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re] 아래글에 이은 질의와 이해

페이지 정보

김태영 작성일10-01-23 10:12 조회1,776회 댓글0건

본문

世와 代

우리나 중국 사람들은 참으로 이름을 중시했던 민족이다. 豹死留皮 人死留名 (표사유피 인사유명: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라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효도의 바이블이라 할수있는 孝經에는 揚名(양명:이름을 널리 알림)하여 부모를 만 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 단계라고 강조한다. 秦(진)나라말 병력을 인솔하던 진승(陳勝)은 장마 때문에 약속한 기일에 닿지 못하자 어차피 죽을 목숨, 차라리 대장부답게 이름이나 남기자며 거사(擧事)했다. 이때 그가 남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없을소냐!'는 역사의 명언이 되었다. 사람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아무리 친숙한 사이라도 직접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스럽다 하여 호(號)를 불렀으며 나이 스믈이 되면 관례(冠禮)와 함께 자(字)가 내려졌다. 이름 때문에 생긴 독특한 풍습중에 피휘(避諱:피하고 꺼림.)라는 것이 있다. 주(周)나라 때부터 있었으니 벌써 3000년이 넘는다.

문장이나 대화에서 천자나 조상,부모등 특정인의 이름자가 나오면 피하고 대신 다른 글자를 사용 하는 것이다. 특히 천자의 이름자는 모든 백성이 피휘(避諱)해야 했으므로 이를 국휘(國諱)라 불렀는데 혹 범할 경우 대역무도(大逆無道)라 하여 심하면 참형(斬刑)이 내려 지기도 했다.

피휘의 방법중 대표적인 것에 같은 뜻의 다른 글자로 바꾸는 것이 있다. 일례로 一은 單, 旺은 昌, 元은 首등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기(禮記)에 보면 부모와 자식간을 一世라 하여 30년으로 규정 하고 있다. 그래서 조상을 언급 할때 '世′라고 했다. 그러나 당태종(唐太宗)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었으므로 당나라 280여년간은 世와民 두자는 사용할수 없게되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世와 같은 뜻인 代자를 사용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나라가 망한 이후에는 피휘 해야할 이유가 없어 졌으므로 이 두자가 함께 사용되기 시작 하면서 마침내 '世.代'라는 말이 등장 하게 된것이다.

참고로 조정(朝廷)의 六部중 하나인 호부(戶部)도 본래는 민부(民部)였던 것이 唐太宗의 이름의 '民'때문에 戶部로 바뀌었다.

 

문화가 흐르는 漢字 (정석원:한양대 중문과교수)에서 옮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