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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충신과 역신과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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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8-17 08:39 조회1,6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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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역신과 혁명가





태서 종친님! 좋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충신과 역신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이 같은 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충신은 그 왕을 따르는 신하를 말하고, 역신은 다른 왕을 따르는 신하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충신으로 떠받드는 여말의 포은 정몽주 선생도 이성계 일파와 뜻을 같이하는 개혁 혁명세력이었죠. 그러다가 정도전, 조준등 이성계 일파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리면서 돌아서고 그에따라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고, 따라서 여조에는 충신이고, 이성계 일파에게는 역신이 되죠. 나중에 조선조 말 송시열 일파에 의하여 우리 역사의 최대의 충신으로 추앙을 받게 되지만...





사육신의 대표이신 성삼문 선생도 세조의 계유정란에 공이 있다 하여 공신에 책봉되었습니다. 물론 후세에 만들어낸 말에 의하면 성삼문 선생은 세조대왕께서 아끼어 끝까지 끌어 안으려고 공신록에 끼워 넣었다는 억지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도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기 보다는 세조와 함께 단종을 몰아내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돌아선 것은 아닐까요?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역적 역신은 효종시대 송시열 일파에 의하여 잘못 만들어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일례로 삼봉 정도전은 태종이후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는 조선조 최대의 역신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요? 정도전 선생은 이성계에게는 최대 충신이고, 이방원에게는 최대 역신이겠죠



교산 허균 선생은 충신인가요? 역신인가요? 아니면 혁명가인가요? 광해군에게는 충신일테고, 이이첨등 반대파에게는 역적일테고, 자신에게는 혁명가이겠죠.



조선시대 예학의 거두 우암 송시열 선생도 효종에게는 충신일테고, 나중에는 역적으로 몰려 귀양길에 사약을 받고 죽게 되죠. 그도 역시 역신이 됩니다.







따라서 문정공 김질 선조는 단종에게는 역신일테고, 세조에게는 최대의 충신입니다. 변절자나 밀고자와는 의미가 다르다고 보아야 합니다. 단순한 밀고자라면 세조, 예종 이후 우의정과 원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개혁의지와 파워가 없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즉 김질 선조는 단종 세력과의 파워게임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송시열 시대의 예학 시대에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하여 남자가 한번 말한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했죠. 앞뒤 상황 안 보고 미련하게...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이라 하더라도 앞뒤 상황을 보아 내가 한 말이 틀렸다면 취소해야 하고, 내 생각이 잘못 되었다고 판단되면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조선조 최대의 역신으로 기록되고 있는 김자점 선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운 인조반정의 주역이었죠. 즉 광해군에게는 역신이고 인조에게는 최대의 충신입니다. 김자점 선조를 조선조 최대의 역신으로 만든 장본인인 송시열 일파도 인조의 탄압을 받고 자란 효종에게는 충신이지만 역신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게 됩니다.









어젠가 그젠가 "지나가는 사람"이 헛소리하는데 열 받아서 주섬주섬 늘어 놓아 보았습니다. 잘못된 곳이 있으면 지적하여 주시고, 잘못된 곳이 너무 많으면 내일 날자로 삭제하겠습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왠걸요. 사실 이 문제는 논문감이지 않습니까? 제 견해로 자점 선조는 친청과 반청의 갈등 속에서 반청 군주인 인조. 효종을 위시한 송시열. 김상헌 등 반청파에 의한 희생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태서 - 좋은 말씁 감사드립니다.

▣ 솔내영환 - 동감합니다.

▣ 김항용 -

▣ 김은회 -

▣ 김태완 - 역사는 힘있는 자에 의해 왜곡돼기 마련입니다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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