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시군지순례13(상주시)

페이지 정보

김윤만 작성일02-06-09 14:22 조회1,797회 댓글0건

본문

상주지(상주시.군문화공보실, 1989)





pp 107 (5) 金永煦(김영후)



---충렬왕(?)때 상주목사가 되었다. 상주는 도로가 팔방으로 통하여 관리들의 왕래



가 빈번한 곳인데 客館(객관)이 낡아 불편이 많았다. 먼저 仁愛(인애)로서 百姓(백



성)을 사랑하고 엄중하게 部下(부하)를 경계하여 善政(선정)을 베풀었다. 1년이 지



나자 비로소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이에 役事(역사)를



시작하여 백성을 괴롭히지 아니하고 객관을 준공했다. 뒤에 그는 國相(국상)이 되



었다.





pp 858∼859 5. 商山 (상산관, 일명 객관)(경부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57호)



---(상주시 남성동 148-1 상주여중 내)



---상산관은 조선조시대 公署(공서)로 사용하던 건물로서 상주에 남아있는 3개(상



산관, 침천정, 태평루) 건물가운데 하나이다.



---객사라 함은 조선시대 각 고을마다 殿牌(전패 :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 패, 지방



객사에 殿(전)자를 세워 그곳 州(주) 牧使(목사)가 부임하거나 또는 국가의 경사스



러움과 아픔이 있을 때 이곳에 모여 참배하며, 국가와 임금님을 위해 충성을 다



짐하는 곳) 초하루.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의식을 행하였으며 사신들의 숙소로도



사용하여 왔다.



---이 건물은 상산지 2권 객관조에 목사 洪世周(홍세주)가 지었다고 하나 현재 상



주군청에 소장되어 있는 尙州牧先生案(상주목선생아)에는 홍세주의 기록은 없으



니 그 연대를 고증할 방법이 없고 다만 상산지 상권에 「客館(객관) : 在州衙東高



麗金永煦爲牧使時改安軸有記嘉靖丙戌火牧使尹宕改構壬亂皆燒 顯廟丙午牧使李松 



仍舊改構(재주아동고려김영후위목사시개안축유기가정병술화목사윤탕개구임란개소



현묘병오목사이송령잉구개구)」기록되었다.



---그리고 다른 기록을 종합해 보면 1340년(고려 충혜왕 1) 이전이라 볼 수 있고



목사 안축이 1343년(충혜왕 4) 記文(기문)을 지었는데 1343년(지정 3년 계미)에 상



주목사로 와 보니 근년에 학정을 백성의 신뢰를 잃고 고을에 있는 관청, 학교, 신



사, 사찰 등은 모두 퇴락되었으나 오직 객사만이 남아 있어 남쪽지방에 제일가는



규모이다. 이는 1307년 김상국, 김영후가 지었음을 알 수 있고 1526년(중종 21) 화



재를 당하기 전 1500년(연산 6) 목사 윤탕이 개축한 바 있고, 1592년(선조 25) 임



진왜란으로 왜군이 모두 불태웠다. 1639년(인조 14) 봄에 王山(왕산) 남쪽(현 상주



경찰서)으로 옮겨 세웠다. 1666년(현종 7) 목사 이송령이 개축하였으며 1907년(순



종 11) 상주공립보통학교로 사용하였고 1940년에 지방인사 박인양, 조용연, 박정



소, 박인수 등이 많은 돈을 내어 상주군으로부터 사서 조각연을 기성회 책임자로



정해 많은 성금을 모아 현 위치(상주시 남성동 148-1)로 옮겨짓고 다시 군에 기부



하였는데 상주여중 설립으로 상주여자공립보통학교가 사용하게 된 후 지금에 이



르고 45년 동안 학교로 사용하며 필요에 따라 많은 건물의 변경을 가져와 당초의



모습은 지붕뿐이고 벽체, 창호, 마루 등 제 모습을 찾을 수 없고 보수치 않아 많



은 곳의 지붕에 누수가 심하여 1985년 지붕보수를 비롯 1988년까지 중수(가) 계



속되었다.



---건물은 669평의 대지 위에 정면 14칸, 측면 3칸, 128.75평(460㎡)의 웅장한 건물



로 평면상으로는 모두 연결되어 구분하기 어려우나 主 (주관)을 중심으로 좌우



에 翼室(익실)을 두고 중문, 외문, 옆면은  廊(무랑) 등의(으로) 실재로는 3동이



연결되었고 지붕은 2단으로 층을 이룬 合角(합각)에 팔작으로 구성하고 건축 당



시의 짐승 모양의 鷲頭(취두)가 14개 있다. 48간의 대형 건물의 외부기둥은 원기



둥이고 내진주는 角柱(각주)로서 7량 가구에 연목천정을 하였고 익공집에 겹처마



를 하여 먹과 장식을 더했다. 건물의 규모가 장대함은 영남에서 빠지지 않는 중



요한 자료이며 지방의 관아 건물가운데 용두가 잘 남아 있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고 건물 전체가 품위를 가지고 있다.



---건물 정면(북편) 가운데 「商山 」이란 큰 현판(가로 2.3m, 세로 1.5m)이 걸려



있다.



---상산관이 자리한 대지는 경북향교재단 상주향교 소유였으나 향교측이 1985년



12월 30일 경북도교육위원회(상주여자중학교)에 매각하여 건물과 대지가 동일인



도교위로 되었다.





pp 932 제8편 문화(典籍類 중)



---전적명(척약재선생 학음집) 저자(김구용 1338∼1384) 연대(임란이전) 규격(23.1×



18.3 2책 1권) 참고(표제 : 척약재집, 보물 1004호)의 기록이 있음.





pp 1051 4. 節義派(절의파) 士族(사족)의 大擧來居(대거래거, 1301년(충렬왕 27)∼



1391년(공양왕 3)) 중



---(전략) 먼저 이 시기 이 고장을 거쳐간 목민관을 살펴 보기로 한다.



---金永煦(김영후 1292∼1361)는 본 州(주) 牧使(목사)가 되어  宇(관우)를 중수,



善治(선치)하였으며(후략) (2002. 6. 9)









▣ 김항용 - 발로 뛰면서 고생하신 귀한 자료들을 연일 편히 앉아서 군자인척 소매에 손을 넣고 감상만 하고 있으니 부끄럽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드립니다.

▣ 김영환 -

▣ 김주회 - 윤만 형님! 소중한 자료 발굴---타이핑---연재에 감사 드립니다. 게시되는 대로 복사해서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시군지를 데이터화하면 무궁무궁진 자료의 보고가 될 것입니다.

▣ 태영(문) - 대부님, 감사합니다. 기회 되시면 이북지역도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힘껏 자료 찾겠습니다.

▣ 김정중 - 감사 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