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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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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6-16 08:20 조회1,75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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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주의 병호(문)종친님께서 보내 오신 메일입니다. 
<경주읍지>(2003년 국역 출판)에 나오는 선조님 관련 자료를 발췌, 정리하시어 보내주셨습니다.
이 경주읍지는 1669년 발간된 동경잡기와 1745년 발간된 경주읍지를 기초로 1932년 손상익등에 의하여 석인본으로 발행한 책이라고 합니다.
 내용을 보면, 
 1. 매년 경주 미추왕능에서 거행되는 신라김씨 향사는 김시양 선조님이 관찰사로 도임하신 이후부터 계속되었음과,
 2. 상서공(휘 효인) 선조님께서 보문각(寶文閣) 검감(檢勘) 직에 있었던 기록, 
 3. 문온공 할아버지의 다음 시를 보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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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慶州邑誌卷四(祠廟) 原文 1쪽
敬順王影堂: 在府 東北四里 每節日 州首吏 率三班以祭 天啓 丙寅 觀察使 金時讓 以姓孫 巡到本府 行祭影堂會鄕之 姓孫議定 有司以 修祀事. 歲以爲常 景宗丙寅 移建 東泉村 宣額 敬順王殿 降香燭 正宗甲寅 移建 干皇南里奉 敎竪碑 高宗戊子 勅議政府 以味鄒文武兩王 列享 宣額
崇惠殿置 參奉一人用本孫
- 경순왕 영당 : 부 동북쪽 4리에 있다. 절후일마다 경주의 우두머리 아전이 삼반관속(조선시대 지방관아에 딸린 향리. 군교. 관노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거느리고 제사를 지냈다. 천계 병인년(1626)에 관찰사 김시양이 성손으로서 순찰하다가 경주에 이르러 영당에 제사를 올렸다. 이때 고을의 성손들이 유사를 정하고 제사 받드는 일을 의논하며, 해마다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경종 병인년(1722)에 동천촌 으로 옮겨 세웠다. 임금이 경순왕전이라 액을 내리고, 향을 피우며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정조 갑인년(1888)에 황남동으로 다시 이건하였으며 고종 무자년에 세운 비에 의하면 이때부터 미추왕과 문무왕을 열향하도록 의정부에서 칙령과 숭혜전이라 액을 내렸으며 참봉 1명을 두었다.(참봉은 성손을 씀) 

2. 慶州邑誌卷四(名宦) 原文 18쪽
金孝印 安東人 高宗時 官至 寶文閣檢勘 善隸書
- 김효인 : 본관은 안동이다. 고종 때 보문각 검감에 이르렀고 예서를 잘 썼다.

3. 慶州邑誌卷八(題詠) 原文 38쪽
金九容送權府尹詩. (권부윤을 보내며 김구용)
 
鷄林樹色望中靑  /  계림의 나무 빛이 눈앞에 푸른데
一點文星降翼精  /  한 점의 문성이 익성에 내려왔네.
旌旆影斜春日暖  / 깃발 그림자에 봄날은 무르익고
謳歌聲隱霄雲生  / 노래 소리 은은한데 멀리서 구름 피어오른다.
千年故國多遺跡  / 천 년 고국엔 수많은 유적이고
十載曾遊慘別情  / 십 년을 같이 즐기다 이별하기 안타깝네.
遙想倚風樓上月  / 의풍루에 달 떠오름을 생각하면
間吹玉笛有餘淸  / 그 뉘의 옥적은 맑은 음향을 남기는 듯.
 
 * 府尹先生案에 記錄된 權府尹에 대하여
부윤 : 봉익대부 관내권농방어사 권사복 갑인년(1374) 2. 17일에 도임하고 동년 12. 29일 상경하다.
府尹 奉翊大夫兼 管內勸農防禦使 權思復 甲寅 二月十七日 到任 同年    十二月二十九日 上京 恭愍王薨 僞主辛禑立

- 문온공 할아버지와 동시대에 경주부윤으로 재직하시고 권씨 성을 가진 분은 유일하게 위에 소개된 권 부윤밖에 없음. 문온공께서 36세에 지으신 시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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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상서공(휘 효인) 께서는 1241년 경주유수로 도임하신 적이 있는데
상기 경주읍지 내용으로 보아 1224년 보경사 원진국사비를 세울 당시의 이전에
경주에서 관직을 역임하신 듯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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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24년 (경북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를 이공로 찬, 김효인 書로 세웠다. 당시 "장사랑 대관서승 겸 보문각 교감"을 역임 &lt;보경사 원진국사비문&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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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辛丑(1241년)에 경주유수로 도임 &lt;국역 동경통지&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