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충렬공 유일 시 '복주'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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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9-09-05 16:42 조회1,649회 댓글0건본문
좋은 지적입니다! 한시는 5언, 7언, 절구, 율시, 운자 등의 정형성과 표의문자인 한자로 구성되는 관계로 글자 그대로 직역을 하면 문맥도 잘 흐르지 않고 시인의 시감이나 시작(詩作)의 동기를 모르고 국역을 할 경우 맵시가 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작가가 풍부한 상상력과 허구를 가미하여 풀어가는 소설과 달라서 특히 지적하신 것처럼 시인이 처한 상황과 시작의 위치(장소), 시인의 사고능력, 시점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애써 미사여구를 달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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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충렬공께서 남기신 유일한 시를 아래와 같이 접근하여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시제 : <辛巳歲 東征日本 班師至福州>-“신사년 일본정벌길에 도원수로서 복주에 이르러“라는 시제로 보아 일본정벌 전후가 분명하지도 않다. 따라서 회군길에 지으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추론>
1. 시의 언어로 보아 시인(충렬공)이 출정에 앞서 우국충정으로 전의를 불사르기 위에 지으시거나 회군길에 일본정벌과 관련한 미묘한 심리상태로 읊으신 것은 아님.
2. 일본정벌 전후 관계없이 고향인 안동(복주)에 이르러 어린 날 노닐던 영호루에 올라 잠시 국정을 잊고 추억이 정취를 자아내어 그때의 감회를 노래하신 것으로 보임. <1연>의 “山水無非舊眼靑”과 <2연>의 “樓臺亦是少年情”이 그러하다.
3. 당시 인근 군민들이 나와서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환송식이나 무사귀환에 따른 영접이 있었다. <3연>의 “可憐故國遺風在”과 <4연>의 “收拾絃歌慰我行”은 “가련한 고향 안동, 손을 위해 축하연을 해주는 지역민들의 아름다운 오랜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어 정신을 수습하고 줄 뜯어 노래하며 내 가는 길 위로해주네”로 해석하면 무난할 듯 하다.
4. 당시 유행하던 절구는 짧기 때문에 함축성을 지녀야 함. 율시처럼 1연과 2연, 3연과 4연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짐.
<개인 재해석>
山水無非舊眼靑 - 산과 물은 옛날과 같이 푸르고
樓臺亦是少年情 - 누대 또한 어릴 적 그 모습
可憐故國遺風在 - 가여운 고향엔 옛 풍속 있어
收拾絃歌慰我行 - 노래 가락 모아 내 갈길 달래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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