는 후손도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바쁘신 가운데도 오늘 중시조 충렬 공 김 방경할아버지의 산소에 참배오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할아버지의 행적에 관하여 간단하게 기록하였으니 보시고 후세에게 전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주시길 바라오며, 혹 잘못된 부분이나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바라며 다소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본 자료를 기록해 드립니다


2007년 3월 31일

충렬공(휘, 방경) 26대손 (안동김씨대종회 능동 도유사) 光植(光顯)

(H : P : 011-9598-9446)


中始祖 忠烈公(金方慶) 略歷


충렬공(휘,방경) 할아버지는 서기 1212년(고려 강종 1년,임신년)에 숙승공의 7대손인 병부상서 한림학사(휘,효인)의 장자로 안동 회곡리에서 탄생하셨다,

고려 고종 14년(16세)에 음보로 조정에 출사하시어 1283년 벼슬에서 물러날 때 까지 10년간 수상으로 재직하면서 정치, 군사의 최고 책임자로 멸사봉공하는 자세로 고려를 지켰으며 혼란한 고려 조정을 위해 충직한 마음으로 봉사하였다.

충렬공 할아버지는 주역에도 조예가 깊을 만큼 문무를 겸하였으며

누구보다 탁월한 병법의 소유자였고 전략가였다

한마디로 智將이자 德將이며 勇將이셨다


 상락대

상락대는 안동시 남후면 단호1리 소재 산에 있는 높은 대이다,

상락대는 낙암정에서 서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 상락대에서 무예를 익히고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또한  수련을 하던 곳에는 풀이 나지 않는데 풀이 나면 안동김씨의 앞날에 희망이 없고 풀이 안날 때 까지는 그냥 그냥 유지된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영호루 시판

영호루에는 할아버지께서 시 한수를 새긴 시판이 걸려있다

제목은 『일본 정별시 안동에 들러 영호루에 올라』이다.

원래의 시판은 1934년 대홍수에 떠내려갈 때 유실되었으며 지금의 시판은

영호루 이전 복원시에 만든 것이다

이 시는 1281년에 2차 일본정벌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안동에 들러서

당시 안동에 와있던 충렬왕을 알현하고 잠시 짬을 내어 영호루에 올라가서 감회를 읊은 것으로 해석 된다

시를 번역하면

산과 물은 예전 그대로 맑고

누대 역시 소년 시절의 정취를 자아내구나

애틋하도다 고향에는 옛 풍속 남아있어

노래 소리 모아 내 갈 길을 위로 하노라

고향 안동에 대한 감회와 정감, 그리고 힘든 전쟁 상황이 이 시에서 묻어난다, 고향 안동에 와서 보니, 예전 그대로인 산수가 반갑기 그지없고 영호루도 예전의 정취를 드러내고 있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우러난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오니 그것이 장수의 발길을 위로한다. 전쟁에서 지친 장수가 다시 힘을 내어 되돌아가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장군 샘

회곡리에는 장군샘이라는 우물이 있었으며 지금도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 우물은 할아버지가 마시던 샘물이어서  장군샘이라 불리어진다.


묘소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능촌에 모셨으며 한동안 실전되었다가

1594년에 광산 김씨 문중에 의해 발견되어 안동김씨 문중에서 할아버지의 묘소임을 확인하고 1602년에 다시 봉분을 조성하고 비석을 세웠으며,

1992년에 묘역 확장 및 계단공사를 하였다.

광산 김씨 문중에서 매년 10월 2일 향사 때 할아버지 산소에 먼저 잔을 올리고 김 효로의 향사를 지내고 있다. 이는 할아버지한테 먼저 잔을 올리지 않으면 변고가 발생 김효로의 향사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신도비

서기 1312년 고려 충선왕 4년 6월 26일 왕명에 의해 건립되었다,

1503년에서 1600년 각종 사화와 임진왜란 때  불행히도 유실된 후 위치도 모르고 360년이 지난 후, 1071년 11월 26일 현 위치에 신도비를  재건하였다. 처음에는 신도비만 있다가 1989년 6월 20일 확장공사 시 7m 뒤로 옮기고 9월에 비각을 짓고 동년 11월 7일 향사 날 준공식을 가졌다.


유허비

서기 1635년에(인조 13년) 실석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훨씬 전에 지어

졌으리라 믿어진다,

1765년(영조 41)에 관에서 풍산 회곡마을 건너편 안산에 다시 비를 세웠다,

그러다가 1814년(순조 14)에 후손들이 안산에 있던 유허비를 김방경 할아버지가 살던 회곡마을 초당 유허로 이전하였다,

조선조 말 권돈인(1783↔1859)이 경상감사로 부임할 당시 김성동이란 사람이 충렬공 유허지에 자기 부모의 무덤을 써서 4년 동안이나 송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감사 권돈인은 김성동을 가두고 이장토록 명령함으로서 유허지가 보존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건물이 너무 낡아져 1985년에 현재와 같이 다시 지었다.


죽주박씨 단소와 상락재

예안현에 산소를 모셨다는 얘기가 있으나 실전되고 없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 단소가 회곡마을에 조성되었다,

그 근거는 죽주박씨 할머니는 회곡에서 늙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1976년에 단소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회곡마을에 상락재라는 이름으로 죽주박씨 재사가 건립되었다, 1985년에는 죽주박씨 단비가 개수되고, 1990년에 재사가 개축되고, 1995년에는  단소의 뜰이 확장되었으며, 2006년에는 안산에 있던 유허비 옛 좌대를 현 위치로

옮긴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中始祖 忠烈公(金方慶) 略歷


◎.新羅 (신라) 敬順王 (경순왕) 의 9世孫으로 西紀 (서기) 1212年( 康宗 (강종) 元年 (원년) 壬申 (임신) 年 (년) )에 兵部 (병부) 尙書 (상서) 翰林 (한림)     學士 (학사) )(諱: 孝 (효) 印 (인) )의 長子로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에서 탄생하셨다.


◎. 西紀 (서기) 1227年 16歲時(高宗14年) 음보로 散員兼拭目都監綠事로 조정에

  출사하였다.


◎.西紀1247年(36歲)西北面兵馬判官에 임명되시다


◎. 西紀 (서기) 1260年(49歲) 3월 3일 大將軍으로서 知 (지) 刑 (형) 部 (부) 事 (사) 가 되셨다.


◎. 西紀 (서기) 1263年(52歲) 12월 20일(병인) 右部 (우부) 承宣 (승선) 으로서 知御史臺事兼選軍別    監使에 임명되시다.

  이해에 御使中丞(종4품)으로서 銓選을 장악한 知御史臺事(종4품).左丞宣

  兪千遇와 班次(官品)을 다툼, 이로 인해 김방경의 인척들의 任官이 막힘.



◎. 西紀 (서기) 1265年(54歲) 正月 (정월) 25日 元 (원) 나라에 가시다.


◎.西紀1268年(57歲)2월 25일 判秘書省事. 西北 (서북) 面 (면) 兵馬使 (병마사) 에 임명되시다.

이후 刑部 (형부) 尙書 (상서) . 樞密院 (추밀원) 副使 (부사) 에 임명되시다


◎. 西紀 (서기) 1269年(58歲) 9월 7일 元 (원) 나라에 가시다.

  12월 13일 同志 (동지) 樞密院 (추밀원) 事 (사) . 御史臺 (어사대) 夫 (부) 에 임명되시다.



◎. 西紀 (서기) 1270年(59歲) 9월 7일 전라도 追討使 (추토사) 가 되시어 三 (삼) 別抄 (별초) 討伐 (토벌) 의

   先鋒將이 되어 珍島를 討伐함.

12월 守司徙-參知政事에 임명되시다.


◎. 西紀 (서기) 1271年(60歲) 5월 15일 珍 (진) 島 (도) 에서 三 (삼) 別 (별) 抄 (초) 를 討平 (토평) 하고,

 11월 26일 개선하여 전공으로 守太尉 -中書侍郞平章事-判書部事에

 임명되셨다.( 宰相 (재상) 에 入相 (입상) )


◎. 西紀 (서기) 1273年(62歲) 正月 6日 判 (판) 追 (추) 討 (토) 使 (사) 가 되시어 2월 24일 제주도에서

   三 (삼) 別 (별) 抄 (초) 를 平定 (평정) 하시고 6월 16일 개선하시다.

 6월 13일 守太師- 門下侍中 (문하시중) 이 되시다.


◎. 西紀 (서기) 1274 年 (년) (63 歲 (세) ) 正月 (정월) 2일 開府儀同三司일에 책봉되고 東南道都督使로   임명되시다.

7월 12일(병술) 征東先鋒別抄를 거느리고 合浦로 출발하시다

10월 6일 東情軍이 對馬島에 상륙함.

10월 14일 一 (일) 岐 (기) 島 (도) 를 征 (정) 伐 (벌) 하여 倭兵 (왜병) 數千 (수천) 級 (급) 을 격살하였다.

12월 28일 개선하여  上 (상) 柱 (주) 國 (국) -判御史臺事가 되시다.


◎. 西紀 (서기) 1275 年 (년) (64 歲 (세) )(충렬왕1년) 1월 8일 元 (원) 나라에 가셨다가

   3월 20일 돌아오심,

10월 25일(임술) 官制의 개혁으로 수상인 匡靖大夫-僉議中贊-上將軍-

判典理-監察司事에 임명되시다.

12월 24일 上柱國이 더해짐.


◎西紀1277年 정월 1일 老母의 상을 당함.

 정월 4일 世子師로 임명되시다.


◎西紀1278年10월 3일 僉議中贊-上將軍-判監察司事에 임명되시다.

10월 10일 判前理司事 元 (원) 로 임명되시다.

12월  元나라에 가시다.


◎.西紀1279년 2월 29일 重大匡-世子傅로 임명되시다.


◎. 西紀 (서기) 1280 年 (년) (69 歲 (세) ) 12월 23中奉大夫-管領高麗郡 都元帥에 임명되시다.   賀正事로 元나라에 가시다


◎ 西紀 (서기) 1281 年 (년) (70 歲 (세) ) 2월 元나라에서 돌아오시다.

3월 17일 군사를 거느리고 合蒲로 출발하다.

5월 4일 日本 (일본) 을 또 다시 征 (정) 伐 (벌) 하여 6월 8일 怠 (태) 帝 (제) 府 (부) 倭兵 (왜병) 數百 (수백) 余 (여) 級 (급) 을 擊 (격)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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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진작부터 ‘음수재‘ 충렬공 선조님의 행장을 간략하게 제작해서 찾아오는 분들께 도움이 되도록 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먼저 실행에 옮기신 광현 도유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차제에 남여노소 누구나 손 쉽게 볼수있도록 대종회에서 제작하여 충분히 비치해 놓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해설판을 제작해서 세우는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한번 광현 도유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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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노고에 감사드림니다.
장군샘이 있는곳에 휀스를 치고  표석이라도 해야 되지안을까요.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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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안동 도유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