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육백년사 김시양선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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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2-07-31 04:01 조회1,874회 댓글0건본문
<<질의>>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거주 하는 김은회 (金銀會) 라고 합니다.
서울육백년사를 편찬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름 아니오라 조선중기 인물편에 나오는 김시양(金時讓)은
구 안동김씨(舊 安東金氏) 저의 방계 선조이신데 여기에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 로 오기되어 있어 정정을 요청 합니다.
*********************************************************
<<회신내용>>
이 름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안녕하세요.
서울시사편찬위원회입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문의하신 김시양(金時讓)의 본관은 안동(安東)이 맞는 것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저희가 일괄 수정작업을 했는데, 미처 확인 조치하지 못하였던 오자이었습니다.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오류를 지적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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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내용>>
【성 명】 김시양(金時讓)/김시언(金時言)
【생몰년】 1581(선조 14)∼1643(인조 21)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자중(子仲), 하담(荷潭)
【시 호】 충익(忠翼)
【저서·작품】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하담집(荷潭集)》, 《부계기문(쯈溪記聞)》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581(선조 14)∼1643(인조 21).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김시언(金時言), 자는 자중(子仲), 호는 하담(荷潭)으로 좌참찬에 추증된 김인갑(金仁甲)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0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 세자시강원 주서를 거쳐 예조 좌랑으로 지제교를 겸하다가 1610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전라도 도사(都事)가 되었다. 그해 전라도 향시에서 출제한 시제(詩題)가 왕의 실정을 암시한 것이라 하여 종성에 유배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다시 등용되어 예조 정랑 · 병조 정랑 · 수찬 ·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종사관으로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을 도와 난을 진압하고, 1627년 경상 감사로 부임하였다.
경상 감사로 있을 때 경상좌도와 우도의 전결(田結)이 일치하지 않음을 상소하여 균일하게 정비하였으며, 1631년에는 병조 판서에 임명되어 내직으로 부임하였다. 3개월 후에 8도 도원수로 임명되어 4도 체찰사를 겸하였고, 1634년 지충추부사에 서용되었다. 그후 호조 판서 · 세자 좌부빈객 · 강화 유수 · 판충추부사의 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회령의 향사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하담집(荷潭集)》 · 《부계기문(쯈溪記聞)》 등이 있다. 숙종 17년(1691) 시호로 충익(忠翼)을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관련항목】 김휘(金徽) 신경유(申景裕) 정충신(鄭忠信) 민종도(閔宗道)
▣ 김태서 - 수고하셨습니다.
▣ 김재원 - 무더운 여름 우리 홈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솔내 영환 - 감사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부분을 수정 보완하는 것, 우리의 선결과제입니다. 감사합니다.
▣ 태영/문 - 홈에 들어왔다가 어마어마한 자료에 깜짝 놀랐습니다. 홈을 든든하게 지켜 주신 영윤 대부님, 은회 대부님, 태영 아저씨(군), 태서 아저씨 감사합니다. 아마 강진에 계신 재이 대부님께서 항용 대부님과 항용 현종님 가족을 맞이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겠죠. 또 한 번의 따뜻한 만남 소식을 기대합니다.
▣ 김재익 -
▣ 김항용 - 큰 일을 하셨습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그만 수정요구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정중 - 대단 하십니다~! 그 열정...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거주 하는 김은회 (金銀會) 라고 합니다.
서울육백년사를 편찬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름 아니오라 조선중기 인물편에 나오는 김시양(金時讓)은
구 안동김씨(舊 安東金氏) 저의 방계 선조이신데 여기에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 로 오기되어 있어 정정을 요청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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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신내용>>
이 름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안녕하세요.
서울시사편찬위원회입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문의하신 김시양(金時讓)의 본관은 안동(安東)이 맞는 것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저희가 일괄 수정작업을 했는데, 미처 확인 조치하지 못하였던 오자이었습니다.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오류를 지적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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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내용>>
【성 명】 김시양(金時讓)/김시언(金時言)
【생몰년】 1581(선조 14)∼1643(인조 21)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자중(子仲), 하담(荷潭)
【시 호】 충익(忠翼)
【저서·작품】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하담집(荷潭集)》, 《부계기문(쯈溪記聞)》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581(선조 14)∼1643(인조 21).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김시언(金時言), 자는 자중(子仲), 호는 하담(荷潭)으로 좌참찬에 추증된 김인갑(金仁甲)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0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 세자시강원 주서를 거쳐 예조 좌랑으로 지제교를 겸하다가 1610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전라도 도사(都事)가 되었다. 그해 전라도 향시에서 출제한 시제(詩題)가 왕의 실정을 암시한 것이라 하여 종성에 유배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다시 등용되어 예조 정랑 · 병조 정랑 · 수찬 ·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종사관으로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을 도와 난을 진압하고, 1627년 경상 감사로 부임하였다.
경상 감사로 있을 때 경상좌도와 우도의 전결(田結)이 일치하지 않음을 상소하여 균일하게 정비하였으며, 1631년에는 병조 판서에 임명되어 내직으로 부임하였다. 3개월 후에 8도 도원수로 임명되어 4도 체찰사를 겸하였고, 1634년 지충추부사에 서용되었다. 그후 호조 판서 · 세자 좌부빈객 · 강화 유수 · 판충추부사의 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회령의 향사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하담집(荷潭集)》 · 《부계기문(쯈溪記聞)》 등이 있다. 숙종 17년(1691) 시호로 충익(忠翼)을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관련항목】 김휘(金徽) 신경유(申景裕) 정충신(鄭忠信) 민종도(閔宗道)
▣ 김태서 - 수고하셨습니다.
▣ 김재원 - 무더운 여름 우리 홈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솔내 영환 - 감사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부분을 수정 보완하는 것, 우리의 선결과제입니다. 감사합니다.
▣ 태영/문 - 홈에 들어왔다가 어마어마한 자료에 깜짝 놀랐습니다. 홈을 든든하게 지켜 주신 영윤 대부님, 은회 대부님, 태영 아저씨(군), 태서 아저씨 감사합니다. 아마 강진에 계신 재이 대부님께서 항용 대부님과 항용 현종님 가족을 맞이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겠죠. 또 한 번의 따뜻한 만남 소식을 기대합니다.
▣ 김재익 -
▣ 김항용 - 큰 일을 하셨습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그만 수정요구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정중 - 대단 하십니다~! 그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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