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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1차 보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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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문 작성일02-08-02 11:26 조회1,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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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1차 보고(2)



<7월 28일 일요일> - 하회마을에 이어서

(1) 학봉 종택 방문

◆15:50 하회마을 출발 - 16:27 학봉 종택 도착 - 17:05 학봉 종택 출발

< 김시인 어른 의관을 정제하다 >



하회마을을 나와 소산마을 입구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좁은 2차로를 달려 의성김씨 학

봉(鶴峰) 종택에 도착하였습니다.

(학봉 선생과 종택 및 운장각에 보관 중인 전적과 고문서 등에 관해서는 영환 종친을 비롯한 여러 종친들께서 올리신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느 고택과 달리 학봉 종택의 옛 건물은 기둥이 검게 보이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종손이신 김시인(金時寅) 어른은 별채에서 글을 읽고 계셨습니다. 방 안에는 책이 가득 했습니다. 큰

절로 인사를 드리고, 항용 종친께서 휘 시양(金時讓) 할아버지 문집인 <하담문집>을 전달했

습니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우리 일행의 안동지역 답사 목적을 말씀드린 뒤, 학

봉 선생에 대해 역사적 평가가 잘못 이루어지게 된 사연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로 화제가

이어졌습니다.



종택 내 운장각(雲章閣)에 보관된 전적과 각종 유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청하자 김시인 어

른께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본채로 건너가시며 이러시더군요.

"옷을 입고 나오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잠시 후 김시인 어른께서는 사랑채에서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나오셨습니다. 서너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운장각이 있건만, 예를 갖추는 자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인사를 나누던 때의 <강>하게만 느껴졌던 김시인 어른의 인상이 어느새 <온화

하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운장각은 종택의 귀한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어서 방범 시스템이 완벽했습니다. 현대식 경보

장치가 설치돼 있고, 입구는 철문이었습니다.(우리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각종 유물의 관

리도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김시인 어른께서는 우리 일행을 안으로 안내하시면서 <경판고>까지 열어 주시고(특별 배려

같았습니다), 전시 중인 유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 웬 청년이 아가씨에게

영어로 설명을 하더군요. 그 처자가 우리말을 모르나 봅니다. 이들은 운좋게도 우리를 뒤따

라온 덕에 운장각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운장각 관람 뒤 김시인 어른을 모시고 본채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그때 종친 중

한 분이 사랑채를 비롯한 종택 건물에 대해 질문을 드리자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종택을 들어서면서 느꼈던, 기둥이 검게 보이는 것은 들기름을 먹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념촬영 후 김시인 어른은 대문 앞에 나오셔서 우리 일행의 마지막 차량이 앞마당

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 천등산 봉정사 관람

◆17:16 천등산 봉정사 도착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 >



학봉 종택을 나와 10여 분 만에 봉정사에 도착했습니다. 절 입구 안내판 앞에서 영환 종친

께서 봉정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영환 종친의 설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봉정사 극락전>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목

조건물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로

알고 있지만, <봉정사 극락전> 해체 수리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부석사 무량수전>

보다 앞서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건물 양식 역시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양식을 갖고

있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선다고 합니다.

이외에 사찰에서 모시는 부처님의 종류에 따라 전각의 이름이 다르고, 협시보살의 유무에

의해 <대웅전>과 <대웅보전>으로 구분된다는 설명이 알기 쉽게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왔습

니다.



(3) 회곡동 충렬공 할아버지 유허지 참배

◆18:05 풍산읍 회곡리 도착 - 18:35 회곡리 출발 - 18:40 상락대 건너편 길가 도착

< 안동김씨의 성지, 회곡동과 상락대 >



봉정사를 살펴보고 나오자 어느새 햇살이 설핏해져 일정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해가

긴 계절이라 회곡리에 도착해서도 날이 훤한 상태였습니다.

회곡동은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사셨던 곳으로 우리 선김의 발상지이자 영원한 마음의 고향

입니다. 회곡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계시고, 이미 홈페이지에 상세한 내용이 올라와 있

으므로 생략합니다.



회곡동에 도착한 일행은 서둘러 <충렬공 유허비각>으로 올라가 참배를 했습니다. 비각은

좁고 일행은 많아 큰절을 올릴 수 없어 묵념으로 대신했습니다.

이어 답사팀 일행은 <충렬공 유허비각> 왼쪽에 있는 <냉천국대부인 죽주박씨 단소>로 이

동했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에는 탐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이 나

무들은 바로 밑에 있는 재실 관리인 봉회 종친께서 관리하는 것이니 맛을 보셔도 된다는 정

중 종친의 말씀에.... 축 늘어졌던 복숭아 가지가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단소에 도착한 일행은 모두 큰절을 올렸습니다. <죽주박씨 할머니 단소> 앞은 꽤 가파르기

때문에 향사 때에 너무 많은 종친들이 참석하면 가끔 큰절을 올리다가 밑으로 굴러떨어지기

도 한다고 정중 종친께서 들려 주었습니다.



단소 앞에서 기념촬영 후 차를 되돌려 상락대가 건너다 보이는 길가에 잠시 주차해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천길 만길 낭떠러지 위로 불룩 솟은 곳이 상락대입니다. 이

미 사진이 올라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강을 따라 쭈-욱 길게 뻗어내린 산줄기 중

에서 우뚝하게 솟은 부분입니다.

충렬공 할아버지께서는 산 너머 회곡동에 사실 적에 매일같이 한 걸음에 내달려 상락대까지

다녀오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고 합니다. 강가에는 널따란 모래밭이 깨끗하게 펼쳐져 있

는데, 하회마을 모래밭보다 훨씬 규모가 커 보였습니다. 이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바로 하

회마을에 닿습니다.

회곡동을 출발해 능골로 향하자 영회 종친께서 작별인사를 하셨습니다. 사업으로 바쁘신 중

에도 기꺼이 참가하신 영회 종친께 감사드립니다.



(4) 음수재 도착

◆20:18 음수재 도착 - 20:30 저녁 식사

< 뭔데? 무신 일인데? - 길 잃어서 그래요! >



상락대를 한참 바라본 뒤 능골 음수재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항용 종친의 차가 고장나고 말

았습니다.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니었는데, 부품이 없어 다음 날 찾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면서 선도 차량이 능골로 들어가는 길을 착각해 엉뚱한 산길로 접어들

었습니다. 선도 차량은 예정보다 지체된 탓에 지름길을 택한 것인데, 날이 어두운 데에다 산

골짜기 좁은 길이 비슷비슷해 다른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게다가 후미를 맡은 주회 종친

이 짧은 신호등 때문에 그만 일행에서 떨어졌습니다. 속도를 늦추면서 기다렸지만, 합류하기

가 어려워 보였습니다.(나중에 알았지만, 주회 종친께서는 이미 몇 차례 음수재를 방문했기

때문에 길을 훤히 알고 있어서 곧 합류했습니다. ^_^)



깊은 산 속을 외지 차량 10여 대가 열을 지어 달리자 할머니들이 깜짝 놀라 길가로 뛰어나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뭔데, 무신 일인데. 웬 서울 차들잉교?"



우리 일행의 도착이 늦어지자 음수재 관리를 맡고 계신 봉회 종친(회곡동 죽주박씨 할머니

재실 관리인 봉회 종친과 성함이 같습니다)께서 몇 차례나 전화를 하신 모양입니다. 길을

못 찾을 것 같아 입구까지 차를 몰고 나오실 생각이셨답니다.



20:20경 음수재에 도착, 봉회 종친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모두들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간

단히 씻은 다음 미리 준비된 저녁상을 받았습니다. 종친들이 대거 방문한다는 소식에 봉회

종친께서는 손수 미꾸라지를 잡아 체로 거른 추어탕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봉회 종친의 정

성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녁상을 물린 후 22:00시부터 친교의 시간과 흥겨운 캠프 파이어를 가졌습니다. 정말 신나

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재원 - 도착하시자 마자 피곤한 몸으로 일정결과를 올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 김정중 - !!!!

▣ 김영환 - 일정이 끝났어도 태영씨의 노고는 계속 되는 군요. 감사. 또 감사

▣ 김윤만 - 그렇네요. 태영씨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글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던데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 김발용 - 아직 안동에 있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우째 이리 글을 잘 쓰시는지....

▣ 김재익 -

▣ 김은회 - 안사연 현종 여러분께서 무사히 일정을 맞치시어 감사드림니다.

▣ 김항용 - 태영님의 노고가 제일 뒤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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