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지순례 16-1.(강진군마을사-작천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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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6-21 00:32 조회2,090회 댓글0건본문
강진군마을사(작천면편)/강진군청/1993
☞ 옮긴이 註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에는 충렬공(방경)의 장자이신 전
법판서 상장군 愃(선)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忠肅公 承用(충숙공 승용), 上洛君 厚
(상락군 후), 군사공파조이신 七陽(칠양)의 단소 또는 묘소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
다. 최근 국역된 강진군지가 없어 강진군마을사(작천면편)으로 대신합니다.
▣ 작천면의 연혁.(pp39, 45)
---鵲川面(작천면)은 강진 북쪽에 있는 넓은 분지로서 북으로는 호남 명산인 月
出山(월출산), 남으로는 五峰山(오봉산), 서로는 秀岩山(수암산)이 畵屛(화병)처럼
아름답게 둘러 있으며, 까치내 大川水(대천수)는 한들의 한복판을 뚫고 유유히 흘
러가니 토지는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천혜의 고을이다.
---鵲川(작천)이란 이름은 川名(천명)이었다. 1482년(성종 12년)에 편찬한 『신증
동국여지승람』이나 그후 현종 년대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鵲川(작천)
은 일명 송계니 월출산에서 발원하여 강진현 북쪽 고도강(성전면 수양리) 앞을
지나 장흥부로 흐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아득한 옛날 우리 선인들이 “까치
내”라고 불러오던 하천의 이름을 한자로 옮겨 기록한 것을 취하여 3면을 합하면
서 鵲川面(작천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 土馬里(토마리)의 연혁.(pp421)
---토마리는 면소재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작천면 12개 법정리중의 하나
이면서 土洞(토동)과 離馬(이마)의 2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五峰山(오봉
산) 줄기와 花芳山(화방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土馬里(토마리)는 동으로는 병
영면 삭둔리, 서로는 오봉산 줄기를 넘어 삼당리, 남으로는 화방산을 넘어 군동면
화방마을, 북으로는 이남리 하남마을과 인접하고 있다.
---현재 토마리에 오래 살아온 성씨를 보면 흥덕장씨, 통천최씨, 경주이씨 등이다.
▣ 안동김씨 입향유래.(pp75)
---안동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이며 신라 경순왕의 자손인 金利請(김이청)의 후손
들이 안동에서 살게되어 안동김씨라 불려온다.
---중시조는 고려시대 진도와 제주의 삼별초군을 공략한 金方慶(김방경 1212~
1300)이다. 5세인 都事公派(옮긴이 註 : 도사공파는 郡事公派(군사공파)의 오기일
것으로 추정됨)에 이르러 3형제를 두니 括(괄)은 생원, 塡(전)은 직제학, 墩(돈)은
제학파로 나뉘어 진다.
---강진의 입향조는 承用(승용)으로 1290년에 벼슬을 시작하여 대제학을 거쳐
1329년 원나라에서 高麗君鎭國萬戶(고려군진국만호)를 지내고 귀국하던 중 1334
년 숨을 거두었다. 묘는 강진군 남산동에 있으며 “提學陵洞(제학능동)”이라 불리
운다. 그뒤 자손은 군동면 내동으로 옮겨 살고 있으며 현재 25세의 후손들이 거
주하고 있다.
☞ 옮긴이 註 : 강진군마을사는 각 면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국립
중앙도서관에 군동면편이 없습니다. 군동면 내동에 대한 기록은 추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을연혁.(pp424)
---(전략) 마을의 개촌성씨로 알려진 안동김씨가 조선시대에 마을에 정착했다고
전해지는 점으로 미루어 문헌상의 기록 이전에 촌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
다. (중략) 현재 까지 밝혀진 바로는 안동김씨가 가장 먼저 입촌하였다고 하나 현
재 1가구도 거주치 않고 있어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고, 이후 통천최씨, 경주이
씨 등이 조금 늦은 시기에 입향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현제 12개의 성씨가 고
른 분포를 보이며 거주하고 있다.
▣ 풍수지리설과 주요지명.(pp424, 425, 427)
---조리형국 : 절골 아래쪽인 안동김씨들의 제각과 선대묘가 있는 부근을 일컬는
다. 일명 피리젓대형국이라고 불리운다.
---토동 : 본 마을을 이루는 명칭으로 남산골과 큰토골을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
토마마을이라고도 불리운다.
---남산골 : 마을회관에서 남서쪽으로 24가구가 거주하는 지역을 가르킨다. 현재
와 같이 남산골이라 부르기 전에 남성동에서 남성골, 남성골에서 남산골이라는
지명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투구봉 : 화방산 서북쪽 줄기로서 봉우리가 투구같이 뾰족하여 붙여진 지명으
로 산 아래에는 안동김씨 제각이 있다. 높이 220m.(2002. 6.20)
▣ 김영환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정중 - 수고 많으십니다!!
▣ 김주회 - 전남 강진국 작천면 토마리 우리 선안동김씨 입향내력 및 마을연혁을 접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우리 안사연이 없었다면 평생 한두번 볼까말까한 자료일지 모릅니다. 우리 안사연이 자랑스럽습니다.
▣ 김발용 - 윤만형님 감사합니다. 군사공 할아버지 자손으로써 강진의 입향내력을보니 기쁜 마음이 더합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재익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옮긴이 註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에는 충렬공(방경)의 장자이신 전
법판서 상장군 愃(선)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忠肅公 承用(충숙공 승용), 上洛君 厚
(상락군 후), 군사공파조이신 七陽(칠양)의 단소 또는 묘소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
다. 최근 국역된 강진군지가 없어 강진군마을사(작천면편)으로 대신합니다.
▣ 작천면의 연혁.(pp39, 45)
---鵲川面(작천면)은 강진 북쪽에 있는 넓은 분지로서 북으로는 호남 명산인 月
出山(월출산), 남으로는 五峰山(오봉산), 서로는 秀岩山(수암산)이 畵屛(화병)처럼
아름답게 둘러 있으며, 까치내 大川水(대천수)는 한들의 한복판을 뚫고 유유히 흘
러가니 토지는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천혜의 고을이다.
---鵲川(작천)이란 이름은 川名(천명)이었다. 1482년(성종 12년)에 편찬한 『신증
동국여지승람』이나 그후 현종 년대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鵲川(작천)
은 일명 송계니 월출산에서 발원하여 강진현 북쪽 고도강(성전면 수양리) 앞을
지나 장흥부로 흐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아득한 옛날 우리 선인들이 “까치
내”라고 불러오던 하천의 이름을 한자로 옮겨 기록한 것을 취하여 3면을 합하면
서 鵲川面(작천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 土馬里(토마리)의 연혁.(pp421)
---토마리는 면소재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작천면 12개 법정리중의 하나
이면서 土洞(토동)과 離馬(이마)의 2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五峰山(오봉
산) 줄기와 花芳山(화방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土馬里(토마리)는 동으로는 병
영면 삭둔리, 서로는 오봉산 줄기를 넘어 삼당리, 남으로는 화방산을 넘어 군동면
화방마을, 북으로는 이남리 하남마을과 인접하고 있다.
---현재 토마리에 오래 살아온 성씨를 보면 흥덕장씨, 통천최씨, 경주이씨 등이다.
▣ 안동김씨 입향유래.(pp75)
---안동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이며 신라 경순왕의 자손인 金利請(김이청)의 후손
들이 안동에서 살게되어 안동김씨라 불려온다.
---중시조는 고려시대 진도와 제주의 삼별초군을 공략한 金方慶(김방경 1212~
1300)이다. 5세인 都事公派(옮긴이 註 : 도사공파는 郡事公派(군사공파)의 오기일
것으로 추정됨)에 이르러 3형제를 두니 括(괄)은 생원, 塡(전)은 직제학, 墩(돈)은
제학파로 나뉘어 진다.
---강진의 입향조는 承用(승용)으로 1290년에 벼슬을 시작하여 대제학을 거쳐
1329년 원나라에서 高麗君鎭國萬戶(고려군진국만호)를 지내고 귀국하던 중 1334
년 숨을 거두었다. 묘는 강진군 남산동에 있으며 “提學陵洞(제학능동)”이라 불리
운다. 그뒤 자손은 군동면 내동으로 옮겨 살고 있으며 현재 25세의 후손들이 거
주하고 있다.
☞ 옮긴이 註 : 강진군마을사는 각 면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국립
중앙도서관에 군동면편이 없습니다. 군동면 내동에 대한 기록은 추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을연혁.(pp424)
---(전략) 마을의 개촌성씨로 알려진 안동김씨가 조선시대에 마을에 정착했다고
전해지는 점으로 미루어 문헌상의 기록 이전에 촌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
다. (중략) 현재 까지 밝혀진 바로는 안동김씨가 가장 먼저 입촌하였다고 하나 현
재 1가구도 거주치 않고 있어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고, 이후 통천최씨, 경주이
씨 등이 조금 늦은 시기에 입향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현제 12개의 성씨가 고
른 분포를 보이며 거주하고 있다.
▣ 풍수지리설과 주요지명.(pp424, 425, 427)
---조리형국 : 절골 아래쪽인 안동김씨들의 제각과 선대묘가 있는 부근을 일컬는
다. 일명 피리젓대형국이라고 불리운다.
---토동 : 본 마을을 이루는 명칭으로 남산골과 큰토골을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
토마마을이라고도 불리운다.
---남산골 : 마을회관에서 남서쪽으로 24가구가 거주하는 지역을 가르킨다. 현재
와 같이 남산골이라 부르기 전에 남성동에서 남성골, 남성골에서 남산골이라는
지명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투구봉 : 화방산 서북쪽 줄기로서 봉우리가 투구같이 뾰족하여 붙여진 지명으
로 산 아래에는 안동김씨 제각이 있다. 높이 220m.(2002. 6.20)
▣ 김영환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정중 - 수고 많으십니다!!
▣ 김주회 - 전남 강진국 작천면 토마리 우리 선안동김씨 입향내력 및 마을연혁을 접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우리 안사연이 없었다면 평생 한두번 볼까말까한 자료일지 모릅니다. 우리 안사연이 자랑스럽습니다.
▣ 김발용 - 윤만형님 감사합니다. 군사공 할아버지 자손으로써 강진의 입향내력을보니 기쁜 마음이 더합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재익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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