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인물 집필자 김성섭 선생님이 조사한 관찰사공 휘 사묵 이력
페이지 정보
김완식 작성일08-05-08 16:20 조회1,963회 댓글0건본문
〔기본 정보〕 | ||||||
항목ID |
GC01901360 | |||||
항목명(한글) |
김사묵 | |||||
항목명(한자) |
金思默 | |||||
항목명(영어) |
Kim Sa Muk | |||||
이칭․별칭 |
없음 | |||||
키워드 |
안동김씨|관찰사|조선교육회 | |||||
관련항목 |
행정가|경무사|관찰사 | |||||
항목체계 |
삶의 주체/근현대인물/정치가, 행정가 | |||||
분야1 |
역사/근현대 |
분야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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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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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1 |
인물/현대인물 |
유형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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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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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
시대 |
현대/현대 | |||||
멀 티 미 디 어
지 정 |
사진 |
개인사진(충주시 김태균씨 소장), 엄정면 논강리 묘소의 묘비 |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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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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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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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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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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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김성섭 | |||||
집필자 의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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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자 의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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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별 상세정보] | |
성격 |
행정가 |
출신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
성별 |
남 |
생년 |
1856년 |
몰년 |
1921년 |
본관 |
안동 |
대표경력 |
경기관찰사 |
[정의]
조선 말기(고종 ․ 순종)의 행정 관리
[개설]
본관은 안동이고 1856년 4월 9일 충주시 엄정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엄정에서 서당 훈장을 하시다 무과에 급제하시어 2번의 경무사와 경상남도 ․ 경기도 관찰사를 지내신 행정가이다.
[활동사항]
고종 25년(1885년) 무과에 급제하여 1895년 일본유람신사(日本遊覽紳士)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897년(광무 원년) 중추원 참서관(參書官), 1902년 평리원 수반검사 동년 7월 중추원 의관, 고종 43년(1903년) 4월에 경무청 경무국장, 1905년 3월 경무청 경찰국장(정3품), 동년 9월에 경무사로 승진되었으나 11월에 의원면관 되었다.
1907년 1월 경무사로 부임하고 동년 5월 중추원 찬의를 거쳐 동년 6월 경상남도 관찰사(종2품)를 지내다가 1908년(순종1년) 6월 경기도 관찰사로 제수되었으며, 1910(순종3년)년 2월에 훈장(훈3등)을 받으시고, 동년 10월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12월에 의원면직 하였다.
1903년 7월 경무국장 재직시 내장원의 고미(庫米)가 시전상인(市廛商人)을 거쳐 간상(奸商)에게 싸게 팔려나가 은닉되어 모리(牟利)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가 항간에 떠돌았다. 이에 김사묵은 경찰의 직책을 담당한 자로서 부지런히 검찰(檢察)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청죄(請罪)하는 자핵소(自劾疏)을 올려 견책과 함께 2개월 감봉처분을 받았다.
융희 4년(1910년) 6월 7일(화요일)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의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공문을 일문으로 시행하는 것을 내각령으로 금지하였는데도 근일(近日) 각관찰사의 공문을 보면 경기관찰사(김사묵)를 이외에는 모두 일문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보도 하였다.
1920년 6월 한규설·이상재·유근 등의 발기로 민족교육의 장려 진흥을 내걸고 출범한 교육운동단체인 ‘조선교육회(회장 이상재)’의 부회장에 피선되어 활동하였으며, 1934년 「삼천리」라는 잡지(기사제목 : 13도관찰사의 기후(其后), 저자 : 목춘학인(木春學人))에서는 “김사묵은 2번의 경무사 경력을 가진 경찰의 선배로 경상남도 ․ 경기도의 2도의 관찰사가 되었는데 강직 고결했던 인격자였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묘소는 충주 엄정면 논강리 선산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ttp://db.history.go.kr)』
『한국고전번역원(http://www.minchu.or.kr)』
『大韓每日申報(1910년 6월 7일)』
『東亞日報(1920년 6월 27일)』
『삼천리」제6권 제7호(1934년 06월 01일)』
(김사묵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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