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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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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6-04 17:05 조회2,0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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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08



옛날 선조님들의 독서와 관련하여 백곡 김득신 선생의 독서 이야기가 작년에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에 기사화된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문화)

[책마을]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 책 읽는 소리 (2001.07.20)





청나라 때 김성탄의 ‘쾌설’은 세상 살아가며 통쾌한 장면을 하나씩 떠올려 적은 33칙으로 된 글이다. 그 가운데 “자제들이 글 외우는 소리가 유창하여 마치 병 속의 물을 따르는 것만 같으니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란 것이 있다.

어린 것이 어느새 글을 익혀 그 어려운 글을 줄줄 읽을 때 과연 흐믓하지 않을 어버이가 어디 있을까?



옛날의 독서는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로 읽는 독서였다. 서당에서는 낭랑하게 목청을 돋워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다. 선생님은 좌우로 몸을 흔들고, 학생은 앞뒤로 흔들며 읽었다. 낭랑한 책 읽는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그렇게 읽다 보면 그 가락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스며 들어, 뜻을 모르고도 글을 외울 수 있었다. 의미는 소리에 뒤따라 왔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총명한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배우지도 않은 글을 외웠다.



● 머리가 나쁘기로 유명했던 김득신은 백이열전을 1억1300번이나 외워, 그 호를 억만재라고 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백이열전을 외웠는데, 그렇게 많이 외운 백이열전을 중간에 깜빡 잊어 버렸다.



그러자 곁에서 고삐를 잡고 있던 하인이 막힌 부분을 외워 주었다. 하도 많이 들어서 뜻도 모르고 외웠던 것이다. 머쓱해진 김득신은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 내 대신 말을 타고 가라며 종을 태우고 자신이 고삐를 잡고 갔다.







외우고 또 외우고, 읽고 또 읽었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고, 그렇게 소리를 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의미가 들어왔다. 그렇게 논어를 외우고 맹자를 외웠다. 이렇게 얻은 의미는 평생을 따라 다녔다.



강박은 ‘국포집’에서 ‘구양독서법’이란 글을 소개하고 있다. “글자의 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효경은 1,903자, 논어는 1만1750자, 맹자는 3만685자, 주역은 2만4107자, 서전은 2만5700자, 시경은 3만9234자, 예기는 9만9010자, 주례는 4만5806자, 춘추좌전은 19만6845자였다.

날마다 300자 씩 외우면 4년 반이면 다 마칠 수가 있다. 조금 우둔한 사람이라 반으로 줄여 외운다 해도 9년이면 다 외울 수가 있다.” 오! 이 단순하고 무식함이여. 외우는 데야 당할 장사가 없다.





이웃 집의 젊은이가 매일 밤 밤을 새워 글을 읽으면 옆 집 처녀는 공연히 마음이 설레었다. 도대체 어떤 젊은이일까? 옛 문헌설화 속에는 옆집 청년의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처녀가 담을 뛰어 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인지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 사이로 그를 엿보고 흠모의 정을 품었다. 어느 날 밤 담을 넘어 방으로 뛰어들자, 정인지는 그녀를 타일렀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밝은 날 모친에게 말씀 드려 정식 혼인의 절차를 밟아 맞이 하겠노라며 약속한 후 처녀를 달래어 돌려 보냈다. 이튿날 그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이사를 가 버렸다. 처녀는 상사병으로 죽었다.





조광조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낭랑한 독서성에 반한 처녀가 담을 넘었다. 조광조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돌려 보냈다. 그녀는 잘못을 뉘우치고, 훗날 다른 집안에 시집갔다.



기묘사화 때 그 남편이 조광조를 해치려 하자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 일을 이야기 하며 조광조를 해치지 못하게 했다. 심수경과 김안국, 그리고 상진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두 다 책 읽는 소리 때문에 생긴 아련한 옛날의 이야기들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읽어보니 중세 유럽에서도 책은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었다. 암브로시우스가 묵독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눈으로만 읽는 묵독은 요사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던 모양이다. 경전을 읽으면서 신성함을 놓치지 않으려면 문장의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들고 성스런 단어들은 입을 크게 벌려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고 이들은 믿었다.

그래야만 책장에 쓰여진 죽어 있던 단어들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의미화 된다고 여겼다.





동양에서도 옛 사람의 글을 소리 높여 되풀이 해 읽다 보면 옛 사람의 성기가 내 목구멍과 입술에 젖어 들어, 글을 쓰면 옛 사람의 기운이 절로 스며들게 된다고 생각했다.



글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이런 ‘인성구기’의 방법이 적극 권장되었다. 백독, 천독의 목표를 세워 한 겨울을 산사에서 나곤 했다. 한번 읽을 때마다 하나씩 뒤집어서 읽은 회수를 표시하는 서산은 어느 집에나 있었다.



이제 책 읽는 소리는 뚝 그쳤다. 한글을 갓 깨친 어린아이들이나 떠듬떠듬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소리를 내어 읽어 상쾌한 리듬을 느낄 글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일까? 달 밝은 밤 옆집 총각의 낭랑한 독서성에 가슴을 두근대던 처녀들의 설레임이 새삼 그립다.



(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











(조선일보/문화)

[책마을]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선인들의 독서론 (2001.04.27)





우암 송시열은 자신의 화상에 쓴 글에서, “고라니와 사슴과 더불어 사는, 쑥대로 지붕을 인 집에서, 창 밝고 사람은 고요한데, 배고픔을 참고서 책을 읽노라.( 록지군, 봉 지려, 창명인정, 인기간서)”고 썼다.

깊은 밤 나즈막히 청을 돋워 책을 읽는다. 달빛에 창이 훤하길래 고개를 들다가 문득 고요를 느꼈다. 제 소리에 놀라 책 읽기를 멈추니 창자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삼연 김창흡은 ‘예원의 열가지 즐거움(예원십취)’이란 글을 남겼다. 열 가지 즐거움 가운데 독서와 관련되는 것이 네 가지나 된다.

“세모의 산속 절에서 눈보라 흩날릴 제, 밤은 춥고 중은 잠들었는데 혼자 앉아 책을 읽을 때.(애사세모, 풍산교산, 야한승면, 고좌독서)”

“좋은 밤은 고요히 맑은데 밝은 달이 방에 비쳐들어, 부채를 치며 글을 외우니 그 소리가 유창할 때.(량야숙청, 랑월입헌, 격선송문, 성기 창)”

“산에 가서 책을 읽다 목표를 이뤄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충만하고 기운이 넘쳐나 붓을 내달림이 신들린 듯 할 때(입산독서, 과만귀가, 심충기일, 하필여신.)”

“기이한 글과 구하기 힘든 책이 친구 집에 있단 말을 듣고, 하인을 보내 빌려와서 황급히 묶은 포장을 뜯을 때.(기문벽서, 문재교우, 송노걸래, 급해포 )”



마지막 대목을 읽다가는 나도 몰래 슬몃 웃음이 나온다. 그는 독서에는 죽은 독서와 산 독서가 있는데, “책을 덮은 뒤에 그 내용이 또렷히 눈앞에 보이면 이것이 산 독서이고, 책을 펴 놓았을 때에는 알았다가도 책을 덮은 뒤에 망연하면 죽은 독서”라고 말했다.



옛 문집 속에는 독서에 관한 글이 적지 않다. 독서가 그네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 신기할 것도 없겠다.

송시열의 ‘간서잡록’은 독서비망기이고, 이이도 자신의 ‘성학집요’ 속에 ‘독서지법’의 장을 따로 마련하여 옛 성현의 독서법을 차례로 소개한 바 있다.

하홍도의 ‘독서설시인’이나 성문준의 ‘독서의 일곱가지 비결(독서칠결)’ 등은 후학들에게 효율적인 독서의 방법을 안내하기 위해 쓴 글들이다.



유희춘은 ‘독서명’에서 “널리 보고 곰곰히 생각하면, 온갖 의심이 점차 사라져, 활연히 깨달음이 있고, 초연히 자득하리라.(박관정사, 군의점석. 활연유각, 초연자득)”고 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일기는 거의 독서 비망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빌려본 책, 빌려준 책의 내역에서부터 겉 장정을 새로 꾸민 일까지 책과 관련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적고 있어, 당대 지식인들의 독서 범위와 습관, 관리 방법과 서적 유통 양상까지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 김득신은 ‘고문36수독수기’란 흥미로운 글을 남겼는데, 자신이 즐겨 읽은 36편 옛글의 읽은 횟수를 작품별로 꼼꼼히 기록한 글이다. 그는 스스로 ‘노자’를 2만번을 읽었고, ‘사기의 백이열전은 무려 일억 만 천 번을 읽었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집이름을 억만재라 했는데, 이것은 백이열전을 읽은 횟수로 은연 중에 자부를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미련하다 못해 미욱하기까지 한 독서였겠는데, 그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내어 읽는 성독이라고 보면 아무리 과장이 있다 해도 그저 어안이 벙벙해진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일반적으로 책은 빌려서 읽었다. 송준길은 남에게 책을 빌려 주었다가 돌려 받을 때 책에 보풀이 일지 않았으면 책을 열심히 읽지 않은 것을 몹시 나무라며 다시는 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빌려간 이가 야단을 안맞으려고 일부러 책장을 험하게 넘겨 보풀이 일게 해서 돌려주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빌려간 지 10년이 넘도록 책을 안 돌려 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반납을 독촉하는 허균의 편지나, 책마다 장서인만 꽝꽝 찍어 놓고 책을 절대로 안 빌려 주던 친구를 통렬하게 나무란 박지원의 편지를 읽다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책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계는 ‘잡지’의 첫머리에서 “오직 책 만은 부귀나 빈천,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 권을 읽으면 한 권의 보탬이 있고, 하루를 보면 하루의 유익이 있다. 이 인생이 배우지 않음이 한 가지 애석한 일이고, 오늘 하루를 등한히 지나보냄이 두 번째 가석한 일”이라고 적었다. 모두 책의 고마움을 가슴으로 느꼈기에 쓸 수 있던 글들이다.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영환 -

▣ 김재원 -

▣ 김재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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