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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문온공)선조님의 동방(대과에 같이 합격하신분)-10- 함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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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3-19 15:29 조회1,9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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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 할아버님과 같이 대과에 합격하신 함승경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함승경(咸承慶)


척약재집에서

6)寄崔卜河咸承慶兩同年雜言 

  기최복하함승경양동년잡언


鏡浦臺寒松亭  경포대한송정

風更淸月更明  풍갱청월갱명

携手游相對飮  휴수유상대음

海棠花鷓鴣聲  해당화자고성

何時一蹇驢    하시일건려(건=절름발이건,려=나귀려)

吟嘯瞰滄溟    음소감창명(소=휘파람소,감=굽어볼감)

久知功名富貴  구지공명부귀

恰似浮雲輕    흡사부운경


6) 최복하. 함승경 두 동년에게 준 잡언시


경포대와 한송정에는

바람 맑고 달은 더욱 밝구나

손잠고 노닐며 술마시는데

해당화 꽃피고 자고새우는소리들리네

그언젠가 나귀타고

시읊으며 저바다 바라볼꼬

난 이미 알았네, 부귀공명이

마치 뜬구름같다는 것을...


주1. 同年=같은해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 同年生, 同榜이라고도 한다.

주2. 雜言詩= 한시에서 한구가 5언이나 7언처럼 일정하지 않게 지은 시. 이시는 작품200번과 동일하다.

주3.경포대=강원도 강릉시 동북쪽에 위치한 루대로서 관동팔경에 하나이다. 1326년(충숙왕13년)에 朴淑이 창건하고 1508년(중종3)에 韓汲이 옮겨 지엇다.

주4.한송정=강원도 강릉 동쪽에 있는 정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쪽으로 큰바다에 임하였고 소나무가 울창하였다고 한다.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등이 있는데 곧 述郞仙人이 놀던 곳이라 한다.


358)寄咸同年 兼簡崔同年桑慶

    기함동년 겸간최동년 승경,상경

泣別江山十二秋。읍별강산십이추

夢魂猶繞倚雲樓。몽혼유요의운루

徐君去日殷勤囑。서군거일은근촉

須借滄波一釣舟수차창파일조


358)함동년에게 주고 겸하여 최상경 동년에게 편지로 보내다


강산에서 울며 이별한지 12년인데

꿈은 오히려 높다란 누각을 둘러싸네

徐君이 떠나던 날 은근히 부탁했네

모름지기 푸른 물결에 낚싯배 한 척 빌릴것을


함승경의 아들 함부림

함부림(咸傅霖)
1360(공민왕 9)∼1410(태종 10).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검교중추원학사(檢校中樞院學士) 승경(承慶)의 아들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을 거쳐 좌정언으로 승진하였다.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헌납으로 승진하여 정지(鄭地)·이림(李琳)·왕안덕(王安德)·우인열(禹仁烈)·우홍수(禹洪壽) 등 구신들을 탄핵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춘주지사(春州知事)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부름을 받아 형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중방(重房)의 무신들이 문신을 멸시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파직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잡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경력사도사에 복직되었다. 이해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으로 개성소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형조의랑에 이어 대사성·좌산기상시로서 상서소윤(尙瑞少尹)을 겸하고 명성군(溟城君)에 봉하여졌다. 태종 초기에 충청도도관찰출척사·예문관제학·동북면도순문사·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병마도절제사 겸 영흥부윤 등을 거쳐, 1404년(태종 4) 참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에 올랐다.
다음해 노비변정도감제조와 경기도도관찰사를 지내고, 1406년에 계림부윤·경상도도관찰출척사를 거쳐, 다음해 다시 참지의정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8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1410년 파직되었다. 성격이 강직하여 직언을 잘하였으며, 이치(吏治)에 능숙하여 관직을 맡을 때마다 칭송을 받았다.
1405년에는 앞서 1398년(태조 7)의 제1차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과 더불어 왕자 방석(芳碩)을 옹립하였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은 일이 있다.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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