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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공 김 수 선조님 친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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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2-08-23 06:30 조회1,3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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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공 김 수 선조님 친필(서찰) 소개>

1. 출전 : <槿墨(仁)>(성균관대 간. 1995. 87p)

2. 크기 : 세로-26cm,  가로-37cm

3. 원본 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4. 조사일 : 200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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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金 ) 1537(중종32)∼1615(광해군7).

조선 선조때의 명신. 字는 자앙(子昻), 호는 몽촌(夢村), 첨지중추부사 김로(金魯)의 손자이며, 사재감정(司宰監正) 홍도(弘度)의 아들. 이황(李滉)의 문인. 생원으로 있다가 1573년(선조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이듬해 홍문관 정자 · 저작을 역임하고, 다시 예문관 봉교를 거쳐 사헌부 감찰로 승진하였다. 이어 정언 · 수찬 · 교검 · 지평 · 직강 등을 역임하고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을 때 선조의 명으로「십구사략(十九史略)」을 개수하고 주(注)를 붙였다. 그 후 직제학(直提學)·승지(丞旨)를 거쳐 1587년 평안도와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부제학(副提學)·대사헌, 병조·형조의 판서를 역임, 1591년 다시 경상도 관찰사, 1592년 11월 13일에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우참찬(右參贊)·형조와 호조판서를 지내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고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1613년(광해군5) 손자 비(秘)가 적신들의 무고로 옥사(獄死)할 때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삭직(削職)당했다.


일찍이 호조 판서로서 임진왜란 때 치적을 올려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1591년 홍여순(洪汝淳)이 간계를 꾸며 사류(士流)를 몰아내려고 그를 크게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그의 죽음을 듣고 나라의 충신을 잃었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시호는 소의(昭懿). 저서로 몽촌집(夢村集)이 있다.

 2000년 5월 18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도당근린 공원내에 <부천 향토 역사관>이 개관되었는데 이곳에 공의 인물 내역과 필적이 전시되고 있다




▣ 김주회 - 그동안 선조님 필적을 흑백으로만 보아 왔는데, 오늘은 칼라 필적을, 1점도 아니고 3점이나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오늘은 밤새도록 [선조의 향기] 1차시안 편집작업을 할까 합니다.
▣ 김재원 -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郡/김태영 -
▣ 김영윤 - 감사합니다 잘보았읍니다
▣ 태영/문 -
▣ 김정중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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