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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향토의설화 연오랑과 세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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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작성일02-06-16 14:36 조회1,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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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세오녀01.gif 연오랑세오녀02.gif 연오랑세오녀04.gif 연오랑세오녀03.gif 연오랑세오녀05.gif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8대 아달라왕 즉위 4년(157)에 신라땅 동쪽 일월동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연오랑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 였어며 세오녀는 베를 짜며 금슬좋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해초를 따든 중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동쪽으로 흘러가 일본의 섬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그곳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으로 남달리 신비하고 비상한 사람으로 생가하고 연오랑을 왕으로 모셨다. 일월지 연오랑이 돌아오지 않음을 크게 슬퍼하던 세오녀는 연오랑을 찾아 헤메다가 연오랑의 신발이 놓인 바위에 오르니 이 바위가 다시 움직여 연오랑이 있는 섬나라에 도달하여 왕비가 되었다. 그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갑자기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지니 이에 놀란 아달라왕은 급히 점을 치게 하니 천지가 어두워진 연유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바다를 건너가고 없어 이땅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하였다. 이말을 들은 왕은 사자를 불러 섬나라에 건너가 연오랑과 세오녀를 이땅에 다시 불러오도록 명하였던바 연오랑과 세오녀는 대답하기를 우리는 이미 하늘의 뜻을 쫓아 이곳으로 건너와 왕과 왕비가 되었으니 다시 갈수 없다고 말하면서 왕비가 손수 짠 비단 한필이 있으니 가지고 가서 내가 살던 못사에 단을 쌓고 나무가지에 이 비단을 길게 걸고 정성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기이하게 빛을 잃었던 해와 달이 빛을 찾아 신라 땅을 환하게 비추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제사를 지내던 못을 일월지라 하고 이 지역을 도기야라 하였으며 지금도 이 지역을 일월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월지 채수모습 ▶ 일월과 관계된 유적 - 일월 사당 연오랑.세오녀의 설화를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우수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운 해.달 설화를 지역민에게 희망적인 정서문화로 승화시키는 표본으로 삼고자 일월사당을 복원하였다. 지역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코자 매년 10월에 천지신명(해.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구 영일군의 일월문화제가 개최되는 해에도 이곳에서 제를 올렸으며, 1994년 영일군수가 초헌관이 되었으며 1995년부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일월신제를 올리고 있다. - 일월지 해병부대내에 3,000여평 면적의 일월지가 위치하고 있다. 1992년 영일군비 지원금으로 영일문화원이 주관하여 일월지를 정화하고 수중펌프를 설치하여 일월지의 물을 해병부대 관리하에 정화시키고 있다. - 제단(천제단) 일제 침략전까지 일월지부근에 신라시대부터 일월에 제사를 드리던 제단이 있어서 매년 9월 주양절에 해와 달에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일제 침략후 철거하였다함. - 일월지사적비 일월지 앞뚝 중앙에 일월지사적비가 위치하고 있다. 일제침략후 일제가 사적비를 철거시켰던 것을 1992년 3월 당시 영일문화원이 주관하여 영일군비보조와 해병부대의 인력지원을 받아 일월지사적비를 건립 하였다. 일월지 사적비 ▶ 위 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 ▶ 일월지 견학 요령 - 해병 922부대 견학 예정 3일전 협조의뢰 - 견학자(차량번호·주소·주민등록번호·성명등) 인적사항 통보 견학 일정 협의 - 견학 협조 의뢰처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 사서함 209-101-6호 민사참모 ☎ 054) 290 - 3181 ~ 3 ▶ 개 요 옛날 상고시대에 신라시대로부터 [해달못]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가 우리나라 에 들어와서부터 한자식으로 부르게 되어 일월지라 부르고 또 해와 달의 빛이 다시 동라왔다고 광복지라 불렀다. 이 못은 동쪽과 서쪽 즉 직경이 약 250m 남쪽 과 북쪽의 폭이 약 150m로 총면적 약 5,000평 정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 김영환 -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은 알지만. 이제야 정확히 알았습니다.
▣ 김태서 -
▣ 김항용 -
▣ 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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