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자 낙전당 신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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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9-09-11 09:35 조회2,197회 댓글1건본문
상기 신도비명은 남봉공(휘 홍도)의 신도비명이 아니라 그 아드님인 몽촌공(휘 수)의 신도비명입니다. 찬자를 소개합니다.
찬자 낙전당 신익성 [申翊聖, 1588~1644] 소개
본관 평산(平山). 자 군석(君奭). 호 낙전당(樂全堂) ·동회거사(東淮居士). 시호 문충(文忠). 선조의 사위, 척화5신(斥和五臣)의 한 사람이다. 12세에 선조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결혼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1606년(선조 39) 오위도총부부총관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여 벼슬이 박탈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재등용되고, 이괄(李适)의 난 때는 3궁(宮)을 호위했고, 1627년 정묘호란에는 세자를 호위, 전주로 피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고 남한산성에 있으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여, 선양[瀋陽]으로 붙잡혀 갔다가 뒤에 풀려났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다. 글씨로 <영창대군 비>·<율곡이이비> 및 저서에 《낙전당집(樂全堂集)》 《청백당일기(靑白堂日記)》 등이 있다
댓글목록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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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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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