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병마절도사(북병사) 휘 일 공의 약력 (휘 적 공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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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07-05-28 17:58 조회1,741회 댓글0건본문
김일(金逸초명 述(술))
본관 안동. 부 계현, 모 양천허씨
자 而緖(이서)
萬曆癸酉,선조36년1603년-효종2년(신유)1651)
무과 급제 후 인조 5년 江都좌초관(훈국파총)(정유난)으로 왕실을 扈駕했다.인조8년 용천부사를 제수 받
고 인조 임금으로부터 甲冑(갑주)를 튼튼하고 우수하게 제작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를 받았다.인조8년
형조 정랑,부산진결포수군만호,인조9년 창성부사인조15년 중화현감, 인조16년 충청수사,인조18년 의금
도사,동년 11월 전라우수사,인조21년 전라병사,인조23년 정주목사,인조24년 황해병사,인조 25년 안주목
사,평안병사를 제수 받았다. 인조 26년 인조임금으로부터 숙마1필을 하사받았다.인조 26년 6월9일 五衛
將,인조27년 경기우방어사장단부사를 지내고 효종즉위년 10월23일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兒馬1필을 하
사받았다. 통제사를 거쳐 그해 7월함경북도 병마절도사겸 경성도호부사(북병사) 제수받았다. 북쪽 국경
을 지키던 중 효종 2년 임소에서 49세에 병으로 죽었다. 생전에 수차에 걸쳐 파격적인 승진을 하거나 왕
의 총애를 입은 바 다른 대신이나 대간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여러 번 받은 바 있다. 공의 사후 엄정면
논리동 구장곡(구장골)에 반장을 한 뒤 엄정면 용산리 향림에 묻혔다. 병조참판으로 증직되었다.
兄 김적 과 더불어 인조, 효종 때 통제사,북병사를 지냈다.
부인은 충주출신으로 임진왜란 시 진주성싸움에서 공을 세워 광남군으로 책봉된 광주이씨 광악의 따님
이다.정부인 광주이씨에게서 두명의 딸을 두었다. 정부인 의령남씨 에게서 5남을 두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안동김씨 익원공파보 및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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