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09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2-06-04 21:03 조회2,495회 댓글0건본문
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09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백곡 김득신 선생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 배율 (排律 )
한시 형식의 일종. 율시의 정격에 구수를 더하여 지으므로 ‘ 장률 ’ 이라고도 부른다. 육조의 안연지(安延之) 등에게서 시작되었다. 당나라에 와서 이 체가 흥하였고 비로소 배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김득신(金得臣)은 초당(初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며, 남용익(南龍翼)도 초당의 4걸에게서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김득신은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에서 이 시에 대해 “ 그 시는 시상이 넓고도 기이하니, 진실로 천년에 한 번 나올 걸작이다. ” 라고 하였다. 임숙영은 또 〈 관창 觀漲 〉 이라는 시에서는 강운(强韻)을 사용하여 7언으로 200구를 지었다고도 한다.
≪ 참고문헌 ≫ 壺谷詩話, 終南叢志, 林下筆記, 文體明辨(徐師曾), 中國文學槪論(金學主, 新雅社, 1977), 中國文學槪論(鹽谷溫 著, 孫良工譯, 臺北 開明書店, 1976).
▣ 명엽지해 (蓂葉志諧 )
조선 중 · 후기에 홍만종(洪萬宗)이 지은 한문소담집(笑談集). 편찬연대는 미상이다. 원본은 행방불명이며, 일본인 마에마(前間恭作) 소장의 고사본(古寫本) ≪ 고금소총 古今笑叢 ≫ 에 들어 있는 ≪ 명엽지해 ≫ 가 널리 알려져 있다.
≪ 고금소총 ≫ 에는 유몽인(柳夢寅)의 ≪ 어우야담 於于野談 ≫ , ● 김시양(金時讓)의 ≪ 하담기문 荷潭記聞 ≫ ,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작자 미상의 ≪ 천예록 天倪錄 ≫ 등 다섯 책으로부터 인용한 54편의 이야기들 외에 부록으로 ≪ 명엽지해 ≫ 74화가 첨부되어 있다(원본은 총 54장, 107쪽, 매 쪽당 10행, 매 행당 20자).
≪ 참고문헌 ≫ 古今笑叢, 孫晉泰先生全集 3(太學社, 1982).
♠명엽지해(표지내용)/홍만종
조선 현종때의 문신 홍만종이 지은 한문소담집. 편찬연대 미상. 매편끝에 작자의 논평이 첨부. 일본인 마에마 소장의 고사본 <고금소총> 에 수록.
▣ 만록 (漫錄 )
정한 주제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쓴 글. 만록에서 ‘ 만(漫) ’ 자는 멋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거운 모양, 두루 쓰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만록은 멋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기기 위해서, 두루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명칭 또한 일정하지 않아 필자가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만록 중에서 중요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효온(南孝溫)의 ≪ 추강냉화 秋江冷話 ≫ , 김정국(金正國)의 ≪ 사재척언 思齋 燧 言 ≫ , 이륙(李陸)의 ≪ 청파극담 靑坡劇談 ≫ , 이기(李 蕎 )의 ≪ 송와잡설 松窩雜說 ≫ , 성현(成俔)의 ≪ 용재총화 弁 齋叢話 ≫ , 김안로(金安老)의 ≪ 용천담적기 龍泉談寂記 ≫ , 어숙권(魚叔權)의 ≪ 패관잡기 稗官雜記 ≫ , 조신(曺伸)의 ≪ 소문쇄록 瑄 聞 磨 錄 ≫ , 권응인(權應仁)의 ≪ 송계만록 松溪漫錄 ≫ , ● 김시양(金時讓)의 ≪ 부계기문 擥 溪奇聞 ≫ 이 있다.
그리고 차천로(車天輅)의 ≪ 오산설림 五山說林 ≫ , 신흠(申欽)의 ≪ 청창연담 晴窓軟談 ≫ , 윤근수(尹根壽)의 ≪ 월정만록 月汀漫錄 ≫ , 이수광(李 邈 光)의 ≪ 지봉유설 芝峰類說 ≫ , 유몽인(柳夢寅)의 ≪ 어우야담 於于野譚 ≫ ,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임방(林?)의 ≪ 수촌만록 水村漫錄 ≫ , 임경(任璟)의 ≪ 현호쇄설 玄湖 磨 說 ≫ , 홍만종(洪萬宗)의 ≪ 순오지 旬五志 ≫ , 김만중(金萬重)의 ≪ 서포만필 西浦漫筆 ≫ 등이 있다.
≪ 참고문헌 ≫ 大東野乘, 시화와 만록(차주환, 民衆書館, 1974).
▣ 국조시산 (國朝詩刪 )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엮은 시선집. 9권 4책. 목판본. 정도전(鄭道傳)에서부터 권필(權 億 )에 이르는 35가(家)의 각체시 877수를 수록하고, 편말에 〈 허문세고 許門世藁 〉 를 싣고 있다.
≪ 국조시산 ≫ 에 실현된 실제비평의 성과는 우리 나라 비평사상 매우 소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후대의 시인묵객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특히 시화와 비평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 김득신(金得臣)은 그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에서 ≪ 국조시산 ≫ 속에 선입(選入)된 정호음(鄭湖陰)의 〈 후대야좌시 後坮夜坐詩 〉 한 연에 대한 허균의 비평을 통하여 그의 수준 높은 감식안을 재확인하고 있다.
홍만종은 그의 ≪ 시화총림증정 ≫ 에서 “ 여타의 선집들은 모두 그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직 ≪ 국조시산 ≫ 만은 이식(李植)을 비롯한 제공들이 모두 잘 뽑았다고 한다. 이 시산이 널리 세상에서 읽혀진 까닭도 이 때문이다. ” 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우리나라에서 비평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성현(成俔)과 신흠(申欽), 그리고 허균뿐이라 하였다.
≪ 참고문헌 ≫ 國朝詩刪解題(閔丙秀, 靑丘風雅 · 國朝詩刪, 亞細亞文化社, 1980).
♠국조시산/풍악
조선 중기에 허균이 엮은 시선집. 목판본. 규장각도서.
▣ 괴산애한정 (槐山愛閑亭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정면 6칸, 측면 3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창건자는 미상이며,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된 이 정자에는 주인옹(主人翁)이 지은 〈애한정기 愛閑亭記〉가 남아 있는데, 이에 의하면 〈애한팔경영시 愛閑八景詠詩〉가 있고 이정구(李廷龜)·● 김득신(金得臣)·이호민(李好憫) 등의 〈애한정팔영 愛閑亭八詠〉이 있다.
≪참고문헌≫ 文化遺蹟總覽(文化財管理局, 1977).
♠애한정/괴산군
충북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정면 6칸, 측면 3칸.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50호.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되었으며 창건자는 미상이다. 이 정자에는 주인옹이 지은 <애한정기>가 남아 있다.
▣ 소화시평 (小華詩評 )
조선 후기의 문인 홍만종(洪萬宗)의 시평집. 2권 1책. 필사본. 저자의 나이 31세에 완성하였다. 현재까지 활자본이 발견되지 않는 상황으로 보아 미간행 또는 간행본의 산일(散逸)로 추측된다. 현전하는 필사본은 10여종이 넘는다.
≪ 소화시평 ≫ 은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책은 권두에 김진표(金震標) · 홍석기(洪錫箕) · ● 김득신(金得臣) · 홍만종의 서와 〈 소화시평제자목록 小華詩評諸子目錄 〉 이 있다. 상권 · 하권의 순으로 내용이 수록되고 이존서(李存緖)의 후발이 있다.
≪ 참고문헌 ≫ 洪萬宗의 小華詩評攷(崔信浩, 聖心語文論集 3, 1972), 洪萬宗詩論에 대하여(趙鍾業, 국어국문학 64, 1974), 洪萬宗의 生涯와 著述 上 · 下(朴魯春, 大學週報 607 · 608, 慶熙大學校, 1977), 洪萬宗의 文學批評硏究(宋熹準, 漢文學硏究 2, 啓明大學校漢文學科, 1984).
♠소화시평
조선 후기의 문인 홍만종이 31세에 완성했던 시평집. 2권 1책. 필사본. 규장각도서. 미간행 또는 간행본의 산일로 추측되며 현전하는 필사본은 10여종이 넘는다.
▣ 송파집 (松坡集 )
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李瑞雨)의 시문집. 20권 10책. 필사본. 서발이 없어 편집 경위 · 필사 연도는 알 수 없다.
● 김득신(金得臣)의 문집서인 〈 백곡문집서 栢谷文集序 〉 에서는 ≪ 사기 ≫ 열전의 〈 백이전 伯夷傳 〉 을 11만 3000번이나 읽은 ● 김득신의 다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서(書) 가운데 〈 답심참판단논갈문서 答沈參判檀論碣文書 〉 는 묘갈문 쓰는 법에 대해 고금의 차이를 들어 정도를 제시한 글이다.
≪ 참고문헌 ≫ 詩話叢林(洪萬宗).
♠송파문집3
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의 시문집. 필사연대 미상. 필사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 수촌만록 (水村漫錄 )
조선 후기의 문신 임방(任?)의 시화집. 필사본. ≪ 시화총림 詩話叢林 ≫ 권4와 ≪ 양파담원 暘 涯 談苑 ≫ 권5에 전문(全文)이 실려 있다. ≪ 시화총림 ≫ 에는 12행씩 16장, ≪ 양파담원 ≫ 에는 10행씩 23장의 분량이다.
≪ 수촌만록 ≫ 은 이식(李植) · 정두경(鄭斗卿) · ● 김득신(金得臣) · 남용익(南龍翼) · 김만중(金萬重) · 홍만종(洪萬宗) · 소세양(蘇世讓) 등의 여러 사람의 시를 중심으로 한 일화나 시평을 소개하였다. 모두 56편의 시화가 실려 있다. 매 편이 모두 시를 중심으로 한 일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화마다 서로 화답한 시를 소개하였다.
≪ 참고문헌 ≫ 詩話叢林(亞細亞文化社, 1973), 洪萬宗全集(太學社, 1980), 暘 涯 談苑(亞細亞文化社, 1981).
♠시화총림/수촌만록
≪시화총림≫ 권4에 수록되어 있는 수촌만록. 수촌만록은 조선 후기의 문신 임방의 필사본 시화집이다. 이식, 정두경, ● 김득신, 남용익, 김만중, 홍만종, 소세양 등 여러 사람의 시를 중심으로 한 일화나 시평을 소개하였다.
▣ 순오지 (旬五志 )
1678년(숙종 4) 홍만종(洪萬宗)이 지은 잡록. 2권 1책. 필사본. ‘ 십오지(十五志) ’ 라고도 한다. 이 이름은 책이 보름만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36세 되던 1678년에 이루어졌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왔다.
그러므로 자구가 틀리거나 빠진 것도 있고 단항(段項)의 누락이나 분합, 또는 상권과 하권의 구분마저 없는 경우도 있다. ≪ 순오지 ≫ 의 책머리에는 ● 김득신(金得臣)의 서와 저자의 자서가 있다. 자서에서 자신이 병으로 누워 지내다가 옛날에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 참고문헌 ≫ 旬五志解題(李民樹 譯, 乙酉文化社, 1971), 旬五志(朴魯春, 國學資料 26, 藏書閣, 1977), 洪萬宗(趙東一, 韓國文學思想史試論, 知識産業社, 1978).
♠순오지
1678년(숙종 4) 홍만종이 36세에 지은 잡록. 2권 1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소장. 십오지라고도 하며 상권에 고사일문, 시화, 양생술, 하권에 유현, 도가, 불가, 삼교합론, 문담, 문집, 별호, 속언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시화총림 (詩話叢林 )
조선 후기에 홍만종(洪萬宗)이 시화를 모아 엮은 책. 4권 4책. 필사본. 권두에 1652년(효종 3)에 쓴 홍만종의 자서(自序)와 권말에 1714년(숙종 40)에 쓴 임경(任璟) · 임방(任?)의 발문이 있다.
≪ 시화총림 ≫ 의 권4에는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남용익(南龍翼)의 ≪ 호곡만필 壺谷漫筆 ≫ , 임방의 ≪ 수촌만록 水村 亶 錄 ≫ , 임경의 ≪ 현호쇄담 玄湖 磨 談 ≫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참고문헌 ≫ 洪萬宗全書(太學社, 1980), 詩話와 漫錄(車柱環, 民衆書館, 1966), 洪萬宗의 著述(趙鍾業, 洪萬宗全書, 太學社, 1980), 洪于海의 生涯와 著述 上 · 下(朴魯春, 大學週報 607 · 608, 慶熙大學校, 1977), 홍만종의 문학비평연구(宋熹準, 漢文學硏究 2, 啓明大學校漢文學科, 1984), 洪萬宗 の 著述 と 生涯(大谷森繁, 朝鮮學報 73 · 74, 1974 · 1976).
♠시화총림/용재총화
조선 후기에 홍만종이 시화를 모아 엮은 책. 4권 4책. 필사본. 규장각도서. 이 책은 중국의 ≪역대시화≫에 비견되는 우리나라 시화의 집성이라 할 수 있다.
▣ 의유당관북유람일기 (意幽堂關北遊覽日記 )
조선 후기에 지어진 수필집. 단권. 필사본. 일명 ‘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 라고도 한다. 지은이에 대하여는 두 갈래의 견해가 있다.
〈 춘일소흥 〉 은 개인의 전(傳)을 기록한 것이다. ● 김득신(金得臣) · 남호곡(南壺谷) · 정유악(鄭維岳) · 정탁(鄭琢) · 정인홍(鄭仁弘) · 김승평(金昇平) · 조안렴(趙按廉) · 유부인(柳夫人) · 이번(李?) · 이탁(李鐸) 등 특수한 사례들을 열거, 정리해 놓고 있다. 〈 영명사득월루상량문 〉 은 대동강 북편에 세워진 득월루의 상량문이다.
≪ 참고문헌 ≫ 意幽堂日記(李秉岐 校註本, 白楊堂, 1947), 意幽堂關北遊覽日記의 作者考(李聖姸, 隨筆文學 3, 1974), 의유당유고(未發表)와 그 作者(柳鐸一, 국어국문학 76, 1977), 意幽堂日記의 作者에 대하여(柳鐸一, 隨筆文學硏究, 국어국문학연구총서 6, 정음사, 1980).
▣ 청구영언 (靑丘永言 )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이 편찬한 가집(歌集). 1권 1책. 필사본. ≪ 해동가요 ≫ · ≪ 가곡원류 ≫ 와 함께 3대 시조집의 하나이다. ‘ 청구 ’ 는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 영언 ’ 은 노래를 뜻한다(歌永言)는 말이다.
연민본(淵民本)은 이가원(李家源)이 소장한 이본으로, 이한진(李漢鎭)이 1815년(순조 15)에 자필로 쓴 책이다. 육당본(六堂本)은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였다가, 6 · 25 때 소실되었다. ≪ 송곡편가집 松谷編歌集 ≫ 은 ● 김득신(金得臣)의 서문에 ‘ 가집편기(歌集編記) ’ 가 나오므로, 그 책을 가칭(假稱)한 이본의 명칭이다.
현존하는 다섯 이본과 육당본에 대한 정리는 어느 정도 되어 있으나, ≪ 송곡편가집 ≫ 이 전하지 않는 관계로 문제가 남아 있다. 연민본과 ≪ 청구영언 靑丘 半 言 ≫ (藤井秋夫 소장)과 ≪ 화원악보 花源樂譜 ≫ 에 실린 ● 김득신의 서문에는 송곡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에 의거하여 이 서문과 ≪ 송곡편가집 ≫ 은 깊은 관계에 있으며, 여러 가집을 보완, 윤색한 것이 진본이며 육당본이라는 학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 청구영언 ≫ 에 대한 연구는 원류(源流)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재고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료의 출현이 기대된다.
≪ 참고문헌 ≫ 時調의 文獻的 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時調作品 原文轉化의 諸類型에 관한 考察(沈載完, 語文學 6, 1960), 松谷編 古本 靑丘永言의 復原問題(姜銓 瓏 , 국어국문학 47, 1970).
♠청구영언서문
1728년 김천택이 편찬한 가집.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3대 시조집이다. 1권 1책 필사본으로 규장각도서. 사진은 근대 활자본.
▣ 충주석 (忠州石 )
조선 중기에 권필(權 億 )이 지은 한시. 오언과 칠언의 잡언체(雜言體)로 모두 24구이며 ≪ 석주집 石洲集 ≫ 권2에 수록되어 전한다.
● 김득신(金得臣)은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에서 〈 충주석 〉 을 “ 극히 뛰어나다(絶佳) ” 고 평하였다.
≪ 참고문헌 ≫ 權 億 의 풍자시에 대한 小考(許捲洙, 경상대학교논문집 23, 1984).
▣ 해동시화 (海東詩話 )
조선 후기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시화집. 불분권 1책. 필사본. 편자는 조현기(趙顯期)의 손자로 본문에 나온다. 그러나 다른 대목에서 김진표(金震標)나 박장원(朴長遠) 등과 교유하였고, 또 성이 김(金)으로 나온다. 따라서 ≪ 해동시화 ≫ 는 단일한 편자에 의하여 일관되게 기술된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의 것을 모아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허균(許筠)의 ≪ 성수시화 惺 馬 詩話 ≫ · ≪ 학산초담 鶴山樵談 ≫ , 장유(張維)의 ≪ 계곡만필 谿谷漫筆 ≫ ,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윤신지(尹新之)의 ≪ 현주잡기 玄州雜記 ≫ , 이의현(李宜顯)의 ≪ 도협총기 陶峽叢記 ≫ , 이수광(李 邈 光)의 ≪ 지봉유설 芝峯類說 ≫ , 신방(申昉)의 ≪ 둔암시화 屯菴詩話 ≫ 등의 인용서목이 보인다.
≪ 참고문헌 ≫ 韓國詩話叢編解題(趙鍾業, 韓國詩話叢編, 東西文化院, 1989).
♠해동시화
조선 후기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시화집. 필사본. 규장각도서.
▣ 백곡집 (栢谷集 )
조선 중기의 시인 ● 김득신(金得臣)의 시문집. 7책. 필사본. 원래 필사본으로 전했다. 그러나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과 화재에 유실되고 남은 것을 1985년 저자의 9대손 상형(相馨)이 수습하였다. 이가원(李家源)이 편집하였다. 서울 태학사(太學社)에서 영인본 1책으로 공간되었다.
[내용] ≪ 백곡집 ≫ 제 1책 권두에는 이서우(李瑞雨) · 박세당(朴世堂)이 1686년과 1687년에 각각 쓴 서문에 이어서 오언절구 253수와 육언시 7수가 있다.
제 2책은 칠언절구 469수, 제 3책은 오언율시 462수, 오언배율 14수, 오언고시 15수가 실렸다. 제 4책은 칠언율시 286수, 칠언고시 30수, 제 5책은 동천(東川) · 소산(小山) · 순오지(旬五志) · 소화시평(小華詩評) · 관동별곡(關東別曲) 서문을 중심한 46편의 서와 19편의 기로 되어 있다.
≪ 백곡집 ≫ 제 6책에는 모두 48편의 문이 수록되어 있다. 대개가 편지 · 묘지명 · 설 · 논과 같은 종류의 글이다. 전(傳)도 3편이나 포함되어 있다. 제 7책에는 변려문(騈儷文)의 68편을 수록하였는데 대개가 제 문이나 상량문 등이다. 권말에는 부록편이 합철되어 있다.
그에 대한 묘갈명 · 행장 각 1편과 제 문 9편, 이서우의 유집서(遺集序)가 실려 있으며 독수기(讀數記) · 서독수기후(書讀數記後) · 수록(搜錄) · 기문록(記聞錄) · 종남총지(終南叢志) 등으로 꾸며졌고 마지막에는 상형의 발을 실었다.
≪ 백곡집 ≫ 의 특징은 시가 그 대종을 이루고 있다. 각체의 시를 합하면 모두 1,541수가 된다. 문은 186편이다. 이 것은 ● 김득신의 문학적 업적을 논함에 있어서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의 시 가운데에 칠언시가 압권을 이룸은 역대의 평자들이 지적한 바이다.
이 문집이 공간되면서 밝혀진 사실은 그의 득의작 가운데에 하나인 〈 마상음 馬上吟 〉 은 남용익(南龍翼)이 ≪ 호곡시화 壺谷詩話 ≫ 에서 소개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에 대한 과거의 평가에 재론을 요하게 한다.
● 김득신은 비평가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 관동별곡서 〉 에서는 정철(鄭澈)의 〈 관동별곡 〉 의 시상이 활달함을 지적하였다. ≪ 백곡집 ≫ 의 〈 평호소지석시설 評湖蘇芝石詩說 〉 에서는 정사룡(鄭士龍) · 노수신(盧守愼) · 황정욱(黃廷彧) 등의 세 사람의 시를 높이 평가하여 당대의 대가라 지칭하였다.
그 중에서 권필(權 億 )을 정종(正宗)이라 하였다. 그리고 〈 증구곡시서 贈龜谷詩序 〉 에서는 최경창(崔慶昌) · 백광훈(白光勳) · 이달(李達) 등이 향(響 ; 소리)에만 힘쓰고 이(理 ; 이치 또는 논리)를 알지 못한 것은 시에 투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정욱은 유리무향(有理無響 ; 이는 있으나 향은 없다)이었으나 유향무리(有響無理 ; 향은 있으나 의는 없다)에 비하여 낫고, 오직 권필만이 유리유향(有理有響 ; 이가 있고 향도 있다)이어서 참다운 시임을 논증하였다.
〈 소화시평서 〉 에서는 홍만종(洪萬宗) · 서거정(徐居正) · 양경우(梁慶遇)의 시화를 대상으로 그 정치함을 상호 비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한 ≪ 백곡집 ≫ 제 6책에 수록된 세 편의 전 중에서 술을 의인화한 〈 환백장군전 歡伯將軍傳 〉 과 부채를 의인화한 〈 청풍선생전 淸風先生傳 〉 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전기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시인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 김득신의 다른 일면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원본은 상형이 소장하고 있다.
≪ 참고문헌 ≫ 壺谷詩話, 國朝人物志.
♠백곡집(정곤수)
조선 중기의 시인 ● 김득신의 문집으로, 병자호란과 화재에 유실되고 남은 것을 1985년 저자의 9대손 상형이 수습하고 이가원이 편집하여 태학사에서 영인본 1책으로 공간되었다.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조선 후기의 문신 ● 김득신(金得臣)의 시화집. 1책. 필사본. 홍만종(洪萬宗)의 ≪ 시화총림 詩話叢林 ≫ 에 실려 있다.
[내용] ≪ 종남총지 ≫ 는 모두 47항목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연산군 때의 어무적(魚無迹)의 시에서부터 동시대의 남용익(南龍翼)에 이르기까지 주요인물들을 망라하여 그들의 시에 대한 평가와 우리 나라 시학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 김득신은 시명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비평의 태도에 있어서도 중요한 면들을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다.
● 김득신은 시의 본질을 “ 무릇 시는 천기(天機)에서 얻어지는 것 ” 이라 하여 스스로 조화의 공을 운용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시의 본질을 묘오(妙悟 : 묘하게 깨달음)의 세계에서 구하고 있는 셈이다.
● 김득신은 시 창작의 실제에 있어서 표현의 문제, 곧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표현의 사실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시 표현상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하면서 시의 회화성까지도 강조한다. 그는 정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는 ‘ 사경핍진(寫景逼眞) ’ 의 정신을 두드러지게 주장한다.
● 김득신은 시적 감흥을 제대로 표출하기 위하여 시어의 조탁(彫琢)과 단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보다 세련되고 보다 훌륭한 표현 욕구를 높게 평가하려는 비평안이 작용한 것이다.
● 김득신은 가치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시 작품의 예술적인 성공여부에 판단기준을 설정하여 시를 평가하는 올바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가 “ 시를 아는 사람은 시로써 사람을 취하고, 시를 모르는 사람은 명성으로써 시를 취한다. ” 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평시(評詩)의 어려움을 논하면서, 참다운 시평의 안목을 지닌 사람만이 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당시 시단에 시다운 시가 없게 된 원인을 과시(科詩)의 투식(套式 ; 굳어진 틀로 된 법식)이 널리 퍼져 있는 현실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시체를 적극 비판하였다.
[의의] ≪ 종남총지 ≫ 는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시화 중에서 비교적 내용이 전문적이고 저자의 주관이 뚜렷이 나타나 있어 시학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종남총지 ≫ 는 규장각도서 · 국립중앙도서관도서 등에 있다. 임렴(任廉)이 편찬한 ≪ 양파담원 暘 涯 談苑 ≫ 제4책에 수록되어 있다.
≪ 참고문헌 ≫ 詩話叢林, 柏谷集, 종남총지연구(허경진, 연세어문학 11집, 1978), 金得臣의 詩論(鄭大林, 李朝後期漢文學의 再照明, 創作과 批評社, 1983).
▣ 김재원 -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 김영환 -
▣ 김태서 -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백곡집 원본인 필사본 7책 유일본을 현재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 김재익 -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백곡 김득신 선생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 배율 (排律 )
한시 형식의 일종. 율시의 정격에 구수를 더하여 지으므로 ‘ 장률 ’ 이라고도 부른다. 육조의 안연지(安延之) 등에게서 시작되었다. 당나라에 와서 이 체가 흥하였고 비로소 배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김득신(金得臣)은 초당(初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며, 남용익(南龍翼)도 초당의 4걸에게서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김득신은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에서 이 시에 대해 “ 그 시는 시상이 넓고도 기이하니, 진실로 천년에 한 번 나올 걸작이다. ” 라고 하였다. 임숙영은 또 〈 관창 觀漲 〉 이라는 시에서는 강운(强韻)을 사용하여 7언으로 200구를 지었다고도 한다.
≪ 참고문헌 ≫ 壺谷詩話, 終南叢志, 林下筆記, 文體明辨(徐師曾), 中國文學槪論(金學主, 新雅社, 1977), 中國文學槪論(鹽谷溫 著, 孫良工譯, 臺北 開明書店, 1976).
▣ 명엽지해 (蓂葉志諧 )
조선 중 · 후기에 홍만종(洪萬宗)이 지은 한문소담집(笑談集). 편찬연대는 미상이다. 원본은 행방불명이며, 일본인 마에마(前間恭作) 소장의 고사본(古寫本) ≪ 고금소총 古今笑叢 ≫ 에 들어 있는 ≪ 명엽지해 ≫ 가 널리 알려져 있다.
≪ 고금소총 ≫ 에는 유몽인(柳夢寅)의 ≪ 어우야담 於于野談 ≫ , ● 김시양(金時讓)의 ≪ 하담기문 荷潭記聞 ≫ ,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작자 미상의 ≪ 천예록 天倪錄 ≫ 등 다섯 책으로부터 인용한 54편의 이야기들 외에 부록으로 ≪ 명엽지해 ≫ 74화가 첨부되어 있다(원본은 총 54장, 107쪽, 매 쪽당 10행, 매 행당 20자).
≪ 참고문헌 ≫ 古今笑叢, 孫晉泰先生全集 3(太學社, 1982).
♠명엽지해(표지내용)/홍만종
조선 현종때의 문신 홍만종이 지은 한문소담집. 편찬연대 미상. 매편끝에 작자의 논평이 첨부. 일본인 마에마 소장의 고사본 <고금소총> 에 수록.
▣ 만록 (漫錄 )
정한 주제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쓴 글. 만록에서 ‘ 만(漫) ’ 자는 멋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거운 모양, 두루 쓰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만록은 멋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기기 위해서, 두루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명칭 또한 일정하지 않아 필자가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만록 중에서 중요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효온(南孝溫)의 ≪ 추강냉화 秋江冷話 ≫ , 김정국(金正國)의 ≪ 사재척언 思齋 燧 言 ≫ , 이륙(李陸)의 ≪ 청파극담 靑坡劇談 ≫ , 이기(李 蕎 )의 ≪ 송와잡설 松窩雜說 ≫ , 성현(成俔)의 ≪ 용재총화 弁 齋叢話 ≫ , 김안로(金安老)의 ≪ 용천담적기 龍泉談寂記 ≫ , 어숙권(魚叔權)의 ≪ 패관잡기 稗官雜記 ≫ , 조신(曺伸)의 ≪ 소문쇄록 瑄 聞 磨 錄 ≫ , 권응인(權應仁)의 ≪ 송계만록 松溪漫錄 ≫ , ● 김시양(金時讓)의 ≪ 부계기문 擥 溪奇聞 ≫ 이 있다.
그리고 차천로(車天輅)의 ≪ 오산설림 五山說林 ≫ , 신흠(申欽)의 ≪ 청창연담 晴窓軟談 ≫ , 윤근수(尹根壽)의 ≪ 월정만록 月汀漫錄 ≫ , 이수광(李 邈 光)의 ≪ 지봉유설 芝峰類說 ≫ , 유몽인(柳夢寅)의 ≪ 어우야담 於于野譚 ≫ ,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임방(林?)의 ≪ 수촌만록 水村漫錄 ≫ , 임경(任璟)의 ≪ 현호쇄설 玄湖 磨 說 ≫ , 홍만종(洪萬宗)의 ≪ 순오지 旬五志 ≫ , 김만중(金萬重)의 ≪ 서포만필 西浦漫筆 ≫ 등이 있다.
≪ 참고문헌 ≫ 大東野乘, 시화와 만록(차주환, 民衆書館, 1974).
▣ 국조시산 (國朝詩刪 )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엮은 시선집. 9권 4책. 목판본. 정도전(鄭道傳)에서부터 권필(權 億 )에 이르는 35가(家)의 각체시 877수를 수록하고, 편말에 〈 허문세고 許門世藁 〉 를 싣고 있다.
≪ 국조시산 ≫ 에 실현된 실제비평의 성과는 우리 나라 비평사상 매우 소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후대의 시인묵객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특히 시화와 비평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 김득신(金得臣)은 그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에서 ≪ 국조시산 ≫ 속에 선입(選入)된 정호음(鄭湖陰)의 〈 후대야좌시 後坮夜坐詩 〉 한 연에 대한 허균의 비평을 통하여 그의 수준 높은 감식안을 재확인하고 있다.
홍만종은 그의 ≪ 시화총림증정 ≫ 에서 “ 여타의 선집들은 모두 그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직 ≪ 국조시산 ≫ 만은 이식(李植)을 비롯한 제공들이 모두 잘 뽑았다고 한다. 이 시산이 널리 세상에서 읽혀진 까닭도 이 때문이다. ” 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우리나라에서 비평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성현(成俔)과 신흠(申欽), 그리고 허균뿐이라 하였다.
≪ 참고문헌 ≫ 國朝詩刪解題(閔丙秀, 靑丘風雅 · 國朝詩刪, 亞細亞文化社, 1980).
♠국조시산/풍악
조선 중기에 허균이 엮은 시선집. 목판본. 규장각도서.
▣ 괴산애한정 (槐山愛閑亭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정면 6칸, 측면 3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창건자는 미상이며,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된 이 정자에는 주인옹(主人翁)이 지은 〈애한정기 愛閑亭記〉가 남아 있는데, 이에 의하면 〈애한팔경영시 愛閑八景詠詩〉가 있고 이정구(李廷龜)·● 김득신(金得臣)·이호민(李好憫) 등의 〈애한정팔영 愛閑亭八詠〉이 있다.
≪참고문헌≫ 文化遺蹟總覽(文化財管理局, 1977).
♠애한정/괴산군
충북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정면 6칸, 측면 3칸.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50호.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되었으며 창건자는 미상이다. 이 정자에는 주인옹이 지은 <애한정기>가 남아 있다.
▣ 소화시평 (小華詩評 )
조선 후기의 문인 홍만종(洪萬宗)의 시평집. 2권 1책. 필사본. 저자의 나이 31세에 완성하였다. 현재까지 활자본이 발견되지 않는 상황으로 보아 미간행 또는 간행본의 산일(散逸)로 추측된다. 현전하는 필사본은 10여종이 넘는다.
≪ 소화시평 ≫ 은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책은 권두에 김진표(金震標) · 홍석기(洪錫箕) · ● 김득신(金得臣) · 홍만종의 서와 〈 소화시평제자목록 小華詩評諸子目錄 〉 이 있다. 상권 · 하권의 순으로 내용이 수록되고 이존서(李存緖)의 후발이 있다.
≪ 참고문헌 ≫ 洪萬宗의 小華詩評攷(崔信浩, 聖心語文論集 3, 1972), 洪萬宗詩論에 대하여(趙鍾業, 국어국문학 64, 1974), 洪萬宗의 生涯와 著述 上 · 下(朴魯春, 大學週報 607 · 608, 慶熙大學校, 1977), 洪萬宗의 文學批評硏究(宋熹準, 漢文學硏究 2, 啓明大學校漢文學科, 1984).
♠소화시평
조선 후기의 문인 홍만종이 31세에 완성했던 시평집. 2권 1책. 필사본. 규장각도서. 미간행 또는 간행본의 산일로 추측되며 현전하는 필사본은 10여종이 넘는다.
▣ 송파집 (松坡集 )
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李瑞雨)의 시문집. 20권 10책. 필사본. 서발이 없어 편집 경위 · 필사 연도는 알 수 없다.
● 김득신(金得臣)의 문집서인 〈 백곡문집서 栢谷文集序 〉 에서는 ≪ 사기 ≫ 열전의 〈 백이전 伯夷傳 〉 을 11만 3000번이나 읽은 ● 김득신의 다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서(書) 가운데 〈 답심참판단논갈문서 答沈參判檀論碣文書 〉 는 묘갈문 쓰는 법에 대해 고금의 차이를 들어 정도를 제시한 글이다.
≪ 참고문헌 ≫ 詩話叢林(洪萬宗).
♠송파문집3
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의 시문집. 필사연대 미상. 필사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 수촌만록 (水村漫錄 )
조선 후기의 문신 임방(任?)의 시화집. 필사본. ≪ 시화총림 詩話叢林 ≫ 권4와 ≪ 양파담원 暘 涯 談苑 ≫ 권5에 전문(全文)이 실려 있다. ≪ 시화총림 ≫ 에는 12행씩 16장, ≪ 양파담원 ≫ 에는 10행씩 23장의 분량이다.
≪ 수촌만록 ≫ 은 이식(李植) · 정두경(鄭斗卿) · ● 김득신(金得臣) · 남용익(南龍翼) · 김만중(金萬重) · 홍만종(洪萬宗) · 소세양(蘇世讓) 등의 여러 사람의 시를 중심으로 한 일화나 시평을 소개하였다. 모두 56편의 시화가 실려 있다. 매 편이 모두 시를 중심으로 한 일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화마다 서로 화답한 시를 소개하였다.
≪ 참고문헌 ≫ 詩話叢林(亞細亞文化社, 1973), 洪萬宗全集(太學社, 1980), 暘 涯 談苑(亞細亞文化社, 1981).
♠시화총림/수촌만록
≪시화총림≫ 권4에 수록되어 있는 수촌만록. 수촌만록은 조선 후기의 문신 임방의 필사본 시화집이다. 이식, 정두경, ● 김득신, 남용익, 김만중, 홍만종, 소세양 등 여러 사람의 시를 중심으로 한 일화나 시평을 소개하였다.
▣ 순오지 (旬五志 )
1678년(숙종 4) 홍만종(洪萬宗)이 지은 잡록. 2권 1책. 필사본. ‘ 십오지(十五志) ’ 라고도 한다. 이 이름은 책이 보름만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36세 되던 1678년에 이루어졌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왔다.
그러므로 자구가 틀리거나 빠진 것도 있고 단항(段項)의 누락이나 분합, 또는 상권과 하권의 구분마저 없는 경우도 있다. ≪ 순오지 ≫ 의 책머리에는 ● 김득신(金得臣)의 서와 저자의 자서가 있다. 자서에서 자신이 병으로 누워 지내다가 옛날에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 참고문헌 ≫ 旬五志解題(李民樹 譯, 乙酉文化社, 1971), 旬五志(朴魯春, 國學資料 26, 藏書閣, 1977), 洪萬宗(趙東一, 韓國文學思想史試論, 知識産業社, 1978).
♠순오지
1678년(숙종 4) 홍만종이 36세에 지은 잡록. 2권 1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소장. 십오지라고도 하며 상권에 고사일문, 시화, 양생술, 하권에 유현, 도가, 불가, 삼교합론, 문담, 문집, 별호, 속언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시화총림 (詩話叢林 )
조선 후기에 홍만종(洪萬宗)이 시화를 모아 엮은 책. 4권 4책. 필사본. 권두에 1652년(효종 3)에 쓴 홍만종의 자서(自序)와 권말에 1714년(숙종 40)에 쓴 임경(任璟) · 임방(任?)의 발문이 있다.
≪ 시화총림 ≫ 의 권4에는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남용익(南龍翼)의 ≪ 호곡만필 壺谷漫筆 ≫ , 임방의 ≪ 수촌만록 水村 亶 錄 ≫ , 임경의 ≪ 현호쇄담 玄湖 磨 談 ≫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참고문헌 ≫ 洪萬宗全書(太學社, 1980), 詩話와 漫錄(車柱環, 民衆書館, 1966), 洪萬宗의 著述(趙鍾業, 洪萬宗全書, 太學社, 1980), 洪于海의 生涯와 著述 上 · 下(朴魯春, 大學週報 607 · 608, 慶熙大學校, 1977), 홍만종의 문학비평연구(宋熹準, 漢文學硏究 2, 啓明大學校漢文學科, 1984), 洪萬宗 の 著述 と 生涯(大谷森繁, 朝鮮學報 73 · 74, 1974 · 1976).
♠시화총림/용재총화
조선 후기에 홍만종이 시화를 모아 엮은 책. 4권 4책. 필사본. 규장각도서. 이 책은 중국의 ≪역대시화≫에 비견되는 우리나라 시화의 집성이라 할 수 있다.
▣ 의유당관북유람일기 (意幽堂關北遊覽日記 )
조선 후기에 지어진 수필집. 단권. 필사본. 일명 ‘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 라고도 한다. 지은이에 대하여는 두 갈래의 견해가 있다.
〈 춘일소흥 〉 은 개인의 전(傳)을 기록한 것이다. ● 김득신(金得臣) · 남호곡(南壺谷) · 정유악(鄭維岳) · 정탁(鄭琢) · 정인홍(鄭仁弘) · 김승평(金昇平) · 조안렴(趙按廉) · 유부인(柳夫人) · 이번(李?) · 이탁(李鐸) 등 특수한 사례들을 열거, 정리해 놓고 있다. 〈 영명사득월루상량문 〉 은 대동강 북편에 세워진 득월루의 상량문이다.
≪ 참고문헌 ≫ 意幽堂日記(李秉岐 校註本, 白楊堂, 1947), 意幽堂關北遊覽日記의 作者考(李聖姸, 隨筆文學 3, 1974), 의유당유고(未發表)와 그 作者(柳鐸一, 국어국문학 76, 1977), 意幽堂日記의 作者에 대하여(柳鐸一, 隨筆文學硏究, 국어국문학연구총서 6, 정음사, 1980).
▣ 청구영언 (靑丘永言 )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이 편찬한 가집(歌集). 1권 1책. 필사본. ≪ 해동가요 ≫ · ≪ 가곡원류 ≫ 와 함께 3대 시조집의 하나이다. ‘ 청구 ’ 는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 영언 ’ 은 노래를 뜻한다(歌永言)는 말이다.
연민본(淵民本)은 이가원(李家源)이 소장한 이본으로, 이한진(李漢鎭)이 1815년(순조 15)에 자필로 쓴 책이다. 육당본(六堂本)은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였다가, 6 · 25 때 소실되었다. ≪ 송곡편가집 松谷編歌集 ≫ 은 ● 김득신(金得臣)의 서문에 ‘ 가집편기(歌集編記) ’ 가 나오므로, 그 책을 가칭(假稱)한 이본의 명칭이다.
현존하는 다섯 이본과 육당본에 대한 정리는 어느 정도 되어 있으나, ≪ 송곡편가집 ≫ 이 전하지 않는 관계로 문제가 남아 있다. 연민본과 ≪ 청구영언 靑丘 半 言 ≫ (藤井秋夫 소장)과 ≪ 화원악보 花源樂譜 ≫ 에 실린 ● 김득신의 서문에는 송곡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에 의거하여 이 서문과 ≪ 송곡편가집 ≫ 은 깊은 관계에 있으며, 여러 가집을 보완, 윤색한 것이 진본이며 육당본이라는 학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 청구영언 ≫ 에 대한 연구는 원류(源流)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재고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료의 출현이 기대된다.
≪ 참고문헌 ≫ 時調의 文獻的 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時調作品 原文轉化의 諸類型에 관한 考察(沈載完, 語文學 6, 1960), 松谷編 古本 靑丘永言의 復原問題(姜銓 瓏 , 국어국문학 47, 1970).
♠청구영언서문
1728년 김천택이 편찬한 가집.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3대 시조집이다. 1권 1책 필사본으로 규장각도서. 사진은 근대 활자본.
▣ 충주석 (忠州石 )
조선 중기에 권필(權 億 )이 지은 한시. 오언과 칠언의 잡언체(雜言體)로 모두 24구이며 ≪ 석주집 石洲集 ≫ 권2에 수록되어 전한다.
● 김득신(金得臣)은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에서 〈 충주석 〉 을 “ 극히 뛰어나다(絶佳) ” 고 평하였다.
≪ 참고문헌 ≫ 權 億 의 풍자시에 대한 小考(許捲洙, 경상대학교논문집 23, 1984).
▣ 해동시화 (海東詩話 )
조선 후기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시화집. 불분권 1책. 필사본. 편자는 조현기(趙顯期)의 손자로 본문에 나온다. 그러나 다른 대목에서 김진표(金震標)나 박장원(朴長遠) 등과 교유하였고, 또 성이 김(金)으로 나온다. 따라서 ≪ 해동시화 ≫ 는 단일한 편자에 의하여 일관되게 기술된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의 것을 모아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허균(許筠)의 ≪ 성수시화 惺 馬 詩話 ≫ · ≪ 학산초담 鶴山樵談 ≫ , 장유(張維)의 ≪ 계곡만필 谿谷漫筆 ≫ , ● 김득신(金得臣)의 ≪ 종남총지 終南叢志 ≫ , 윤신지(尹新之)의 ≪ 현주잡기 玄州雜記 ≫ , 이의현(李宜顯)의 ≪ 도협총기 陶峽叢記 ≫ , 이수광(李 邈 光)의 ≪ 지봉유설 芝峯類說 ≫ , 신방(申昉)의 ≪ 둔암시화 屯菴詩話 ≫ 등의 인용서목이 보인다.
≪ 참고문헌 ≫ 韓國詩話叢編解題(趙鍾業, 韓國詩話叢編, 東西文化院, 1989).
♠해동시화
조선 후기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시화집. 필사본. 규장각도서.
▣ 백곡집 (栢谷集 )
조선 중기의 시인 ● 김득신(金得臣)의 시문집. 7책. 필사본. 원래 필사본으로 전했다. 그러나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과 화재에 유실되고 남은 것을 1985년 저자의 9대손 상형(相馨)이 수습하였다. 이가원(李家源)이 편집하였다. 서울 태학사(太學社)에서 영인본 1책으로 공간되었다.
[내용] ≪ 백곡집 ≫ 제 1책 권두에는 이서우(李瑞雨) · 박세당(朴世堂)이 1686년과 1687년에 각각 쓴 서문에 이어서 오언절구 253수와 육언시 7수가 있다.
제 2책은 칠언절구 469수, 제 3책은 오언율시 462수, 오언배율 14수, 오언고시 15수가 실렸다. 제 4책은 칠언율시 286수, 칠언고시 30수, 제 5책은 동천(東川) · 소산(小山) · 순오지(旬五志) · 소화시평(小華詩評) · 관동별곡(關東別曲) 서문을 중심한 46편의 서와 19편의 기로 되어 있다.
≪ 백곡집 ≫ 제 6책에는 모두 48편의 문이 수록되어 있다. 대개가 편지 · 묘지명 · 설 · 논과 같은 종류의 글이다. 전(傳)도 3편이나 포함되어 있다. 제 7책에는 변려문(騈儷文)의 68편을 수록하였는데 대개가 제 문이나 상량문 등이다. 권말에는 부록편이 합철되어 있다.
그에 대한 묘갈명 · 행장 각 1편과 제 문 9편, 이서우의 유집서(遺集序)가 실려 있으며 독수기(讀數記) · 서독수기후(書讀數記後) · 수록(搜錄) · 기문록(記聞錄) · 종남총지(終南叢志) 등으로 꾸며졌고 마지막에는 상형의 발을 실었다.
≪ 백곡집 ≫ 의 특징은 시가 그 대종을 이루고 있다. 각체의 시를 합하면 모두 1,541수가 된다. 문은 186편이다. 이 것은 ● 김득신의 문학적 업적을 논함에 있어서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의 시 가운데에 칠언시가 압권을 이룸은 역대의 평자들이 지적한 바이다.
이 문집이 공간되면서 밝혀진 사실은 그의 득의작 가운데에 하나인 〈 마상음 馬上吟 〉 은 남용익(南龍翼)이 ≪ 호곡시화 壺谷詩話 ≫ 에서 소개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에 대한 과거의 평가에 재론을 요하게 한다.
● 김득신은 비평가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 관동별곡서 〉 에서는 정철(鄭澈)의 〈 관동별곡 〉 의 시상이 활달함을 지적하였다. ≪ 백곡집 ≫ 의 〈 평호소지석시설 評湖蘇芝石詩說 〉 에서는 정사룡(鄭士龍) · 노수신(盧守愼) · 황정욱(黃廷彧) 등의 세 사람의 시를 높이 평가하여 당대의 대가라 지칭하였다.
그 중에서 권필(權 億 )을 정종(正宗)이라 하였다. 그리고 〈 증구곡시서 贈龜谷詩序 〉 에서는 최경창(崔慶昌) · 백광훈(白光勳) · 이달(李達) 등이 향(響 ; 소리)에만 힘쓰고 이(理 ; 이치 또는 논리)를 알지 못한 것은 시에 투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정욱은 유리무향(有理無響 ; 이는 있으나 향은 없다)이었으나 유향무리(有響無理 ; 향은 있으나 의는 없다)에 비하여 낫고, 오직 권필만이 유리유향(有理有響 ; 이가 있고 향도 있다)이어서 참다운 시임을 논증하였다.
〈 소화시평서 〉 에서는 홍만종(洪萬宗) · 서거정(徐居正) · 양경우(梁慶遇)의 시화를 대상으로 그 정치함을 상호 비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한 ≪ 백곡집 ≫ 제 6책에 수록된 세 편의 전 중에서 술을 의인화한 〈 환백장군전 歡伯將軍傳 〉 과 부채를 의인화한 〈 청풍선생전 淸風先生傳 〉 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전기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시인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 김득신의 다른 일면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원본은 상형이 소장하고 있다.
≪ 참고문헌 ≫ 壺谷詩話, 國朝人物志.
♠백곡집(정곤수)
조선 중기의 시인 ● 김득신의 문집으로, 병자호란과 화재에 유실되고 남은 것을 1985년 저자의 9대손 상형이 수습하고 이가원이 편집하여 태학사에서 영인본 1책으로 공간되었다.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종남총지 (終南叢志 )
조선 후기의 문신 ● 김득신(金得臣)의 시화집. 1책. 필사본. 홍만종(洪萬宗)의 ≪ 시화총림 詩話叢林 ≫ 에 실려 있다.
[내용] ≪ 종남총지 ≫ 는 모두 47항목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연산군 때의 어무적(魚無迹)의 시에서부터 동시대의 남용익(南龍翼)에 이르기까지 주요인물들을 망라하여 그들의 시에 대한 평가와 우리 나라 시학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 김득신은 시명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비평의 태도에 있어서도 중요한 면들을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다.
● 김득신은 시의 본질을 “ 무릇 시는 천기(天機)에서 얻어지는 것 ” 이라 하여 스스로 조화의 공을 운용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시의 본질을 묘오(妙悟 : 묘하게 깨달음)의 세계에서 구하고 있는 셈이다.
● 김득신은 시 창작의 실제에 있어서 표현의 문제, 곧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표현의 사실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시 표현상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하면서 시의 회화성까지도 강조한다. 그는 정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는 ‘ 사경핍진(寫景逼眞) ’ 의 정신을 두드러지게 주장한다.
● 김득신은 시적 감흥을 제대로 표출하기 위하여 시어의 조탁(彫琢)과 단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보다 세련되고 보다 훌륭한 표현 욕구를 높게 평가하려는 비평안이 작용한 것이다.
● 김득신은 가치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시 작품의 예술적인 성공여부에 판단기준을 설정하여 시를 평가하는 올바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가 “ 시를 아는 사람은 시로써 사람을 취하고, 시를 모르는 사람은 명성으로써 시를 취한다. ” 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평시(評詩)의 어려움을 논하면서, 참다운 시평의 안목을 지닌 사람만이 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당시 시단에 시다운 시가 없게 된 원인을 과시(科詩)의 투식(套式 ; 굳어진 틀로 된 법식)이 널리 퍼져 있는 현실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시체를 적극 비판하였다.
[의의] ≪ 종남총지 ≫ 는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시화 중에서 비교적 내용이 전문적이고 저자의 주관이 뚜렷이 나타나 있어 시학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종남총지 ≫ 는 규장각도서 · 국립중앙도서관도서 등에 있다. 임렴(任廉)이 편찬한 ≪ 양파담원 暘 涯 談苑 ≫ 제4책에 수록되어 있다.
≪ 참고문헌 ≫ 詩話叢林, 柏谷集, 종남총지연구(허경진, 연세어문학 11집, 1978), 金得臣의 詩論(鄭大林, 李朝後期漢文學의 再照明, 創作과 批評社, 1983).
▣ 김재원 -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 김영환 -
▣ 김태서 -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백곡집 원본인 필사본 7책 유일본을 현재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 김재익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