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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발간사 09 (1867정묘보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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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7-16 04:18 조회1,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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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발간사 09 (1867정묘보 序)





우리 문중의 최초의 最古의 족보는 지금으로부터 422년전인 임진왜란 12년전, 선조13년, 1580년에 간행한 경진보입니다.

160년이 지난 영조15년, 1739년에 기미보 발간,

40년후인 정조2년 1778년에 무술보 발간,

48년후인 순조25년 1825년에 乙酉譜 발간,

43년후인 1867년에 정묘보를 발간하게 됩니다





1580년 경진보 간행에는

(제)김익과 손자 김방, 아들 윤선

(제)김곽과 아들 김제현

(분파?)김오

(익)김억령, 김찬, 김환 등이 참여하였고,



1739 기미보 간행에는

(분파?)김성유와 족질 김권

(제)김남정

(제)김한장

(안)김집

(익)김우태

(부)김중우와 아들 김유,김식

(부)김흡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1778년 무술보 발간에는

분파?) 南門+困(남곤)

분파?) 永綏(영수)

군사) 光國

(안렴) 得顯

분파?) 樂豊 등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1825년 을유보 발간에는

분파?) 禹元 선조님께서 발간을 주관하시고 또한 序文을 지었고



그리고 1867년 정묘보 발간에는

분파?) 道健이 서문을 지었습니다.











▣ 족보 발간사



---정묘보 (1867)

9. ●정묘보 서

상지4년 정묘 중춘 ---雲孫 道健 근서





대개를 기록하여 전한 것이 사기라 하는데, 국사는 사기집필가의 역사의 譜錄이다. 보록의 범례는 강영에 세목을 잡아 매어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춘추필법이다.



사람의 집에 세대를 이어가는 실마리가 족보가 아니면 어찌할 것인가?



비유하여 말하자면 꽃의 종류가 3백인데, 모두 花譜에 실리어 있어서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화보를 알아야지 그 꽃의 근본을 익히 알고,



음악은 20음절이 한 악보에 실리어져 있어서 음악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 악보를 해득한 후에야 그 음률에 능할 것이니 다 物理가 그러하다.









오직 우리 始林김씨는 ★태보공(=알지) 으로부터 기반을 열어 ★경순왕에 이르러 폭이 불어 그 ★손자(=숙승) 대에서 안동으로 옮겨심어서 안동으로 득관하여 뿌리가 내렸다.



★충렬공께서 안동에 기반을 다진 것이다. 신라와 고려를 거쳐 올동안 자손이 극히 많이 늘어서 충효 勳烈이 家乘에 실린 것뿐만 아니라 특히 국사에 소상히 찬한하게 찬양되어 있고, 글을 잘하고 시도 능하시다고 문중 선인들도 역시 이르시었다.









戊戌譜(=1778)는 옛적 것인데 그후 世序와 항렬의 차례와 문장사업의 전통이 다 이어졌다. 어-庚辰(=1580)으로 지금의 壬戌(=?)에 이르기까지 세월을 따져보면 세기가 몇이 지나고 乙酉(=1825) 수보후 40여년이 지났는데



그간 우리 김씨의 출생은 몇이며, 사망은 몇이며, 출생한 사람의 이름이며, 죽은 사람의 묘소를 족보가 아니면 자세히 알 수 없다.









우리의 선조께서 내리신 혜택 천만대에 미치기까지 자자손손의 화려함도 많은 자손의 뛰어난 자질도 족보가 아니면 그 名行 실적은 고사하고



아무 종친은 아무 할아버지의 몇 대손이며, 아무 일가와 몇촌간이며, 출생한 날짜며, 제삿날이며, 산소좌향이며, 향년의 다소며, 혼인은 어느집과 했다는 것을 알리요









여럿이 논의를 하여 족보를 거듭 간행한 것인데 ★불초(=道健)가 참례하게 된 것은 일을 잘 아는 큰 선비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여러 친족들이 나의 비루한 것은 아랑곳 없이 나이가 많고 족보제도를 조금 짐작한다고 이르고, 주간자라 이르게 되니 과연 송구할 따름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선대 할아버지가 庚辰(=1580) 보역을 주간하시었고, 배운바 없고 용탑한 내가 또 이 일을 내려받으니 감격할 따름이다.



저 壬戌년(=1862) 겨울부터 丁卯년(=1867)까지 6년동안이나 미뤄 오면서 漏單자는 그만 두고 來單자는 인쇄하여 구보에 모방하여 겨우 1부를 이루었는데 장래의 빛도 나지만 지금 돈목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하물며 어찌 자랑으로 할 것인가.









본관을 얻은 후로 다 명문거족이라 각파 후손이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데, 이 대보를 가지고 말하자면 백 집이 한 집이 되고, 열 할아버지가 한 할아버지가 되어 친하고 서의한 정의며 멀고 가까운 촌수가 한 사람 집에 우애를 두터이 하는 역사의 책이 되니 이 譜役이야말로 장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족보의 찬사는 후손에 입으로 나올 것이니, 문득 이것은 家規라 할 수 있다. 못난 내가 갑자기 사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도 세수하고 간략히 서문이라 이르노라









上之4년 丁卯 仲春

雲孫 ★道健 謹序







★道健 ?











▣ 김윤만 - 지금부터 150년전 교통. 통신. 인쇄. 비용 등을 감안해 보면 족보 발간이란 대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저 머리숙여 존경하는 마음 우러를 뿐입니다.

▣ 솔내 영환 -

▣ 김항용 -

▣ 김재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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