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경주(7) 답사자료 괘릉=원성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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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6-07 18:38 조회2,020회 댓글0건본문
괘릉
경북 경주시 외동읍(外東邑)에 있는 798년경의 능.
지정번호 : 사적 제26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외동읍(外東邑)
시대 : 798년경(신라)
크기 : 면적 7.53ha
종류 : 능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사적 제26호. 면적 7.53ha.
소나무가 울창한 넓은 능역(陵域) 가운데에 둘레돌[護石]을 돌린 원형 토분(土墳)으로, 둘레돌은
판석과 탱주(撑柱)로 짜여져 봉토 밑에 있고, 그 위에 갑석(甲石)을 덮었다. 탱주에는 각각 방향을
따라 12지신상(支神像)이 양각되었고, 봉토 앞에는 옆면에 안상(眼象)이 조각된 우수한 상석(床石)을
놓았다. 봉토 주위에 수십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아래에 동그란 구멍 2개를 뚫어
관석(貫石)을 끼워 난간을 돌렸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둘레돌과 기둥 사이엔 판석을 깔았다.
봉분과 멀리 떨어진 전방에 돌사자 2쌍과 문무인석(文武人石)이 각각 1쌍씩 배치되고, 그 좌우에
석화표(石華表)가 서 있다. 능비가 없어 누구의 능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유사》에 “원성왕릉이
토함산 동곡사에 있는데, 동곡사는 당시의 숭복사로 최치원이 비문을 쓴 비석이 있다”는 기록과
지금의 괘릉 인근에 숭복사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성왕의 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경주시 외동면 괘능리, 사적 26호 신라 38대 왕인 원성왕(785-798)의 능으로 추정되는 괘릉은 신라의
왕릉들중 봉분과 석물이 잘 어루러져 비교적 구도를 잘 갖추고 있는 왕릉 가운데 하나이며, 기존에
있던 작은 연못을 메우고 능을 세웠기 때문에 능의 현실에 물이 고여 바닥에 관을 놓지 못 하고 허공에
걸어 놓았다 하여 괘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능의 형태는 높이 6m, 지름 23m의 원형봉토분으로 호석이 설치되어 있고 면석과 봉토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 해주는 탱석(撑石)에는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주위로 수십 개의 난간용
돌기둥과 봉분 앞에 안상(眼像) 을 새긴 석상을 놓았다. 봉분 전면 80m 지점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돌사자 2쌍과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각1쌍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고,
그 앞에 화표석(華表石) 2개가 좌우로 서있으며, 서역인의 얼굴을한 무인석을 통해
당나라와의 문물교류가 활발히 어우러 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능은 통일 신라 시대의 완비된 능 묘제도의 대표격으로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이 당당하고
치밀하여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고, 능묘에 배치된 12 지신상(十二支神像)은 따로 환조로
조각하여 배치하였던 성덕왕능의 형식에서 탱석에 직접 조각하는 형식으로 발 전시킨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치원의 <대숭복사 비문>에 의하면, 원성왕릉은숭복사의 옛터인 곡사에
위치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인근에 숭복사지가 있어 이능이 원성왕릉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 김태서 -
▣ 김항용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경북 경주시 외동읍(外東邑)에 있는 798년경의 능.
지정번호 : 사적 제26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외동읍(外東邑)
시대 : 798년경(신라)
크기 : 면적 7.53ha
종류 : 능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사적 제26호. 면적 7.53ha.
소나무가 울창한 넓은 능역(陵域) 가운데에 둘레돌[護石]을 돌린 원형 토분(土墳)으로, 둘레돌은
판석과 탱주(撑柱)로 짜여져 봉토 밑에 있고, 그 위에 갑석(甲石)을 덮었다. 탱주에는 각각 방향을
따라 12지신상(支神像)이 양각되었고, 봉토 앞에는 옆면에 안상(眼象)이 조각된 우수한 상석(床石)을
놓았다. 봉토 주위에 수십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아래에 동그란 구멍 2개를 뚫어
관석(貫石)을 끼워 난간을 돌렸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둘레돌과 기둥 사이엔 판석을 깔았다.
봉분과 멀리 떨어진 전방에 돌사자 2쌍과 문무인석(文武人石)이 각각 1쌍씩 배치되고, 그 좌우에
석화표(石華表)가 서 있다. 능비가 없어 누구의 능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유사》에 “원성왕릉이
토함산 동곡사에 있는데, 동곡사는 당시의 숭복사로 최치원이 비문을 쓴 비석이 있다”는 기록과
지금의 괘릉 인근에 숭복사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성왕의 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경주시 외동면 괘능리, 사적 26호 신라 38대 왕인 원성왕(785-798)의 능으로 추정되는 괘릉은 신라의
왕릉들중 봉분과 석물이 잘 어루러져 비교적 구도를 잘 갖추고 있는 왕릉 가운데 하나이며, 기존에
있던 작은 연못을 메우고 능을 세웠기 때문에 능의 현실에 물이 고여 바닥에 관을 놓지 못 하고 허공에
걸어 놓았다 하여 괘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능의 형태는 높이 6m, 지름 23m의 원형봉토분으로 호석이 설치되어 있고 면석과 봉토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 해주는 탱석(撑石)에는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주위로 수십 개의 난간용
돌기둥과 봉분 앞에 안상(眼像) 을 새긴 석상을 놓았다. 봉분 전면 80m 지점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돌사자 2쌍과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각1쌍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고,
그 앞에 화표석(華表石) 2개가 좌우로 서있으며, 서역인의 얼굴을한 무인석을 통해
당나라와의 문물교류가 활발히 어우러 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능은 통일 신라 시대의 완비된 능 묘제도의 대표격으로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이 당당하고
치밀하여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고, 능묘에 배치된 12 지신상(十二支神像)은 따로 환조로
조각하여 배치하였던 성덕왕능의 형식에서 탱석에 직접 조각하는 형식으로 발 전시킨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치원의 <대숭복사 비문>에 의하면, 원성왕릉은숭복사의 옛터인 곡사에
위치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인근에 숭복사지가 있어 이능이 원성왕릉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 김태서 -
▣ 김항용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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