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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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7-10-01 17:37 조회1,432회 댓글5건본문
1981년 仲秋-단양(신변잡기)--#1
내가 어른이 되면서 매년 이맘 때 겪는 가슴앓이는 어머니의 미소를 닮아 있는 메밀꽃이 피고지며 딱딱한 열매를 맺기까지 계속된다.또한 어느새 눈물이 고이고 눈자위가 붉어져 난 벌써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황량한 고향의 가을 들녘에 서있다.
메밀은 그 특성상 척박한 기후조건에서도 잘 견디며 원래부터 야생식물이었기에 건조한 땅에서도 싹이 잘 트고 스스로 제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열매는 육질이 단단하고 각이 선 것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타 농작물에 비해 비교적 손이 덜 가고 생육기간이 짧아 이모작이 겨우 가능한 산간에서 주로 겨울을 보내기 위한 구황작물로 인식되었으나 작금엔 국수나 냉면,수제비,묵의 원료로 쓰여 별미로 대접을 받는데 손색이 없다.
지금도 고향을 찾을 때면 야산을 일궈 메밀을 수확하시던 고개를 돌아가야 하는데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그 자리엔 생전의 어머니가 서 계신다.난 도저히 그림자를 밟을 수 없어 한참을 비탈진 산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잔영을 지우고 나서야 고향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메밀을 부쳐먹던 손바닥만한 가파른 골짜기에도 박정희 정권 때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십字형 횟가루가 뿌려져 씨알 굵었던 메밀은 이제 담배나 배추,콩을 수확하고 남은 밤나무나 사과나무가 있던 밭에서 흩뿌려져 다시 그 싹을 틔우게 되는데 이 무렵엔 성장을 멈춘 오이 넝쿨에 늙은 오이가 쭈글쭈글하게 매달려 있을 때다.
81년 당시 나는 단양에서 읍내의 공고를 다니다 말고 향리에서 양친을 수발할 목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시커먼 얼굴로 농사를 거들고 있었는데 왕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밭 언저리가 어두워지더니 금새 큰산(금수산-1016m을 그렇게 불렀다)에서 부터 빗줄기가 사나워져 이웃한 일꾼들은 모두 달아나고 어머니와 둘이서 가을비가 스며드는 메밀밭을 바라보며 비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 해 추수를 미처 마치지 못하고 양친의 간곡한 설득에 밀려 서울로 올라와 다음 해에 인문고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메밀농사가 되고야 말았다.
몸을 제대로 돌보시지 않으시더니 그만 병을 얻어 떠나시는구나.아 서러워라! 가을 들판의 어머니시여 어찌하여 이렇게 일찍 세상을 등지시나이까.
아 하!,당신께 그 귀했던 아들의 졸업을 못보시고 세상과 이별을 하시다니요,가신지 스무 해가 다 가도록 서러운 가을날 따스한 햇살 속에 고운 자태로 영글어 가는 메밀꽃에 숨으셨나요.바라건대 고단하신 몸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코스모스길 바라보시며 편히 잠드소서!
늦가을 생전의 어머니를 그리며 불효자는 울어 슬픔을 달래려 합니다.어머니! 부끄럽지는 않사옵니다. 아들 頓首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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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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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읽고 다시 읽습니다.
대부님, 요즘 새벽 서너시쯤 달이 참 밝아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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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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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메밀꽃 속의 어머니>를 비통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에 가을이면 더 깊은 가을이 되는 님의 가슴도 알았습니다.
이 가을엔 기쁨과 활력이 넘치고 큰 축복도 받는 계절이 되시길 빕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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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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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가슴이 짠하네요. 어머니는 늘 우리 가슴속에 메밀꽃처럼 아련한 존재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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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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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당신의 향기처럼 하얀 그리움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어가는 가을에 애태워 피는가.
아련히 스며드는 思母.
김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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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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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뭉클합니다.ㅠㅠ
달밤에 눈온듯한 메밀밭을 엄마손 잡고 기억이 나네요^^
벌써 떠나온지 30년...
이 글을 보니 그곳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까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