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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지순례6-3(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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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5-25 06:55 조회1,8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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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1092. 제3장 孝行(효행)







11. 金時伯(김시백)



---본관은 안동으로 원주목사 의재 김제갑의 둘째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를 따라



원주에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의 아버지가 원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하자



「어버이가 죽었는데 자식이 어찌 홀로 살랴」하고 그의 아버지를 끌어 안고 함



께 죽으니 후에 선조가 이를 듣고 탄식하여 「一門忠孝 萬古三綱(일문충효 만고



삼강)」이라 하였으며, 호조참의를 증직하고 후에 원주 충렬사와 괴산군 능촌리



충렬사에 합향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12. 金時亮(김시량 1554(명 9)∼1617(광해 9))



---자는 汝明(여명), 본관은 안동이며 우갑의 아들이며 부사 시약의 종형이다. 벼



슬은 음 군자감 판관이며, 어려서부터 孝友(효우)가 탁이하였고 齊家(제가)에 엄



하여 儒林(유림)의 표증이 되었다. 그의 묘는 문광면 대장동에 있다.



(문헌 : 家文譜(가문보))







13. 金時訓(김시훈)



---자는 斅伯(효백), 비안현감 인갑의 아들이며 부사 시약의 형이다. 벼슬은 형조



좌랑.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부모에게 효행이 탁월하였다.



(문헌 : 괴산군지)







14. 金約(김약). 金紀(김기) 형제.



---약의 자는 士守(사수). 기의 자는 正叔(정숙)이니 공릉 참봉 우갑의 손자이며



군자감 판관 시량의 자이며, 구암 충갑. 의재 제갑의 종손이다. 기는 1616년(광해



군 8) 무과에 급제하여 첨사가 되었으며, 증 병조참판이 되었다. 효행사실 구읍지



(문헌 : 괴산군지)







15. 金大乾(김대건)



---의재 김제갑의 조카 時尙(시상)의 아들이다.



(문헌 : 괴산군지)







16. 金 (김선). 金糾(김규) 형제.



---본관은 안동이며, 부사 시약의 아들이다. 정묘호란에 그 아버지와 함께 순사



하니 정려하고 첨정을 증직했다. 충효삼문 청주 서대전리.(문헌 : 괴산군지)







17. 金鼎臣(김정신 1609∼1699)



---본관은 안동이며 첨사 기의 아들이다.(문헌 : 괴산군지)







18. 金天揆(김천규 1641∼?)



---자는 汝度(여도), 본관은 안동, 백곡 김득신의 아들이다. 효행으로 정려를 세



움.(문헌 : 대려지. 괴산군지)







19. 金允孚(김윤부 1653∼?)



---자는 克休(극휴), 김정신의 아들로 부모가 병들자 대변을 맛보고 병세를 진단



하였으며, 단지 주혈하여 위급한 상태를 면하였고 또 목욕재개하여 부모의 병을



대신해 줄 것을 하늘에 기도하였다. 마침내 부모상을 당하니 전후 12년간을 여막



에 거처하였으며 풍설이나 뇌우가 심할 때에는 묘위에 엎드려 울며 「자식이 이



곳에서 지키니 염려마소서」하고 고하니 그의 출천지대효를 극찬하였다.



(문헌 : 괴산군지)







20. 金可近(김가근 1664∼1746)



---본관은 안동, 백곡 득신의 손자이다. 관직은 증 이조참의가 되었다. 화적이 마



을에 들어와 그 조부가 와병중에 있었는데 해치려 하자 이를 몸으로 막아 화를



면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21. 金應徵(김응징 1692∼ ? )



---자는 景遇( 경우), 본관은 안동 윤부의 아들이다.(문헌 : 괴산군지)







22. 金 珌(김 필 1745∼ ? )



---자는 必玉(필옥) 응징의 손자이다. 고조이래 4세를 계승하는 孝友一家(효우일



가)에 태어나 친환에 착지함이 4번에 이르니 열손가락 가운데 성한 것이 없고 전



후 9년 거상에 피눈물에 젖어 두눈의 시력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문헌 : 괴산군지)







23. 金義健(김의건)



---자는 士正(사정) 본관은 안동으로 시훈의 8세손이다. 천성이 견집하고 성의가



가히 금석이라도 뚫을 만하더니 어느 자가 선영에 범장한 바 있어 이를 관가에



제소하였으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지라 공이 이는 내 성의가 부족한 탓이라며 단



지 혈서로 관가에 해명을 요구하니 조속히 처결되었다.



---또 1811년(순조 11)에 임금이 병이나고 서북에 홍경래 난이 일어남을 듣고 단



을 설치하고 얼음물에 목욕하고 분향하며 주야로 상천에 기도하기를 4삭이 되었



더니 왕의 병이 낫고 난적이 토평된 후에 비로소 그쳤다. 충효겸지라 하다.



(문헌 : 괴산군지)







24. 金義路(김의로 1764∼1848)



---자는 正甫(정보), 본관은 안동으로 고려 안렴사 梧隱(오은) 김사렴의 14세 손



이며 효자 김환극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계모



를 성김에 있어 친모나 조금도 다름없이 효성으로 받드니 계모 또한 자기가 낳은



자식과 다름없이 사랑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애통함이 극진하였으며 예를 벗어



남이 없었고 자녀들을 거느림에 있어서도 항상 자기 스스로가 먼저 모범을 보여



성실하고 법도 있는 가풍을 이룩하였다.



---향토 사림이 여러번 그의 특행을 증천하였고, 1887년(고종 29)에 가선대부 호



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증직되었다. 그의 사당과 묘소는 괴산군 증평읍 남하



리에 있고, 묘 옆에는 신도비가 있다.(문헌 : 괴산군지)







25. 金由大(김유대 1793∼ ? )



---자는 聖集(성집), 호는 仁岩(인암), 본관은 안동 시훈의 후손이다. 그 어머니



밀양박씨의 병이 위독하여 손가락을 물어 피를 흘려넣어 회생하니 효자의 칭송이



자자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26. 金浩默(김호묵)



---자는 孟起(맹기), 본관은 안동 김재선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根天



(근천)하였으나 가세가 청빈하여 끼니를 이을 수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로 겨우



지체를 함께 봉양하였으며 아버지가 항상 술을 즐기므로 하루 한차례 꼭 진공하



니 진흥회에서 포상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27. 金相赫(김상혁)



---자는 順之(순지) 본관은 안동, 대제학 김익달의 후손이다. 어릴때부터 부모에



게 효성이 지극하고 처신범절이 단정하였으며, 성장하여 아버지 병환이 위독하자



단지 주혈하여 연명케 하였다. 또 어머니 병환때 쌍 비둘기가 스스로 날아들고



자연동이 눈위에 떠오르는 등 이변이 있었다. 그의 효성으로 정려문이 세워져 괴



산군 사리면 중흥리 진암에 있다.(문헌 : 괴산군지)







28. 金時應(김시응)



---자는 愚慶(우경), 호는 遯菴(둔암), 본관은 안동이다. 일찍부터 천성이 곧아서



부모를 효로서 받들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종족에게 돈목하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



도가 있었다. 그 부친이 각기병을 얻어 여러해 신고하므로 의약치료를 다하였으



나 효험이 없어 주야로 기도하더니 하루는 홀연히 큰 소리개가 토끼 한 마리를



앞에 떨어 뜨려서 이를 잡아 진공하니 효험이 있었다. 조모가 병을 얻어 수삭동



안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더니 하루는 홀연히 한 마리 새가 땅에 떨어



져 날으지 못하여 잡아 진공하였더니 효과가 있었다. 부친이 위독하여 착지 주형



하여 반나절을 연명케 하였으며 상을 당하여 예를 쫓아 안장한 후 두 아우와 함



께 10리나 되는 묘소를 조석으로 성귀하니 향리에 흠탄하고 사림이 보증하여 도



에서 표문갈적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29. 金哲應(김철응)



---자는 仲吉(중길), 본관은 안동, 대제학 김익달의 후손이다. 유년시절부터 부모



님께 효선이 지극하고 집안일에 정성을 다하여 동리 사람들로부터 효동이라 부리



었다. 7세때 부모님이 다같이 못된 괴질에 걸려 두분 다 위독함을 보고 어린 나



이에도 약을 백방으로 구하여 시탕하고 간호하는 행동이 어른과 조금도 다름없이



잘 하였다. 그러다 애쓴 보람도 없이 돌아가시니 비통한 마음으로 어찌나 슬프게



우는지 조상하는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의 일생은 모든 일을



함에 효로서 근본을 삼았으며 정려문은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진암에 있다.



(문헌 : 괴산군지)







30. 金萬協(김만협)



---자는 世珍(세진), 본관은 안동, 안렴사 梧隱(오은) 김사렴의 후손이며 金天海



(김천해)의 아들이다. 벼슬은 朝奉大夫(조봉대부) 童蒙敎官(동몽교관)으로 부모에



게 효행을 다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부친이 나이가 들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평



소에도 효성이 지극한 그는 효성을 다하여 동분서주하며 온갖 약을 구하여 써보



았으나 백약이 무효로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부친의 입에 넣



어 드렸다. 천우신조하여 효성이 지극한 탓인지 5일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부친상을 당하여 20리 떨어진 괴산읍 질골에 정하고 예법에 따라 3년간 복상동안



은 한서풍우를 불문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묘하였으며, 3년 복상동안은 죽을



먹으며 복상을 마쳤다고 한다. 3년간 성묘 다니는 동안 하루는 묘소 근방의 산에



불이 일어나 부친의 묘소까지 번져왔다. 너무나 놀란 그는 옷을 벗어 물을 적셔



서 있는 힘을 다하여 불을 껐다. 그후 화상과 화기를 마셔 병을 얻게되어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숙종조에 정려문이 세워져 괴산군 문광면 신기



리에 있다.(문헌 : 괴산군지)







31. 金稶(김욱). 金稙(김직). 金 (김륙). 金 (김수)



---본관은 안동, 김만협의 아들들로서 모두 부모를 위하는 誠孝(성효)가 정려했



다. (문헌 : 괴산군지)







32. 金 溢(김 일 1719∼ )



---자는 益三(익삼), 본관은 안동, 김만협의 5세손이다. 효자 가문에 태어나 효성



이 지극하여 부모 곁을 지키어 조석으로 잠자리를 살피어 문안드리며 부모가 병



환이 있으면 지성으로 약을 달여드렸다. 나이 13세에 모친이 오랜 병환으로 신음



하니 백약이 효험이 없어 마지막으로 산제를 베풀어 3개월동안 하루같이 험한 산



길을 왕래하며 산신에게 기도를 드렸더니 지성이 감천하여 모친의 병환이 나았다



고 한다.



---가세가 청빈하여 어머니 봉양이 어려워서 마을의 제사집을 다니며 음식을 얻



어다가 공양하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서울에서 수일간 머



무르게 되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병환이 들어 자기를 부르고 있는 꿈을 꾸어 심



상치 않아 과거를 포기하고 황급히 돌아와보니 노모가 병석에 누어 있었다. 지성



으로 간호하여 치유케 하고, 천수를 다하여 죽으니 10리 밖에 장사하고 궤연에서



잠을 자며 풍우한서를 무릅쓰고 3년동안 하루같이 시묘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33. 金洛春(김낙춘)



---자는 聖團(성단), 본관은 안동, 암렴사 김사렴의 후손이며 募梧齋(모오재) 金



琦(김기)의 손자이다.







34. 金洛新(김낙신)



---자는 命汝(명여), 낙춘의 아우이다. 가세가 극빈하여 근검 노력으로 노부의 구



미에 맞는 음시과 몸을 편하게 할 의복을 마련하기에 힘쓰더니 연로한 부친의 병



이 위중하여 자신도 육순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개월동안 잠시도 병석을 떠나



지 않고 시탕하며 병간호에 정성을 기울였다. 부친상을 당하여 여러 동생을 거느



리고 상례를 다하며 3년을 하루같이 성묘했다.(문헌 : 괴산군지)







35. 金善應(김선응)



---자는 餘慶(여경), 호는 艮庵(간암), 본관은 안동으로 효자 김시응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청백하고 형 시응과 동생 대응과 함께 부모에게 효성을 지극



히 하였다. 親齊(친제)에 지성으로 侍湯(시탕)을 하였고 하루는 홀연히 산비둘기



가 부엌으로 날아들어 끓여드렸더니 효험이 있었다. 급기야 돌아가시니 3년동안



시묘를 살았으며 哀號逾禮(애호유례)하니 사림이 薦褒于(천포우) 道營(도영)하여



有嘉賞之題(유가상지제)하였다.(문헌 : 괴산군지)







36. 金大應(김대응)



---자는 有慶(유경), 본관은 안동이며 효자 김선응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천성



이 淳厚(순후)하고 형 시응. 선응과 함께 지성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朝耕暮歸(조



경모귀)하여 밤 늦도록 시측하고 一不違命(일불위명)하며 侍父業農(시부업농)에



當起墾之役(당기간지역)하여 家有二狗而(가유이구이) 含塊石(함괴석) 隨後之異(수



후지이)하니 此非信及豚魚耶(차비신급돈어야)아 及丁憂(급정우)에 僻踊號哭(벽용



호곡)은 今人感淚(금인감루)하며 居盧三年(거로삼년)하고 泣血終祥(읍혈종상)하니



族人聲應(족인성응)이 嘆贊(탄찬) 曰(왈) 父孝母烈(부효모열)하고 又生三孝(우생삼



효)하니 世所○有云(세소○유운)하고 사림이 薦于官營(천우관영)하여 有衰奬之文



(유쇠장지문)했다.(문헌 : 해동삼강실록)







37. 金煥極(김환극)



---본관은 안동, 안렴사 김사렴의 14대손으로 증평읍 남하리에서 태어났다. 어려



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의 마음을 항상 기쁘게 해드리며 겨울에는 저녘에



이부자리를 펴놓고 들어가 따뜻하게 하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부모님의 의복을



입어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는 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눕게되자 변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아 병증세를 파악하고 백방으로 약을 구



해 썼으나 별로 효험이 없자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하루도 빠짐없



이 얼음물로 목욕하고 하늘에 기도드렸으나 급기야 상을 당하니 지극히 애통해



하였다. 3년간 시묘하였는데 죽은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의 증



직을 받았다.(문헌 : 괴산군지)







38. 金好九(김호구)



---본관은 안동, 안렴사 김사렴의 17대손으로 부모를 봉양함에 지성이 극진하였



다. 일찍이 서울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중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



고 급히 집으로 돌아오는데 잡초속 팻말에 「藥劑(약제)」라 써붙여 있으므로 행



여나 하고 뜯어 지고 돌아와 시탕하여 드리니 차도가 있었다. 또 다시 병이 위



중하여 생선을 해드리고자 연못가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었는데 홀연히 한



마리의 뱀이 무엇을 물고 물속에서 나와 그가 앉은 자리 위에 놓고 가므로 괴이



히 여겨 그 물건을 시탕해 드렸더니 효험이 있었다. 노환으로 병이 위중하게 되



자 변을 맛보고 단지주혈하였으나 천수를 다하여 상을 당함에 3년동안 여막살이



를 하고 소식하며 머리를 빗지 않았다.(문헌 : 괴산군지)







66. 金孝根(김효근). 金友根(김우근) 형제



---두 형제는 안동김씨로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이질에 걸려서 생선을 먹



고 싶어 하나 구하지 못하여 시냇가에 나가서 통곡을 하니 뱀장어가 뛰쳐나와서



이것을 삶아 드렸더니 바로 병이 낳았고 나이 60이 넘어서도 항상 어린이가 재롱



하는 것 처럼 재롱을 보여드려 기쁘게 하였으며 약을 다려드릴 때는 변의 맛을



보아 병세 및 건강을 판단하여 약을 썼으며 친상을 당하여서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므로서 후손들이 그 효를 길이 남기기 위하여 1975년 괴산군 증평읍 남하리에



효자비각을 세웠다.(문헌 : 효열행기명시설물지(충청북도 1893))







106. 安得商(안득상)의 처 안동김씨



---안동김씨는 안렴사 김사렴의 후손이고 김재성의 딸로 순흥 안득상의 처이다.



나이 17세에 출가하여 20에 남편이 요절하니 혈육조차 없어 바로 남편의 뒤를 따



라 죽으려 하였으나 마침 늙은 시어머니가 병들어 오랫동안 누어 있으므로 아픔



을 참으며 변을 맛보아 가며 시탕하고 하늘에 기도하였으나 상을 당함에 예로써



3년을 마치고 홀시아버지를 받들기 지성으로 하여 조그만치도 그 뜻을 어기지 않



으며 의식범절을 극진히 봉양하니 사람들이 효열쌍전이라 칭찬하였다.



(문헌 : 괴산군지) "끝"









▣ 김태서 - 자료 감사드립니다.

▣ 김주회 - 무궁무진한 시군지 자료소개! 감사합니다. 요즘 제 눈이 행복합니다.

▣ 김항용 -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상기의 괴산군지의 내용이 본 홈의 제학공파 소개란과 기타소개란의 <괴산의 안동김씨 소개>란에 들어 있기도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중복작업의 노역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제가 미처 찾지 못한 내용을 찾아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 김재익 -

▣ 김영환 -

▣ 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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