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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峰 金思達 博士(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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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영환 작성일02-08-07 00:55 조회1,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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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 김사달 박사님의 이야기를 몇회에 걸쳐 옮기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글은 재룡씨의 홈에서 허락을 받고 전재하는 것입니다.







▣ 서봉 김사달박사 서화문집 (의협신보편, 1985)



발간사 --- 金直勝



이 書畵文集은 西峰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음을 알고나서, 스스로의 생애를 마무리 짓는



작업으로써 선택하였고, 마지막 정열을 다하여 엮어낸 저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 스스로만의 생각과, 스스로만의 손으로서 엮어졌는데 발행만은 굳이



[학예춘추]사에서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먼 발치에서나마 저자의 초인적인 각고를 지켜보면서 무언가 힘이 될 일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특히 서봉은 저자와 발행인이라는 사이를 넘어, 관향이 같기에 늘 나를 宗氏라고 부르던 터였습니다.







회고컨대 생전에 서봉은 세상 사람들이 잊지 않으리만큼 의학관계로, 서예관계로 또는 문필이나



스포츠관계로 신문·잡지 등에 그 이름이 오르내렸고, 라디오·텔레비젼 등을 통하여 于今 건재함이



널리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있는 말, 없는 말이 무수히 나돌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주위의 관심을 모았으며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으니, 이 나라에 金思達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음은 우리의 기억에



새롭습니다.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서, 국민학교만을 졸업하고서도 독학으로 의학박사요, 대학교수가 되었을



뿐아니라, 이 책이 말하듯이 한국 최고의 서예가요 문필가가 된 문자 그대로 立志傳적인 인물이었으니,



특히 빈한한 독학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偶像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먼 빛으로 보는 준산·영봉도 직접 그 땅을 디디고 보면 동구 밖 뒷동산과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나로서 말한다면 가까이에서 보는 서봉은 얌전한 선비요, 조용한 노력가였을 뿐인데,



막상 이승을 떠나고 보니 갑자기 세상에 드문 거인으로 부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은 생전에는 평가하기 어려우며, 유명을 달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올바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갑니다.



온 천하가 그의 죽음을 아꼈으며, 교통정리를 하리만큼, 문전에 줄지었던 조객과, 거리를 메운 국향, 그



리고 온 마을을 떠나보내리만큼 높았던 호곡은, 서봉을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길이 전하여질



것입니다.







특히 이 문집은 서봉의 화신이며, 假刷(가쇄)된 책자를 본 다음, 영면하였고, 미망인 趙南順 여사는



이 책을 관 안에 넣어 보냈던 것입니다.



이러구러 발행이 늦어오다가 遺作展을 앞에 하고, 一周忌를 맞는 마당에서 이를 발행하게 되니



그 감회가 새로우며, 새삼 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1985년 12월 일













▣ 김재원 -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 김태서 - 잘읽었습니다.

▣ 김태병 - 잘읽었습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석 농장에는 비피해가 없는지 궁금합니다.

▣ 김재익 -

▣ 郡/김태영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저도 서봉 김사달박사의 입지전적 이야기는 자주 들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곤 얼마나 애석해 하였는지, 좀 더 사실 수 있는 연세였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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