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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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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6-05 17:21 조회1,6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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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10





시문의 대가 백곡 김득신 -01

---김길자 (수필가, 증평문학회원, 한국문인협회이사)

---증평문화 제5집 (2001.12)





광해군 때에 金감사 緻(치)란 분은 사람의 운명을 사주로 알아 맞히는 데 귀신같다고 하여 당대에 유명한 분이다.



하루는 그 부인이 순산 생남을 하니 기쁜 마음 가득하여, 그 아들의 사주를 풀이하여 운명을 감정하여 본후, 마음이 흡족하여 스스로 기쁨을 금치 못하였거늘, "명성이 일국에 떨칠 대문장가로다."



삼일이 지난 다음에 산실에 들어가 新兒를 보니 두골이 큼직하고 골격이 비범한 용모인지라 과연 사주에 나타난 그대로 이었다.







그 아들이 세 살이 되면서부터 영리하고 똑똑하여 보통이 넘고, 그 하는 거동이 어른도 따를 수 없는 가지가지 이적이 뚜렷하므로 김 감사는 더욱 아들을 애지중지하게 되었다.



5살이 되는 해 마침 서도로부터 천연두가 발생하더니 불행하게도 그 아들도 천연두에 걸리게 되었다.



김 감사는 사주만 잘 볼뿐만아니라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여러 가지 약을 쓰고 모든 정성을 다 하였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갈 뿐이었다.



하여 절망상태에 이르러 자기 사주의 신통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번 사주를 되풀이하여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요, 심력을 기울여 모든 치료와 심력을 다해 보았으나 아들은 결국 죽고 말았다.



아무리 사주를 잘 보는 그라 할지라도 죽은 자식을 살릴 도리는 없었다. 애통 중에 서강 뒷산에 덕을 매고 시체를 얹어 주었던 것이다.







덕이라 함은 옛날에는 천연두로 죽은 아이를 즉시 매장하지 않고 나무 위에 거적을 깔고 시체를 얹어 두었다가 근처에 천연두가 종식한 뒤에야 비로소 매장을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은 혹시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나기를 위함이며, 더러 살아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생긴 풍습이다. 덕은 나무 위에 시체를 얹은 밑에 까는 거적을 말함이다.



상심이 극에 달한 김 감사는 한탄과 한숨으로 지새우며, "내가 평생에 다른 사람의 사주는 영락없이 맞추었거늘, 내 자식의 사주는 어찌 이리 알지 못하였던가" 한탄하며 사주 책을 불지르려 하는 것을 부인이 말렸다.







몇일후 소나기가 쏟아지는 어느 날 그래도 죽은 자식의 시체가 불쌍하여 하인을 시켜 그곳에 가보고 오라는 명을 하게 되었다.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덕이 나무에서 떨어질 듯 흔들거리고 있지 아니한가. 급히 달려가 위를 올려다보니 덕이 흔들거리는 것이 아니라 덕 속에 아기 시체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기 가슴에 손을 얹으니 가슴이 팔딱거리고 숨소리도 색색 들리었다. 하인은 아기를 안고 김 대감 댁으로 황급히 내달았다. "영감마님 아기씨가 살아나셨어요"







그 뒤 병은 점차 완쾌되었으나 그 둔탁하신 분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얽고 찍어맨 마마 자리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흉측하였으며 영리하고 한없이 똑똑하던 아이가 바보같이 변해 버렸다.



허나 아들 살아난 것만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수 밖에. 이리하여 이름을 得臣이라고 명명하였다. 새로 아들을 얻었다 하는 뜻으로.













▣ 김태서 - 글 감사합니다.

▣ 김영환 - 그런 일도 있었군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만, 염치 없어서.... 지도도 잘 활용하겠습니다.

▣ 김윤만 -

▣ 김윤만 -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자료 잘받았으며 공부 열심히하겠습니다.

▣ 김항용 -

▣ 김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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