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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나기 -01 (제1회 여름캠프에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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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8-09 13:50 조회1,5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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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나기 01 (제1회 여름캠프에 참가)





지난 7월 28일부터 7월 30일까지 안동 의성 일원에서 우리 안사연의 2002년도 제1회 여름캠프가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사정으로 7월 28일 하루만 참석하게 되어 지금도 아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의성 사촌을 구경하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6시부터 짐 챙기랴, 아이들 깨우랴 부산을 떨기 시작하여 가까스로 7시반에 집을 나섰습니다. 아들딸 남매는 출발할 때는 잠깐 잠이 깨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뒤엉켜 자고 있습니다. 괴산을 지나 이화령터널을 지나 예천 조금 지나 휴게소에서 잠깐 쉬다가 다시 출발하여 안동시 풍산읍사무소에 10시 15분경 도착하였습니다.



읍사무소에 파킹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저만치 나무그늘 쪽에서 다가오는 반가운 얼굴이 보입니다. 발용 종친님과 태영/문 종친님입니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저만치서 웃는 얼굴로 다가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많이 보았노라고, 주회씨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뵙는 분인데 청주사시는 제학공파 영회 종친님입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읍소재지를 왔다갔다 하다가 읍사무소에 들어와보니 해장국집으로 오라는 연락이 와 있습니다. 해장국집에 가 보니 영환 대부님 가족, 항용 종친님 가족, 재원 대부님, 우회 종친님, 희준 종친님, 모두 와 계십니다. 윤만 종친님은 좀 늦게 도착하시고. 간단한 인사소개와 행사일정 소개를 하면서 식사를 해결하고 드디어 출발합니다.







이곳 안동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들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는 풍산들판을 끼고 돌면서 초입에 나타나는 소산리는 마을 앞에 김상헌 시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로 언덕 위에 삼구정과 청원루가 우뚝 솟아 있으며, 마을 위쪽 중앙에 이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명당 자리에 삼소재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우리 선안동과 후안동 김씨가 함께 세거하여 온 곳입니다.



우리의 목적지 삼소재에 당도하여 마루에 둘러 앉아 간단한 인사소개를 하고 삼소재 김종락의 5대 종손 되신다는 김석교 님의 여러 가지 말씀을 듣는데, 옆에 앉아계신 분이 자꾸 눈인사를 합니다. 지난번에 두번 안동시청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렸을 때 답변을 주신 역시 이곳 소산리 출신이신 김재교 종친님이십니다. 현재 안동시청에 근무하시면서 삼소재에 대한 자료를 집필중이라고 하시는데 얼른 결과물을 보고 싶습니다.



삼소재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는 훨씬더 고색이 창연하고 서재와 이곳 저곳 붙어있는 액자를 보니 서끼(書氣)와 묵끼(墨氣)가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안채에 들어가 종부님을 뵈오니 얼굴이 富하신게 넉넉하십니다. 5년전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에는 약간 여위어 보였는데, 오늘은 넉넉하신 모습을 보니 편안해 집니다.





우리 일행을 위하여 휴가를 하루 미루신 석교 종손님과 재교 종친님으로부터 여러가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1. 소산리는 현재 선안동 10여가구에 후안동 100여가구가 혼재하여 살고 있는데, 마을의 중심부에 삼소재가 위치하고 있어, 우리 선안동이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인지? 후안동이 먼저인지? 알 수 없음



2. 삼소재 뒷산에는 삼소재 김종락의 지곡서당 터가 남아 있는데, 조만간 복원을 해야 하는 책임을 느끼고 있음



3.



소산리의 입향조 (落南祖) 김언준 선조의 묘소를 참배하고 준비해간 답사자료 "안성 의성 성지순례" 와 볼펜등을 선물하고 석교, 재교 종친님의 아쉬워 하는 눈빛을 등 뒤로 받으며 소산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하회마을에 도착하니 주차장에서부터 빽빽한 차량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입암고택 (겸암 류운룡의 종택, 입암은 류운룡과 류성룡의 아버지 류중영의 호임) 과 충효당 (서애 류성룡의 종택), 그리고 서애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을 일별하고



안채에 들어가 보니 종손 류영하 님과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한참 듣고 일어나다가 3년전에 영모각에 전시되어 있던 서애선생모 안동김씨 분재기의 소재를 물으니 교체하여 전시하느라고 현재는 금고에 보관중이라 하십니다.



겸암과 서애는 사촌리의 송은 김광수 선조님의 외손자이고, 입암은 사위가 됩니다. 정중 종친의 말씀으로는 그후에도 사촌과 하회마을은 계속 시집가고 시집오는 사람이 많아서 하회마을에 오면 항상 대접을 잘 받았다고 합니다.







하회마을을 나와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예정되어 있던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을 제향하는 서원) 은 들리지 못하고 검제의 학봉 김성일 종택으로 향합니다. 이곳 종손이신 김시언(정확히 기억나지 않음)님은 안동양반 답게 꼿꼿하신 분인데,



처음에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학봉 김성일의 임진왜란은 없을 것이라는 보고에 대한 이야기에 언짢아 하시다가, 항용 선생님과 영환 대부님의 현재 밝혀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얼굴을 펴시더니 유물전시관인 운장각을 손수 안내하시고, 잔디와 화초로 정돈된 정원에서 사진촬영에 응하시고 문밖까지 나오셔서 배웅을 하십니다.







일정에 쫓기어 서둘러 봉정사로 향합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最古의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있는 곳입니다. 현재 보수중이라 극락전은 전면 해체되어 흔적도 없습니다. 대신 사진으로만 구경하고 문화재해설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삼소재, 하회마을, 봉정사의 옛 건물을 구경하면서 윤만 종친님과 문화재 해설사로부터 옛 건물의 구조와 용어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훨씬 이해가 빠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옛 건물의 구조와 용어, 쓰임새 등에 대한 소개를 윤만 종친님께 부탁해도 될까요?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와 우리 문중의 영원한 고향 풍산읍 회곡리에 도착합니다. 양지바른 언덕에 올라 앉은 충렬공 할아버지의 유허비각을 일별하고 죽주박씨 할머니의 설단에 오릅니다. 참배하고 나서 회곡리 마을 전경과 앞산인 案山(책상 위치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案山이라 함)을 조망하고 나서 내려옵니다.



유허비각 옆에는 야생 복숭아 나무가 두어그루 있는데, 오르는 길에는 주렁주렁하던 복숭아 열매가, 내려가면서 보니 복숭아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새 후손들의 손들이 다녀간 모양입니다. 나도 하나 따서 바지춤에 쓱쓱 비벼서 먹어 보았는데 맛이 일품입니다.



내려와서 죽주박씨 할머니 재실인 상락재에 둘러 기둥에 써놓은 글씨 (?주련)를 살펴보니 상서공 김효인 선조의 삼일포 단서암 시(금강산지구 내) , 충렬공 할아버지와 둘째 아드님이신 김흔 선조의 영호루 시입니다.



재직사에 들러 봉회 종친님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내려오면서, 충렬공 할아버지의 집터로 전해온다는 마을 앞 화전 밭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회곡리를 나와 다시 안동으로 나오다 너른 강언덕 협곡같은 곳에 모여 섰습니다. 강건너 맞은편에는 높다란 절벽이 눈에 들어오는데, 태초의 모습 그대로 인 듯 광활하고 웅장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고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습니다.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매일 오르 내렸다는 상락대가 바로 저기입니다. 모두들 사진 셔터를 눌러대기 바쁩니다.



상락대의 광활하고 웅장한 풍광을 보니, 충렬공 할아버지의 충직하고 강직하시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성품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청주에서 오신 영회 종친님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 일행은 안동시내를 거쳐 충렬공 할아버지의 유택이 있는 녹전면 죽송리로 향합니다. 시내에서 약간 지체하다 보니, 날은 어두워지고, 마음들은 급해지는지, 차량 7대가 어둑어둑해지는 시골길을 연달아 질주해 갑니다. 지나가던 촌로들이 두리번 두리번 합니다.





드디어 회곡리에 들어서니, 음수재의 우뚝 솟은 솟을대문의 웅장함이 우리를 반깁니다. 모두들 손 씻으랴, 음수재 구경하랴 부산합니다. 재직사 봉회 종친님 (정의공파) 께서 야생 미꾸라지를 잡아 정성스레 마련해 놓은 추어탕과 갖은 야채를 곁들인 저녁 식사로 주린 배를 채우고 모두들 음수재에 오릅니다.



웅장한 음수재에 모든 조명이 켜져 더욱 화려하고 장엄해 보입니다. 솟을대문 앞에서 태영/문 종친님과 담배 한 대 피우는데, 하시는 말씀이 "오늘 난생 처음 충렬공 할아버지를 뵙게 됩니다. 내일 아침에는 큰 절을 올려야겠는데... " 하면서 울먹울먹 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글썽글썽 할라고 합니다.





음수재 마루에 모두들 모여 앉아 자기소개와 장기자랑이 펼쳐집니다.



제학공파 비안공(=인갑) 14대 종손되신다는 항용 종친님의 장고 가락과 함께 하는 민요 한마당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고개를 흔들어 가며 해야 제격이라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하시는 말씀이 항렬이 먼저냐, 나이가 먼저냐 하는데 그보다는 德이 높은 사람이 먼저라는 말씀이 정말로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속으로 항렬도 높고 나이도 많은 분은 "대부님"으로, 항렬은 높은데 나이는 어리거나, 항렬은 낮은데 나이가 많은 분은 "종친님"으로, 항렬도 낮고 나이도 어린 분은 "종친" 이라고 호칭하면 어떨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쁘고 진실하라" 고 지었다는 예진이는 나의 딸 우정이를 데리고 놀아주는 모양이 아주 예뻐 보이고, 우유빛처럼 훤하게 복스러워 보입니다. 그리고 항용 선생님의 눈빛을 보니 탈렌트 이민우 닮아 보입니다.





영환 대부님의 대가족은 정말 부럽습니다. 특히 5남매의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은 정말 보기 좋습니다. 5남매의 국토 도보순례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언젠가 시간을 내서 국토순례는 엄두도 못내지만 충남 서해안에서 강원 동해안까지 도보로 순례하고자 하는 생각이 굴뚝처럼 솟아납니다.







소개와 장기자랑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순배 두순배 도는 소주잔에 약간은 흐트러진 진솔한 모습에 격의없는 흥겨운 자리가 무르익어 갑니다.





윤만 종친님의 기억력과 발표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지난 3.1절 익원공 묘역 참배때도 느꼈던 것인데, 초기 천주교 계보를 꿰고 계시고, 오늘은 회사 소개를 하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아마 회사의 기획 파트나 홍보 파트에 근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지난번부터 노래를 부르는 "꽃미남" 태경이는 순간순간 아빠를 챙기는 모습이 눈에 잡힙니다. 정말 보기 좋은 부자지간입니다.







처음 뵐때부터 느꼈던 것인데, 재원 대부님은 앉은 자세부터 꼿꼿합니다. 머리도 스포츠형으로 짧게 깍으시고, 노래하시는 율동도 절도있는 모습이 마치 국국 장성 같습니다. 여러 기록에 보면 충렬공 할아버지는 충직하고 강직하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성풍이셨다고 하는데, 꼭 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둘째 아들 주회 (내 이름하고 똑같음) 는 사춘기 끼(氣)가 농후한 것 같습니다.







발용 종친님은 팔방미인 재주꾼입니다. 컴퓨터와 카메라 다루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한마디로 "디지털 맨"입니다. 또한 이번 일정의 총무와 경리 등 살림을 도맡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안사연의 새로운 기둥이고 보물을 찾아낸 기분입니다.







정중 종친님은 이번 행사를 주관하여 행사일정 챙기랴, 식사 챙기랴, 안내하면서 설명하랴, 땀을 뻘뻘 흘리시며 우리에게 한 가지라도 더 보여주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절로 납니다.





역시 도평의공파이시고 사촌 출신이신 우회 종친님과 희준 종친님의 건강미와 보일 듯 말 듯 애쓰시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분위기도 무르익어 가고 재실 앞에 마련한 캠프파이어와 불꽃놀이을 마치고 다시 재실에 올라 앉아 주흥이 무르익어 갈 무렵, 벌써 새벽 1시가 넘어 갑니다. 저만치 앉은 아내가 자꾸 눈치를 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먼저 일어나야 했는데, 분위기에 빠지다 보니 이레 저레 지체되었습니다.





먼저 가야겠다고 인사는 아까 낮에 드린 터이고, 슬그머니 빠져 나오니 아들딸 남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차에 올라 휘영청 밝은 음수재를 뒤로 하고 죽송리를 빠져 나갑니다.



안동시내로---예천으로---문경으로---괴산으로---청주로 까만 밤길을 달려 집에 들어오니 새벽 5시가 다 되었습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나오니 모두을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나도 자리에 누웠습니다. 피곤하지만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가 눈을 떠보니 출근시간입니다.











▣ 김재원 -

▣ 김윤만 - 정말 짧은 만남과 아쉬운 작별이었습니다. 다음날 부터 주회 아우님 가족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허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삐 귀가한 사연이 좋은 사연인 듯하던데 축하받아도 될 일이 아니던가요?

▣ 김정중 - 대부님! 늦은 밤까지 함께한 시간 정말 행복 했습니다. 사진 부쳐 드렸는데 받으셨는지요?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남은 뒤 일정도 잘 보내셨겠지요.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영상 다큐멘타리를 보는 기분 입니다.

▣ 김태서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솔내 영환 - 글 솜씨도 어느 수필가 부럽지 않습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그날 밤 가시는 걸 못 봐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 김재익 -

▣ 김주회 - 정중 종친님! 보내주신 사진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종친님의 정성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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