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449호 봉정사 고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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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영환 작성일02-07-25 18:11 조회1,735회 댓글0건본문
봉정사 고금당 鳳停寺古今堂
지정번호 : 보물 제449호
소장 : 봉정사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西後面) 태장리(台庄里)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정면 3칸, 측면 2칸
종류 : 단층건물
http://www.bongjeongsa.org/7/gogum.gif
보물 제449호. 정면 3칸, 측면 2칸. 극락전 앞뜰에 동향(東向)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원래는 맞배집
건축이나 북쪽 측면은 훗날 8작지붕으로 개조하였다. 남쪽은 지붕을 연장하여 칸을 막고 부엌을
달았으며, 내부는 온돌을 놓고 요사(寮舍)로 사용하였다.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았고 벽간(壁間)마다
외짝 띠살문을 달았으나 원래의 문짝은 아니다. 공포(뱀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의 구성인데,기둥 윗부분에 꽂은 홋첨차와 그 위로 주두(柱枓)에서 나온 살미첨차가 겹친 위에
행공(行工)첨차를 가로로 놓고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쳤다.
주두에서 좌우로 벽면에 배치된 첨차는 창방(昌枋)과 함께 포벽(包壁) 속에 가리워 보이지 않으나,
건물의 후면은 모두가 원래대로 남아 있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墅遮)의 형태가 이미 조선 전기의
특색을 잃고 변형된 점으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조선 중기에 속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금당은 극락전의 앞 서쪽에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동쪽에 있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건축되어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화엄강당과는 달리 기둥과 기둥의 간격이 좁고 기둥의 키가 높은 구조를
하고 있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연적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놓았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공포는 익공에 가까운 주심초계이며
가구는 고주가 없는 7량가이다. 정면 3칸에는 칸마다 2짝으로 된 띠살문을 달았다. 어칸 문의 크기는
중앙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어 좌 우의 띠살문보다 높이가 조금 더 크다. 측면과 뒷면은 모두 벽으로
막았고 뒷면의 좌 우 협칸에 외문의 띠살문을 달았다.
공포의 구성은 기둥 위에만 포작을 짜올린 주심포계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주두밑에 헛첨자를
끼우고 그 위에 주주 위에서 나온 살미첨자를 포개 놓았다. 이 위에 도리 방향으로 일출목의
행공첨자를 얹어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는 관계로 익공계로 이해되기도 한다. 측면의 가구는 벽
중앙에 귀기둥보다 약간 긴 원형의 고주를 놓아 대들보를 받치고,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쳤으며, 이 위에 다시 짧은 기둥을 세워서 마루도리를 떠받치고 있다. 도리와 장혀를 길게
밖으로 빼내어서 측면 지붕에 깊이감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엄강당에는 대들보와 마루보
사이에 조그만 살창을 두고 있지만 고금당에는 없다.
이것은 화엄강단이 판고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어서 측벽에 살대를 꽃은 통풍창이 있는데 반하여
고금당은 선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살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좌측면에는 아궁이를 내어
난방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내부는 3칸 통으로 공간 활용을 넓게 하였다.
▣ 김태서 -
▣ 김재익 -
▣ 김항용 -
▣ 郡/김태영 -
▣ 태영/문 -
지정번호 : 보물 제449호
소장 : 봉정사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西後面) 태장리(台庄里)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정면 3칸, 측면 2칸
종류 : 단층건물
http://www.bongjeongsa.org/7/gogum.gif
보물 제449호. 정면 3칸, 측면 2칸. 극락전 앞뜰에 동향(東向)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원래는 맞배집
건축이나 북쪽 측면은 훗날 8작지붕으로 개조하였다. 남쪽은 지붕을 연장하여 칸을 막고 부엌을
달았으며, 내부는 온돌을 놓고 요사(寮舍)로 사용하였다.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았고 벽간(壁間)마다
외짝 띠살문을 달았으나 원래의 문짝은 아니다. 공포(뱀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의 구성인데,기둥 윗부분에 꽂은 홋첨차와 그 위로 주두(柱枓)에서 나온 살미첨차가 겹친 위에
행공(行工)첨차를 가로로 놓고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쳤다.
주두에서 좌우로 벽면에 배치된 첨차는 창방(昌枋)과 함께 포벽(包壁) 속에 가리워 보이지 않으나,
건물의 후면은 모두가 원래대로 남아 있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墅遮)의 형태가 이미 조선 전기의
특색을 잃고 변형된 점으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조선 중기에 속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금당은 극락전의 앞 서쪽에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동쪽에 있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건축되어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화엄강당과는 달리 기둥과 기둥의 간격이 좁고 기둥의 키가 높은 구조를
하고 있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연적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놓았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공포는 익공에 가까운 주심초계이며
가구는 고주가 없는 7량가이다. 정면 3칸에는 칸마다 2짝으로 된 띠살문을 달았다. 어칸 문의 크기는
중앙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어 좌 우의 띠살문보다 높이가 조금 더 크다. 측면과 뒷면은 모두 벽으로
막았고 뒷면의 좌 우 협칸에 외문의 띠살문을 달았다.
공포의 구성은 기둥 위에만 포작을 짜올린 주심포계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주두밑에 헛첨자를
끼우고 그 위에 주주 위에서 나온 살미첨자를 포개 놓았다. 이 위에 도리 방향으로 일출목의
행공첨자를 얹어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는 관계로 익공계로 이해되기도 한다. 측면의 가구는 벽
중앙에 귀기둥보다 약간 긴 원형의 고주를 놓아 대들보를 받치고,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쳤으며, 이 위에 다시 짧은 기둥을 세워서 마루도리를 떠받치고 있다. 도리와 장혀를 길게
밖으로 빼내어서 측면 지붕에 깊이감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엄강당에는 대들보와 마루보
사이에 조그만 살창을 두고 있지만 고금당에는 없다.
이것은 화엄강단이 판고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어서 측벽에 살대를 꽃은 통풍창이 있는데 반하여
고금당은 선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살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좌측면에는 아궁이를 내어
난방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내부는 3칸 통으로 공간 활용을 넓게 하였다.
▣ 김태서 -
▣ 김재익 -
▣ 김항용 -
▣ 郡/김태영 -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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