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김시양문집(12)-기(낙망당기). 종성 유배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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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12-26 11:12 조회1,428회 댓글0건본문
낙망당기(樂忘堂記)
출전 : <하담김시양문집> 271p
*편집자 주 : 이 글은 필자 하담 선조께서 유배 가셔서 사셨던 집을 확인할 수 있는 글임. <낙망당>이란 편액이 지금도 남아 있을지--
하담자(荷潭子)인 나는 이미 종산(鐘山)으로 쫓겨나 남의 집을 빌려 있으면서 기숙을 하였다. 그 마루의 편(扁)에 「낙망(樂望)」이라 했는데, 나그네에게는 불리기에 어울리지 않아 곤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그대에게 그런 즐거움이 있다니… 나는 그대가 걱정하고 슬퍼하는 상황일텐데 알지 못하겠소」라고 하였다. 나는 말할 수 있건대, 죄를 지어 밝혀졌을 때 겨우 살아나 궁벽한 벽지에 던져지니, 친척은 친족으로 인정을 하지 않으며, 옛 친구는 벗으로 취급하지 않아, 몹시 고달프고 좌절하여 홀로 쓸쓸히 걸어도 적당히 있을 곳을 알지 못하며, 편안히 지낼 곳을 알지 못한 지가 이미 지금까지 5년이나 된다. 하물며 적이 경계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리며 틈을 타서 이무기 독을 몰래 뿜어대어, 채찍을 던져 강물흐름이 이미 끊어짐을 (주: 投鞭江流已斷. 채찍을 던지면 강물의 흐름이 끊긴다는 뜻으로 강을 건너는 군사가 많음을 뜻함.)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이곳에 사는 것을 비유하자면 제비가 흩날리는 장막에 둥지를 튼 것인데, 무슨 지극한 즐거움이 있어 이리 깊은 근심을 잊을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하겠소」라고 하였다.
내가 이에 응해 말하기를 「세상에 농담도 못하고 이렇게 목소리를 바꿔가며 꺼림칙하게 아픔을 간직한 것은 우습지 않은가. 원문(圓門 주: 옥에 갇힘)은 스스로 분명하여 반드시 죽을 것을 특별히 관대한 법으로 용서를 받아, 목숨을 보존하여 백성으로 되었으니 이는 즐겁지가 않은가. 혜주(惠州)의 밥을 배불리 맛있게 먹고, 연못 언덕에서 시를 화답하면 수북당(樹北堂)에 심은 훤(萱 주: 불망초)을 기다리지 않아도 근심을 잊을 수 있다. 친족으로 인정을 하지 않아도 친척에게 걱정이 있을 것이지 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친구로 여기지 않아도 고향친구에게 걱정이 있지 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절충어모(折衝禦侮 주: 적의 침략을 막음)하는 책략에 이르러서도 고기를 먹는 자의 걱정을 우리 같은 명아주 잎과 콩잎을 먹는 창자를 가진 사람으로는 미리 대비할 수가 없다. 나는 나의 즐거움을 즐김만 알 뿐이다.
아아! 온 천하의 물건이라도 원하면 얻지 못할 것이 없는 부귀한 사람의 즐거움에 어찌 이르지 못하랴. 그러나 잃어버릴까 염려를 하고 있는데 걱정이란 역시 완전히 즐거워함을 얻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으로 이따금 편안히 나의 즐거움을 얻을 수는 없겠는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몸에 상처가 나서 추위와 더위를 모를 정도로 피부는 헤어지고, 동정호(洞庭湖 주: 중국 호남성에 있는 호수)의 넓은 들에서 구주(九奏 주: 고대 예를 행하는데 연주하던 9곡)의 음향소리도 느끼지를 못하고, 탁록(𣵠鹿 주: 중국 하북성의 산명. 黃帝가 蚩尤를 쳐서 죽였다는 곳)의 언덕에서 있었던 큰 싸움도 또한 그 뜻을 비유하기에는 부족하다. 하물며 얻음과 잃음, 영광과 치욕이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가버리는 것을 어찌 나의 즐거움과 바꿀 수 있으랴」라고 하였다.
나그네가 말하기를, 「그대는 시대의 버림을 받아 오랑캐 땅에 살면서 떠돌아다니며 거주하는 곳이 보잘 것 없어도 밭이랑에서 느긋하게 살며 편히 놀고 있으니, 또한 조금이라도 즐거운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오히려 낙(樂)이라는 이름을 빌어 그 근심을 잊고자 하였으나 나는 아마도 근심을 끝내 잊을 수 없고, 그리고 즐거움 또한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프다! 그대가 이른바 즐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더구나 그 즐거움을 얻고자 하고, 그 근심을 잊고자 하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말했다. 「사람은 모두 근심으로 여기지만 나는 근심으로 여기지 않으며,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홀로 즐거움으로 여긴다」라고.
어찌하여 나의 마음은 유독 뭇 사람들과 다른가. 장자(莊子)는 말하기를, 「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편안하다」고 했고, 만약 도정절(陶靖節 주: 陶淵明)에게 말하라 했으면 「즐거움이란 대저 하늘이 명한 것임을 다시 어찌 의심을 하겠는가」라고 했을 것이다. 나의 즐거움은 여기에서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어찌 안으로 근심을 잊지도 못 하면서 밖으로 거짓으로 이런 이름을 남에게 과시하려고 하는가. 아아! 공자(孔子)께서 즐기며 근심을 잊고자 한 뜻은 비록 남몰래 얻은 것이지만, 성인(聖人)이 하는 일은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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