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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관정공파(2) 역대 인물(김희수, 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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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2-08-22 18:38 조회1,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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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金希壽){1}



1475(성종 6)∼1527(중종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몽정(夢禎),



호는 유연재(悠然齋). 할아버지는 감사 자행(自行)이며, 아버지는 숙연(叔演)이다.



1507년(중종 2) 참봉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 검열 권벌(權#벌02), 봉교



이희증(李希曾)·김영(金瑛), 대교 윤인경(尹仁鏡) 등과 함께 무오사화에 대해 논계(論啓)하고



김종직(金宗直)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청하였으나 허락 받지 못하였다.



또, 왕은 천륜에 따라 덕치정치를 행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측근의 신하들이 필요하고



간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언하기도 하였다.



그뒤 1509년에 정자·박사가 되고, 이어 지평·검상이 되었다.



1514년 장령을 지냈으며, 1517년 집의·참찬관 등을 거쳐 1520년 우부승지, 이듬해 좌부승지가



되었으며, 1524년 도승지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과 경상도감사로 나갔다.



그때 그곳의 사송(詞訟)이 적체되었다 하여 중앙에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1527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글씨에 뛰어났는데 특히 해서(楷書)에 능하였다.



동래의 낙안서원(樂安書院)에 제향되었다.



글씨로는 〈계주문 戒酒文〉·〈영상김수동비 領相金壽童碑〉·〈영상성희안비 領相成希顔碑〉등이 있다.







김노 [金魯]



자 경삼(景參). 호 동고(東皐). 희수(希壽)의 아들. 조선초기의 문인, 서도가.



20세 전에 사마시를 거쳐 1525년(중종 2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정자(副正字)에 등용되고,



검열(檢閱) ·정자(正字)를 거쳐 1530년 저작(著作)으로 김안로(金安老)의 석방을 논핵하였는데,



김안로의 재집권으로 문의(文義)에 유배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다시 기용되어



직제학(直提學)에 이르고, 중추부첨지사를 지내다가 죽었다.



글씨가 뛰어나 조정의 전책(典冊)과 고관들의 비갈(碑碣)을 많이 썼다. 작품으로 글씨에



《송질묘비문》 등이 있다.





**** 또 다른 친필 비문 발견 보고: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석실 마을 안동김씨(후안동)세장지



내에 있는 김번 묘비가 김노 선조님의 친필임을 남양주금석문대관에서 확인 했습니다.



김번은 후안동김씨 문정공 청음 김상헌의 증조부 되시는 분으로 이분의 묘가 조선 8대 명당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여러번 답사하여 보았습니다. 이 묘가 명당이어서 그 후손(일명



장동김씨)이 금관자 3말(즉 고관대작이 많이 나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언제 한번 같이 답사할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 김태서 -

▣ 김영윤 -

▣ 김윤만 - 언제나 배려해 주시는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 김재원 -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이젠 탁본 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 김주회 - 김번 묘비 탁본을 입수하면 좋겠습니다. 김희수 공 설명 네째줄에 있는 김영과 김번은 후안동김씨로 형제인가요? 그렇다면 김로 공께서 아버지와 절친하였던 김영의 동생 김번의 묘비를 書하신 듯 하네요.

▣ 김영환 - 주회씨 , 맞습니다. 김영,김번은 모두 김계권의 아들입니다. 김계권의 동생(형)은 김계행인데 이분이 보백당으로 안동에 세거하셨고 , 김영은 삼당(호)공인바 이분도 안동에 세거하셨습니다., 장동김씨는 김번의 후손입니다.

▣ 郡/김태영 -

▣ 郡/김태영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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