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김시양문집(11)-서(이성구를 금강산으로 보내며), 산영루와 불정대에 새겨진 김시양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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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12-20 16:23 조회1,571회 댓글0건본문
이자이를 금강산으로 유람 보내는 서
-송이자이유금강산서(送李子異遊金剛山序)
경술 (庚戌. 광해2년. 1610)
우리 동방(東方)의 산과 물은 천하에 유독 유명한데, 영동(嶺東)은 또한 동방에서 유명하고 풍악(風岳․주: 금강산의 가을 명칭)은 또한 영동에서 가장 기이한 절경이다. 일만 이천 봉우리가 넓은 바다 끝에 이리 저리 솟아 있어, 매가 치솟고 봉황새가 춤을 추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걸터앉은 듯 겹쳐지고 이어지며 도깨비가 나누어서고 귀신이 맞닿은 듯하여, 이는 참으로 영험스런 신비의 굴집이며 천지의 깊숙한 지역이어서 세상에서 좋고 기이한 것이 많아 삼신산의 하나이다. 비록 믿어지지도 않거니와 또한 여기에 유혹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산이 이와 같이 영험하고 특이하랴. 불서[竺書]에 기록되기를, 원제(元帝)가 보기를 원했고, 고황(高皇)이 감탄하면서 구경했다는데, 만약 이 세상밖에 뜻을 둔 선비가 있다면, 누구나 가서 한 번 보고 머리 속에 울분과 분노에 찬 생각을 씻어 내고 싶지 않겠는가.
적양지추(赤羊之秋. 주: 丁未年. 선조 40년. 1607 가을)에 나는 대지팡이와 짚신차림으로 중양절(重陽節. 주: 9월 9일. 이 날에 높은 곳에 오르는 풍속이 있음)에 신선이 다니는 길을 따라 이 산의 소위 외산(外山)이라 하는 곳에 이르렀다. 산이 구름 가에 은은히 비치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경악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천기만괴(天奇萬怪)함이 거의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귀로만 듣던 것을 눈으로 보고 경험해 보니 만에 하나도 미치지 못했고, 곧 숨이 멈추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바다와 하늘은 일찍 추워지고 산과 물은 매우 싸늘해져 7월에 서리가 내리고 8월이면 눈이 오기 때문에, 마침 큰 눈을 만나 무릎이 빠져 내산(內山)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비록 다시 등산하는 신발을 정리하고 전날의 구경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풍진에 쌓인 세상일은 나의 평소의 소원을 앗아갔고, 관공서의 녹에 매인 몸이라 스스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저자를 바라보면서 안개에 쌓임을 꿈에도 못 잊어 한 지가 손꼽아 지금 4년이 된다.
비록 떳떳이 머리 깎은 부류라도 되어 이 산을 찾아보고 돌아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을 다시 마음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개연히 감탄해 하면서 신선과의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여기련만, 그러나 그렇지를 못하고 있다.
지금 나의 벗 자이(子異)가 관직 한림(翰林. 주: 藝文館의 檢閱)에서 견책․파면되자 가뜩이나 얻은 것이 있는 듯 말하기를, 「내가 예전부터 생각하던 것을 해 봐야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덮을 것과 버선을 준비하고 행장을 추스려 곧 산을 찾아 나섰다. 나는 이에 자이(子異)가 한번 (관리에) 임용되었다가 벗어 던지는 것에는 즐겨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아, 명리(名利)에 신발을 뺌이 이와 같음을 알고 있다. 내 비록 자이(子異)의 뒤를 따라가 산과 물에서 담소라도 하고 싶지만, 바야흐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라는 명을 받아 (주: 광해2년 賀節使 書狀官이 됨) 굴레에서 벗어 날 수가 없으니, 먼지를 일으켜 떠나감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나의 생각은 얼마나 유유할 것인가.
나는 듣건대, 산을 유람하여 얻어야 할 것은 다만 그 산의 맑음과 물의 고움만을 얻어서 단지 사물을 구경함에 몸을 부릴 것이 아니라, 요는 반드시 어짐(仁)과 지혜(智)의 참 즐거움과 맺음으로써 우리의 가슴속에 부어 채움이 있어야 하리라. 자이(子異)가 돌아오면 자장(子長)1)의 문장에만 있지 않은 소득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자이(子異)가 가자마자 서풍을 만나 곧 싸늘하여 가을 이슬이 이미 하얗게 되어, 전에 나의 길을 막았던 것이 다시 자이(子異)에게도 마가 끼일까 깊이 염려된다. 자이(子異)가 가서 산영루(山映樓)와 불정대(佛頂臺)에 올랐다가 먼지 낀 벽을 털고 푸른 이끼를 긁어내면, 반드시 내 이름이 있음을 보게 되리라. 행여 한번 서로를 생각하게 되겠거니…
*주: 이성구(李聖求)…1584-1644. 조선 인조때 영의정. 자 子異. 호 汾沙. 시호 貞肅. 저서 汾沙集. 金時讓이 鐘城에 유배되었을 때 매년 달력을 보내주곤 하였음. 芝峰 李晬光의 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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