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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김백옥, 그는 누구인가?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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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8-06-16 01:05 조회1,634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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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교수가 ‘백옥은 안동 김씨’라고 주장하면서 제시한
도은 선생의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졸역입니다. 誤譯한 곳이 많으니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강 뜻이라도 살피고자 합니다.)

   送金伯玉歸安東
   안동으로 돌아가는 백옥을 전송하다

   吾生喜求友 마음 맞는 벗 구하는 일은 정말 즐거운데 
   
伯玉可忘年 백옥은 망년지우로 사귈 만하네. 
   
咫尺幸同里 지척인 한 마을에 사는 것이 다행이었는데
   
團欒還別筵 정겹게 지내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돌아온다.
   
歸程紅樹外 귀로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고
   
鄕夢白雲邊 고향 꿈은 구름 따라 흘러가네.
   
都護如相問 대도호부(안동) 안부 물어서
   詩狂復酒顚 시에 미치고 또다시 술에 취해 쓰러져 보세.

‘백옥(伯玉)’의 고향은 안동인데 효자라고 전해집니다.
이 시에는 백옥이 안동 김씨임을 암시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단지 그의 고향이 안동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입니다.
성 교수는 백옥이 고향 안동으로 돌아간다는 점 때문에 안동 김씨라고 분석한 듯합니다.
게다가 척약재 할아버지와 절친한 관계이므로 가까운 친척으로 본 것이 아닐까요.
척약재 할아버지께서는 ‘백은(伯誾)’이라는 자(字)를 사용하시기도 했는데
이것이 연상작용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은’은 목은집에 그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牧隱文稿卷之七
   
   送慶尙道按廉宋都官序 明誼[경상도 안렴사로 부임하는 송 도관(명의)를 전송하다]

   
<전략>……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첫머리를 장식하는 서문(序文)만은
   
꼭 졸렬한 나의 글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도관의 생각인데,
   
도관이 나와는 안면이 없는 관계로 대신 자신의 뜻을 전달케 하였으니,
   
나에게 전달해 준 사람은 바로 나의 동료인 김군 백은(金君 伯誾)이었다.
   ……序其首必以拙語 都官之意也 都官不吾面 而其意達于吾者 吾同僚金君伯誾也

그러나 ‘학음집’에는 ‘백옥’이 척약재 할아버지와 ‘친척’이거나
‘우리 문중 사람’이라고 암시한 부분이 없습니다.
‘백옥’과 관련된 3편의 시를 보면
두 분께서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게 분명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도은 선생이 ‘백옥’과 ‘망년지우’라 표현한 것을 보면
‘백옥’은 도은 선생보다 상당히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年下]인 듯하고,
또 당대 문사(文士)들과도 가까이 지낸 듯합니다.
이를 근거로 『목은집(牧隱集)』을 살펴봤습니다.

   送金伯玉省親 爾音
   성친(省親)하러 가는 김백옥을 보내다. 이름은 이음(爾音)이다.

   伯玉我初識 백옥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泮水春風中 태학에 봄바람 불던 때인데
   
翩翩丹鳳雛 붉은 봉황 새끼가 훨훨 날아라
   
綠槐朝日紅 태학에 아침해가 붉었었네
   
一鳴中書堂 중서당에서 한 번 명성을 떨쳐
   
首薦驚諸公 추천을 받아 제공을 놀라게 했고
   
對策擢高科 대책으로 고과에 발탁되었으니
   
筆力如長虹 필력은 마치 긴 무지개 같았었네
   
雞林掌書記 계림에서 서기의 직책 맡아서는
   
遇事眞生風 일 만나면 참으로 바람이 일었는데
   抵觸部使者 어사에게 저촉을 받게 되면서는
   
棄去弊屣同 그 관직을 헌신짝처럼 버리었네
   
被選本天下 그 후 도성으로 선발되어 와서는
   
校讎時稱工 서책 교정이 유능하다 일컬어졌고
   
移居玉堂裏 이어 옥당으로 전직되어서는
   
演誥詞最雄 연고(임금의 조령 등을 초하는 일)의 문사가 가장 뛰어났었네
   
文牒事兩府 문서로써 두 관부에 일하다가
   
堂後歲月終 당후관으로 세월을 마치었는데
   
吏才又出等 사무 처리의 재능 또한 뛰어났으니
   
學成用迺豐 잘 배워서 쓰임이 이에 풍부했도다
   
老親倚閭久 늙은 모친이 기다린 지 오래인지라
   
久矣心忡忡 오랫동안 근심 걱정 많았으리니
   
投閑可速去 한가한 틈 내어 속히 내려가서
   
舞綵神明通 채색 옷 입고 춤추면 신명이 감통하리
   
子職在養志 자식의 직분은 뜻을 받듦에 있고
   
養志當保躬 뜻을 받들려면 몸을 보전해야 하니
   
明哲第一義 명철 보신을 제일의로 삼아서
   
調燮宜施功 몸을 조섭하는 데 공을 펴야 하리
   
況我同鄕里 더구나 나와는 같은 고향으로서
   
咸昌與安東 서로 가까운 함창과 안동이거니
   
敢不以情贈 감히 정으로써 주지 않을 손가
   
君當恕老翁 그대는 의당 이 늙은이를 용서하겠지
   - 『국역 목은집』 제2권 216~218쪽

이 시에서 목은 선생이 밝혔듯이
‘김백옥(金伯玉)’의 이름은 ‘김이음(金爾音)’이며,
어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 안동으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그가 성균관에서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였으며,
대책(對策)에서 탁월한 성적으로 과거[禮部試]에
급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綠槐朝日紅 一鳴中書堂 首薦驚諸公 對策擢高科)
고려조에 예부시 급제자는 외직(外職)으로 나갔다가
중앙의 내직(內職)으로 들어오는 것이 관례입니다(고려사 선거지, 백관지 참조).
이에 따라 김이음도 경주의 서기직을 맡아
훌륭한 고과성적을 거두었던 것 같습니다.(雞林掌書記 遇事眞生風)
또한 목은 선생이 자신을 일러 ‘늙은이’라고 하고,
백옥에게 ‘군(君)’이라 한 점으로 보아
한참 연하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君當恕老翁)
목은 선생이 ‘김백옥’의 이름이 ‘이음(爾音)’이며,
‘고과 합격자(擢高科)’라고 한 것을 근거로
고려조 예부시 합격자 명단을 살펴보았더니,
공민왕 23년에 실시된 급제자 명단 중
‘병과 7인(丙科 七人)’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전략>
   丙科 七人
   金爾音 伯玉 觀察 孝行旌門…<중략>… 咸昌

이 기록을 보면 ‘김이음’은 함창(咸昌) 김씨‘로서 자(字)가 ‘伯玉’이며,
관찰사를 역임했으며,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엠파스 사전에서 찾은 김이음의 자료입니다.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김이음에 대한 자료가 다수 발견됩니다.
이 자료는 생략합니다.

   김이음(金爾音) - 엠파스 인물사전 자료
   ?∼1409(태종 9).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백옥(伯玉), 호는 삼로(三路).
   
아버지는 용(勇)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376년(우왕 2)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389년(공양왕 1) 지평이 되었으며, 2년 뒤 문하사인이 되었다.
   
조선 건국 뒤에는 우사간이 되었고,
   
1405년(태종 5)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효행이 뛰어나 정문이 세워졌으며,
   영주의 삼봉서원(三峯書院)에 배향되었다.

   <참조>
   이  색 1328~1396
   이숭인 1349~1392
   김이음   ? ~1409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척약재시의 재해석, 잘 읽었습니다.
시의 등장인물 '백옥(伯玉)'은 金爾音의 자로 함창인이라.
철저하고 확실한 논거 조사를 통해 입증해 내셨습니다.
-새로 쓰는 국역 척약재집- 앞으로 이어지는 속편이 기대됩니다.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그간 백옥에 대해서는 저도 무척이나 궁금하여 알아보려고 했는데
명쾌한 증명으로 백옥이라는 분이 함창김씨이며 이름은 김이음. 1374년 문과 급제한 분..
감사합니다.

김상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상석
작성일

  다양한 고문과 교류인사들의 시문을 통한 휘,자,호,관직의 추적으로 의문을 풀어나가시는 윤식님의 지적호기심과 탐구열정에 탄복했습니다.

김재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원
작성일

  이토록 우리 문중홈을 지켜주시고 문중홈 발전을 위하여 애쓰시는데 대하여
감사드리면 송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