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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소개 된 <서재> 책자 소개와 선조님 소개-백곡, 문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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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7-16 13:21 조회1,71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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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서적 <서재>라는 책(고전연구소 사암 편저. 포럼출판사 간. 2007. 7. 10)을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래와 같은 백곡 김득신 선조님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책 내부에는 여러 학자, 명인들과 서재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문온공 김구용 선조님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도 한 권 보내 왔는데 이 속에는 백곡선조님과 관련해서는 억만재와 함께 다독의 특성과 묘비명을, 문온공 선조님은 약력과 함께 백문보(1303-1374)의 척약재기(척약재 서재에 부친 글)가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지난 2개월 전에는 <포럼출판사>의 한 편집 담당자가 제게 전화하여 우리 홈페이지에 있는 백곡선조님 관련 사진의 전재를 요청해 와 이를 허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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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서재 이름짓기

김기철 출판팀장 kichul@chosun.com
입력 : 2007.07.13 23:59
  • 2007071301029_0.jpg
  • ▲ 김기철 출판팀장
  • 17세기 명문장가 김득신(金得臣)은 충북 괴산 집의 자그마한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불렀습니다. 1만 번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집에는 그가 평생 1만 번 이상 읽었다는 글 36편의 목록이 걸려있습니다. ‘사기’의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1만3000번을 읽었다지요.

    김득신은 어릴 적 우둔했습니다. 배우고 돌아서면 금새 잊어버려 외삼촌이 글 공부를 그만두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김득신은 그러나 이런 비아냥에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공부법을 찾았습니다. 남들이 열 번, 스무 번 읽을 때,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독서법으로 59세 때 과거에 급제했고 당대의 시인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고전연구회 사암이 엮은 ‘서재’(포럼)는 옛 선비들의 서재에 얽힌 내력을 소개합니다. 선비들에게 서재는 정신의 치열한 전장(戰場)이자 사색의 공간이었습니다. 유성룡, 송시열, 정약용, 정약전, 이덕무 같은 당대의 지성들은 서재에서 뜻을 세우고 경륜을 가다듬었습니다. 유성룡이 안동 하회마을에 세운 서재는 ‘원지정사’(遠志精舍)입니다. 선비로서 원대한 뜻을 품고 곧게 살겠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원지’라는 약초는 ‘소초’(小草)로도 불렸던 모양입니다. 유성룡은 평소 ‘원지’ 운운하다가 조정에 나가면 권력과 출세 앞에서 ‘보잘것없는 풀’처럼 밟히는 자신을 탓하는 뜻으로 썼다고도 합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조카 허친(許親)은 서재에 ‘통곡헌’(慟哭軒)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자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는 세상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기쁨을 즐기므로, 나는 근심을 즐거워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얻으면 기뻐하지만, 나는 내 몸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겨 팽개친다.”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난 다르게 살겠다”는 선비의 고집이 담겼습니다.

    경기도 일산소방서에는 ‘지경재’(紙鏡齋)라는 이름의 11평짜리 서재가 있습니다. 지난 5월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을 통해 서재를 만들면서 김충식 소방서장이 고교 동기동창이자 한문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에게 받아온 서재 이름입니다. 책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서재는 어떤 이름을 달고 있습니까?

댓글목록

김상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상석
작성일

  곡학아세(曲學阿世)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했던 지독한 옛 선비들의 정신적 공간이었던 서재(書齋)에서 지적 온고지신을 음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