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덕(金宗德) 형제와 종반, 호는 천사(川沙) | 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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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8-08-26 14:09 조회1,786회 댓글1건본문
김종덕(金宗德) 형제와 종반, 호는 천사(川沙) | | | 역사인물 |
김종덕(金宗德) 형제와 종반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김종덕은 사원(士元)의 6세손으로 일찍이 퇴계의 연원 정맥인 대산(大山) 이상적(李象靖)을 사사하여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조선조 후기 학자로서 영남의 사종(師宗)으로 추앙을 받았다. 일찍이 사마시(司馬誡)에 합격하고 덕망과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를 재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자정(孺子亭)을 짓고 강론함에 원근의 많은 선비들이 문하에 출입했다. 문집(文集) 20권 부록(附錄) 4권, 성학입문(聖學入門) 상ㆍ하권, 성학정로(聖學正路), 정본(正本), 초려문답(草蘆問答) 4권 예서(禮書) 등이 발간되었으며, 고증(考証) 12권 및 동몽교재(童蒙敎材) 입본(立本) 등은 간행하지 못한 채 유고로 남아 있어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후 사림에서 不祺位로 고유했고, 안동과 청송 사림에서 부강서당(鳧江書堂)을 창건하여 호(湖) 李象靖 사(沙)金宗德 평(坪) 柳致明 삼선생의 위패를 봉안하려던 중, 대원군의 철훼령으로 무산되고, 대산의 약중편(約中編)과 천사의 성학정로(聖學正路), 정제의 주절휘요(朱節彙要)를 동시에 병간했으며, 부강서당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1992년에 啓明漢文學硏究會에서 全集 7책이 刊行되었다. 형제 4인과 종반 2인 모두 대산 이상정을 사사하여 문사가 출류하고 경학과 성리학에 밝았으며 대소과에 전원 급제함으로 당세에 널리 알려졌다. 중제 종경(宗敬)은 호가 구제(苟齋)로 문과급제하여 성현찰방(省峴察訪)과 사헌부 지평을 역임했으며, 선사 대산(大山)으로부터 심경강록(心經講錄) 의 찬술을 명받고 완성치 못한 가운데 졸함에, 형 종덕과 아우 종섭(宗燮)이 필역하여 세상에 전한다. 숙제 종발(宗發)은 호가 용연(容淵)으로 문과 등제하여 장릉 별검(莊陵 別檢)과 사헌부 장령을 역임했다. 천품이 영매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훈을 독신했다. 정조(正祖)는 그의 행의가 특이하고 학문이 고명하다고 찬양한 일이 있으며 문집 4권과 유가요락(儒家要覽), 예서 등이 간행되었으며, 계제 종섭(宗燮)은 호 가 제암(濟庵)이며 천자가 수미하고 총명이 뛰어났으며, 문장이 겸비하여 동문의 추중을 받았다. 생원시(生員誡)에 합격, 명상 체제공(蔡濟恭)과 친교를 가졌고 서찰의 왕래가 있었다. 49세로 조요(早夭)했으나 후학을 계도하고 문집 8권을 남겼다. 종제 종신(宗臣), 종준(宗駿) 모두가 생원(生員)에 이르렀으며, 학행으로 향도에 알려졌고 종준(宗駿)은 글씨에도 능해서 필첩(筆帖)과 유고가 전한다. 종경의 손 양민(養麟), 종발의 손 양범(養範), 종섭의 손 양징(養徵)은 모두 사마시에 합격되고 경사에 박섭하였으며, 양범은 생원 진사 양시에 입방하고 가학을 상승하여 선비들의 추중을 받았다. 시혜불보(施惠不報) 애린교화(愛憐敎化)에 힘써 후진을 감복케 했으며, 명고동(속칭 만동골)에 문생들이 스승의 처로 3간 집을 세우니 이가 곧 만동서숙(晩同書塾)이다. 만년에 여기를 별저로 삼아 훈학하고, 명사들의 내왕도 잦았으며 유집이 있다.
위치:사촌가로숲 내
위치: 사촌마을자료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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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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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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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사합니다. 사진과 글을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