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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헌기(琴軒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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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5-25 18:09 조회1,5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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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헌기(琴軒記)

무릇 선왕들이 후세를 위하여 교육의 근본을 세웠는데 이 모두가 예악(禮樂)이란것에 불과 할뿐이다. 그런 예(禮)에 대해서는 이대(二戴)로부터 비교적 무수한 서적들이 많다고 하겠으나 악(樂)에 대해서는 논의한 서적이 별로 많치 않다고 하겠다.

예악(禮樂)이 두 가지는 서로 본말(本末) 관계가 된다 할것이다. 때문에 체(体)와 용(用)이 되는것이므로 그 가운데서 한가지라도 폐(廢)해서는 아니된다 할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후세로 오면서 예악(禮樂)을 논(論)한 사람들은 예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말하였으나 악(樂)에 대해서는 별로 말한 사람이 적은것이다.

대개 악(樂)이라는 것은 성음(聲音)을 말하는 것이고 그 청탁(淸濁)과 고하(高下)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악(樂)의 성정(性情)이 되는것이므로 그 청탁(淸濁) 고하(高下) 질서(疾徐) 관계를 문자(文字)로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라 하겠다. 더욱 우리 사람들의 성품과 감정의 발로(發露)가 하도 묘한 것으로서 어느 때는 바람이 부는것 같기도하고 어느 때는 번개를 쫒아 다니는것 같기도하여 비록 자유(子遊)와 자하(子夏)같은 사람들을 부릴지라도 또한 반고(班固)나 마웅(馬融) 같은 문장가를 시킬지라도 이것을 형용하여 글을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 할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이러한 재인(才人)들의 전통은 그 사람이 없어지면 그 기예(技藝)까지 세상에서 없어지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하겠다. 옛날의 음악(音樂)이 오늘날에 전하여 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대개 음악의 소리는 거문고 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거문고 전체가 곧 거문고의 음악인 것이다. 나는 거문고에 대하여 배운바는 없다. 내가 경사(京師)에 잠시 있는 동안 김군자고(金君子固)와 더불어 수년동안 지냈기 때문에 거문고에 대한 상식(常識)이 좀 있다고 생각한다.

김군자고(金君子固)는 거문고에 대하여 명인(名人)이라고 생각된다. 그 옛날 내가 경사(京師)에 있을때 어느날 김군의 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김군이 한사코 소매를 끌어 자리를 같이 하고 술잔을 기울인 일이 있었다. 이때 김군이 천연(天然)히 웃으면서 말하기를 제가 선생님의 심정 답답함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거문고를 한번 타 보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궁성(宮聲)으로 북소리를 한번 흘리어 유유(攸攸)히 거문고를 타는 데 그 소리가 마치 봄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것 같고 또한 훈훈한 바람이 대지(大地)를 어루 만지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리가 변하여 큰 우레소리가 산악(山岳)을 흔드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또 소리가 변하여 마치 실꾸러미에서 실줄이 나오는듯 바람이 잔잔하여지고 파도 물결이 잔잔해 지면서 하늘이 다시 열리며 따듯한 기운과 밝은 빛을 내는것이 아닌가?

그 소리에 대하여 깊히 생각하여 본즉 이것이 곧 저 옛날 요순(堯舜) 문왕(文王) 공자(公子)같은 분들이 끼친 소리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아주 순고(淳古)하고도 담박(淡泊)한 그 맛이 저 옛날 당우(唐虞)와 삼대(三代)의 하늘이 열리는듯 하였다.

슬프다 거문고의 도(道)가 과연 이렇게 지극했던 것인가? 대개 김공자고(金公子固)는 옛날 법에 묶여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으로 얻는 것이었으면 그 감정을 손으로 응(應)하는 것이다. 공부자(孔夫子)께서 말한 슬픈 감정을 느껴도 속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고 즐거움을 느끼더라도 지나친 경지에 빠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우리들 마음의 성품과 감정의 바른것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그 소리의 형태가 악보(樂譜)에 따라서 이와 같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어떻한 법이 있다면 그 법은 처음에 어디서 나왔겠는가? 어떻한 창작자가 스스로 빚어 그러한 방법이 시작 되었을 뿐이라할 것이다.

오호(嗚呼)라 예악(禮樂)은 곧 하나인 것이다. 예(禮)의 근본은 곧 경(敬)인것이며 악(樂)의 근본은 곧 화(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에 있어서 그 근본을 화(和)로 삼지 않을수 없다고 할것이다.

때문에 요순시대(堯舜時代)로부터 크게는 국가의 군신(君臣)사이라던가 작게는 가정의 부부간 사이에서 하루의 생활이라도 어찌 예(禮)를 버릴수 있다 하겠는가? 그러므로 몸을 꾸부려 절을 하는등의 모든 문화가 우리들에게 구비(具備)되어 있는 것이다.

슬프다. 이제 삼왕(二帝三王)때의 예악정치(禮樂政治)가 참으로 훌륭했었는데 그러한 시대(時代)를 다시 보지 못하는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할것이다. 예(禮)라는 것은 형식적인 위의(威儀)이기 때문에 어떠한 점으로도 쉬운것이라 하겠으나 악(樂)이란 것은 그 정신이 마음 깊숙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예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전하여 오고 있으나 악(樂)에 대해서는 그말이 그렇게 많이 전하여 지지 않고있다 하겠다. 우리 김공자고(金公子固)는 참으로 그 악(樂)의 느낌을 깊히한 사람이다 나는 옛날 성균관(成均館)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옛날에 사도(司徒)라는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전악(典樂)을 관장하면서 나라에 세자(世子)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악(禮樂)의 관계를 우리가 어찌 막연(漠然)하게만 생각 하겠는가? 이에 잔소리 같은 나의 생각을 이렇게 기록하여 김공자고(金公子固)의 헌기(軒記)로 삼노라.

<주석>

1. 이대(二戴): 前漢時代 戴德이 二百餘篇의 禮記를 줄여 大戴記라고 했는데 형제들이 했기 때문에 二戴라고 말하는 것임.

2. 유하(遊夏): 孔子의 弟子인 子遊와 子夏를 말하는 것임.

3. 궁성(宮聲); 동양 음악의 五聲인 宮商 角 微羽에서 宮聲을 말하는 것임.

4. 당우(唐虞): 堯임금과 舜임금시대 兩代를 통칭하는 것임.

5. 삼대(三代): 중국의 고대 夏. 殷. 周 時代를 三代라 함.

6. 이제삼왕(二帝三王): 堯舜을 帝라하고 禹王. 湯王

괴애 김수온선생의 국역 식우집(拭疣集)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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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