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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충신과 역신과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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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08-17 17:34 조회1,9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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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의 평가에 대해 알아보자.



사육신이 재평가된 시기는 숙종때였다. 이시기의 상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양난 후 사회적 침체 분위기 해소와 국정의 일대 쇄신을 위하여 단행된 시책들 중에



서 정신, 사상적으로 절의와 명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되어 사육신에 대한 국가적 표창이 있



었는데, 이것이 곧 세조의 행동을 격하시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숙종 시기 단종과 그의 왕비의 묘호와 능호를 제정하고 복위사실을 종묘에 고하는 중요 계기가 되었던 숙



종 24년 9월의 전현감 신규의 상소를 살펴보자.



그는 당시의 현실정세 속에서 단종의 양보는 불가피해었으며 선양이 중국의 사례에 못지 않는 훌륭한 일



이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사육신들의 음모가 결국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지적한다.



그와 비슷한 의견으로 다음의 것이 있다.



세조의 전제권 강화에 불만을 품은 일부 유신들은 마침내 세조를 왕좌에서 몰아내고 폐왕 단종을 복위시



켜 관료지배 체제를 구현시키려 하였다. 물론 단종 복위 공작의 표면적인 명분에는 세조의 불의의 찬탈



에 대한 저항이라는 대의가 내세워지고 있었다. (한영우 <조선전기사회경제연?gt; -을유문화사)



사육신들의 행위와 목적은, 직접적으로 세조의 전제권 강화에 대한 불만이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방



안으로서 상왕 단종을 복위시켜 관료지배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평가다.



더욱이 사육신의 행동은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유교적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또



한 그것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으면서도 현왕인 세조를 살해함으로써 실현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왕을 폐위시켜 유폐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살해하려고 계획했다는 사실은 그



들의 양심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점필재 김종직이 소위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여 은유적으로 기록했다고 하는 <조의 제문>도 다



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즉 <조의 제문>은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이 스승의 글을 자신의 정치



적 성향과 생각에 부합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발단이 되어 반대파들에 의해 확대해석, 이용되어 기



정사실화된 채 연산군에 전달외어 소위 무오사화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 출처:정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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