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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리고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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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7-10-18 19:26 조회2,37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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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의 바람(希), 광명을 찾다!-#4

 필자의 말(글을 올리기에 앞서)-먼저,종교적인 성향이나 배타적 성격으로 글을 쓰는 것이 절대 아님을 밝혀둡니다.본 홈은 성격이나 특성상 비조이신 대보공으로 부터 시작하여 신라의 끝 임금이신 경순왕을 넘어 고려조 몽골(원) 간섭기의 중시조이신 충렬공을 지나 여말선초의 격동기에 생몰하신 파조 이후-- 전조에 비해 비교적 풍부한 역사적 사료와 개인 집필,다양한 서적의 출간이 많았던 조선조,일제 강점기는 물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웃대 할아버님들과 함께 그와 관련(이웃)한 명확한 근거자료나 적어도 추론해 볼 여지가 있는 사안들로 즐비합니다.

 본인은 보학이나 문중,뿌리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면 서슴지 않고 본 홈을 소개하며 자랑합니다.아무 망설임 없이 방대한 자료의 우수성,명확성을 거론하며 오늘이 있기까지 아낌없이 투혼을 불사르며 헌신해 주신 현종제위의 필설로 다 하지 못하는 노고를 일러줍니다.그러면,지인들 또한 스스로 인정을 해 줍니다.

 하지만,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아직은 이처럼 방대한 자료가 인물,시대적 흐름 등 다양한 각도에서 집대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여기에는,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일부 파종회의 관심결여와 지역종친회의 구심점 약화,검증,고증을 통한 자료의 명확한 정리에 대해 그 누구도 어떠한 확정이나 입장표명이 없다는 것이 지적되며 또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도 전문인력의 미비로 인해 일부 종인들께 만 의지를 하다 보니 시간과 경비문제로 인하여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미흡하다 생각하시며 계속해서 도처에 묻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자료문건들이 있을 거라 굳게 믿고  그 실마리를 찾아 지엽적인 것이라도 관계자료들을 수습하고 계시는 뜻있는 현종님들의 탐구열정을 알고 있기에 본인은 감히 더 이상 언급을 할 수 없습니다.다만,끝도없는 미완의 모든 자료들이 총체적으로 집대성 되는 날까지 "무수한 음성을 들으며 말없이--흘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리"를 들으며 현종제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등뒤에서 말없이 미력으로 응원할 것입니다.

 본 홈의 특성이나 흐름은 이상과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질적인 것입니다.문학도 그러하듯이 본 홈 역시 여러 장르가 올라 올 수 있는 것입니다.너무 딱딱하다거나 그 어떤 편견없이 특정 영역에 구애받지 않고 종인들께서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이고 멍석이며 회관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본인이 최근 홈의 본질과 부합하지 못하는 <신변잡기>를 올린 것은 다만 아직 학문이 짧고 글재주가 없음을 스스로 탓하여 홈을 사랑해 주시는 많은분들의 빈축을 살까 우려하는 맘 뿐이었으니 삼가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라옵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가을이 물들 때--끝이 없는 역사,고생대도 역사요,작년도 역사고 어제도 역사이며 아까도 역사이고 보면 개인적으로 짬내어 잠시 동심의 모태가 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공감하는 분들은 잠시 시름을 달랠 수 있을까 해서 사견을 적어봅니다.

노승의 바람(希), 광명을 찾다!-#4

 최인호의 <길없는 길>을 읽다가 보니 금강산의 <건봉사-절>가 나오길래 반가운 마음에 잠시 책을 놓았다.작년 이맘때 동해로 납품을 갔다가 그냥 얼른 돌아오기가 아쉬워 국도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서 찾아간 곳이 <건봉사>였다.해가 다 떨어져 어슴푸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미리 계획하고 간 것이 아니었기에 서둘러 이정표만 보고 무조건 따라가다 경내로 접어 들었는데 벌써 단풍이 찾아든 산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사찰은 이내 어둠을 뒤집어 쓰고 웅크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내가 알프스스키장에서 일할 때 들은 이야기로는 남쪽에 금강산이 일곱 봉우리가 있다고 전해 들었으니 알고 온 것 또한 적어도 두 번째라 역시 산세가 뛰어나다.또한 최근에야 개방을 해서 이미 절터 앞으로는 신작로가 났고 전에는 범접할 수 없었다 생각하니 감회도 남달랐다.

 더듬거리며 불빛을 따라가니 그곳엔 부처님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준다.저녁공양이 이미 끝난 시간이라 발길을 돌리려다 말고 언제 또 기회가 올 지 몰라 봉안되어 있는 장소를 물어 찾아갔다.

 감히 어둠조차도 얼씬거리지 않을 분위기가 엄습하던 그곳의 문을 살며시 열고 발을 들여 놓다가 깜짝 놀라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은은한 불빛 사이로 가사와 장삼이 드러나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노승의 등뒤로 짐작하기 어려운 무게가 감지되었다.노승은 선채로 목탁을 쥐고만 있었는데 참선하고 있는 자세나 기품으로 보아 생불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면벽한 노승의 이마에 미소가 돌아"라는 경이적인 싯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 일찍이 유불선을 통해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유리로 마련한 <치아사리> 봉안장소는 이미 안전장치로 굳게 닫혀있어 그 어느 누구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는데 내가 잠시 머뭇거리며 인기척을 내다 노승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서로 한참을 침묵하였는데 노승은 갑자기 목탁을 한손으로 움켜쥐더니 비밀스런 장소에서 키를 찾아와 안전장치를 해체하고 나를 돌아본다.아! 나는 보았다! 잊혀진 제국 가야국 허황후의 고향에서 저 대륙 깊숙한 곳을 지나 금강산 자락에 모셔진 치아사리를------

 마주친 생불의 얼굴에서 광명을 보았고 독경이 이어지는 경내에 풀어진 개 한마리가 나를 배웅한다.덜그럭거리는 빈차에 빛을 가득 실었다.빛은 무게도 없었고 시끄럽지도 않았다.시동을 거니 큰 개가 길게 울었다.컹컹 짖지 않고 우엉 우엉 덩치만큼이나 크고 길게 울었다.신작로로 접어들 때까지 울어댔다.

 74년- 마당을 가로질러 길게 늘어선 전봇대가 가볍게 흔들렸다.목도로 여름내내 어른들에 의해 끌려 온 콘크리트 전봇대에서 불빛이 일었다.전봇대 밑으로 낮에 후불(위로 딸이 둘밖에 없었는데도 할머니가 붙여 줌)이네 할머니의 상여가 지나간 자리가 질퍽하게 드러났다.시골은 그저 땅이 질면 진등이고 마른등이면 건등리로 붙여진다는 나름의 이유를 크면서 알았다.

 그저 백열등 한 개를 켰을 뿐인데 "상석이 너는 조선의 큰 인물이 돼야한다!"하시던 후불이 할머니의 음성이 무덤을 뚫고 빛을 따라 왔다. 어린 나는 '조선'을 그냥 한국으로 이해했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안방,건넌방,사랑방,부엌,잠실(누에를 치던 외양간 옆)을 차례로 돌며 호롱을 들어다 마루 밑 봉당으로 옮겼다.심지에 남아 있던 기름을 꼭 짜서 댓병에 담는 일도 잊지 않았다.댓병 입구를 타던 심지를 뭉쳐서 막았다. 훗날 당숙모가 오셔셔 호롱을 서울로 갖고 가셨다.

 학교가는 길에 친구들은 방마다 전등을 달았는지 벽을 뚫고 줄여서 달았는지를 놓고 고만고만한 것들이 부를 가늠하며 옥신각신했다.

 몇 년 후엔 광명천지가 된 우리마을에 안테나가 하나 둘씩 올라왔다.테레비가 들어오는 것이다.이젠 등하교길에 동네마다 안테나수를 통해 부를 가늠하기 시작했다.그러는 사이 면소재지 근처부터 전화를 놓기 시작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대부님 따뜻한 마음 다 아실 겁니다.
"그저 땅이 질면 진등이고, 마른 등이면 건등리"이듯 말입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lt;노승의 바람&gt;과 &lt;광명을 찾다&gt;는 몽타쥬기법,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한 모더니즘계열의 기막힌 표현법처럼 보입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