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안동김씨 분관성씨 ⑧ (상락,철원, 영암김씨)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1-08-16 17:59 조회2,635회 댓글0건본문
구안동김씨 분관성씨 ⑧ (상락,철원, 영암김씨)
조선 세조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金 (익원공파)을 시조로 한다는 상락김씨는 족보나 인터넷상에도 보이지 않으나 "김씨의뿌리"책자에만 기록이 보이고 있고, 金應河(부사공파) 장군을 시조로 한다는 철원김씨는 족보상에는 기록이 없으나 위 책자와 인터넷상에 기록이 보이는 관계로 참고로 게재해 보았습니다.
▣ 상락김씨
시조 김질(金 )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인 김은열의 15세손이다.
김질은 조선조 세종때 음사(蔭仕)로 부사를 지내다가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에 뽑혔으며, 성삼문, 최항, 신숙주 등과 함께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위해 거사를 꾀했다. 그러나 여러번 기회를 놓치자 모의발각이 두려워 스스로 자수함으로써 저 유명한 사육신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김질은 모반을 미리 알린 공으로 판군기감사를 거쳐 좌익공신3등으로 평안도관찰사, 공조판서, 우참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세조14년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그는 상락군에 봉해졌는데, 그뒤 후손들이 상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나왔다. 상락(上洛)은 경상북도 상주의 옛이름이다.
⊙ 상락김씨가 생겨나기까지의 계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978)
② (4남) 김은열 (金殷說) (?-1028, 현종19)
③ (2남) 김숙승 (金叔承)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2남) 김효인 (金孝印) (1192 ?-1253)
⑨ 김방경 (金方慶) (1212-1300) ★구안동김씨 중시조
⑩ (3남) 김 순 (金恂) 1258-1321(고종45-충숙왕8)
⑪ (4남) 김영후 (金永煦) 1292-1361(충렬왕18-공민왕10)
⑫ 김 천 (金 )
⑬ (4남) 김사형 (金士衡) 1333-1407(고려충혜왕2-조선태종7) ★익원공파 파조
⑭ 김 승 (金陞)
⑮ 김종숙 (金宗叔)
16) 김 질 (金 ) 1422-1478(세종4-성종9) ★상락김씨 시조
▣ 철원김씨
시조 김응하(金應河)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19세손이다.
김응하는 조선조 광해군 10년 명나라의 요청이 있자 건주위를 치기 위해 출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는 부차령 싸움에서 고군분투하고 전사했는데, 뒤에 명나라 신종에 의해 요동백에 봉해졌다.
그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갈라져 나와 그를 시조로, 철원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나왔다.
⊙ 철원김씨가 생겨나기까지의 세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978
② (4남) 김은열 (金殷說) ?-1028 (현종19)
③ (2남) 김숙승 (金叔承)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2남) 김효인 (金孝印) (1192 ?-1253)
⑨ 김방경 (金方慶) (1212-1300) ★구안동김씨 중시조
⑩ 김 선 (金 )
⑪ (2남) 김승용 (金承用) ?-1329 (충숙왕16)
⑫ (2남) 김 구 (金玖)
⑬ (2남) 김천순 (金天順) ★부사공파 파조
⑭ 김 담 (金談)
⑮ 김대래 (金大來) 1564-1608 (명종19-선조1)
16) 김 진 (金鎭)
17) 김인상 (金麟祥)
18) 김 인 (金 )
19) 김지사 (金地四)
20) 김응하 (金應河) 1580-1619 (선조13-광해군11) ★철원김씨 시조
⊙ 철원군청 홈페이지 (http://www.cheolwon.kangwon.kr/)
김응하(金鷹河) 장군
김응하는 1580년 철원군 어운면 갈원동 하갈리에서 안동 김씨인 아버지 김지사(金地四) 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나, 14세에 전염병으로 양친을 잃고 동생 응해(鷹海)와 함께 자라면서 사냥을 즐겨 맨손과 단검으로 범과 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25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에서 변방을 지켰고 31세 때 선천 군수를 하면서 청렴하게 백성을 다스렸다.
1616년 만주에서 누루하치가 후금국을 세우고 명나라를 침범하자 명나라의 원군으로 나가 용감히 싸우던 중 뒤에 숨어 있던 적군의 기습으로 1619년 40세로 전사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요동백(遼東伯)의 벼슬을 내리고 조선에서는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갈리어 철원김씨의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 인터넷 검색자료
◇ 철원김씨(鐵原金氏)
시조 김응하(金應河)는 경순왕의 후예로 안동김씨 중시조 김방경(金方慶)의 12세손이다. 그는 철원 출신으로 명나라의 신종에 의해 요동백에 봉해진 훌륭한 장수로 그의 사적이 《안동김씨보(安東金氏譜)》에 보인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분적, 선대의 세거지였던 철원을 본관으로 삼은 것 같다.
1930년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후손들이 강원도 정선군 북면 숙암리에 25호, 평북 벽동군 벽동면 하서리에 15호가 살고 있었다.
◇ 조선-광해군 당시의 명장 충무공 "김응하金應河(1580~1619)장군"
- 선조13년(1580) 철원군 어운면 하갈리애서 출생(철원김씨의 시조).
-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안동김씨 증시조 김방경(金方慶)의 12세손이다.
- 광해군10년(1618) 건주위의 반란으로 명나라에 지원군으로 들어가 종군, 부하3000명으로 적군6만과
대치하여 싸우다가 적군에 포위되어 수십대의 화살과 창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매 오랑캐들은 장군의
용맹과 충절에 감탄하여 버드나무 밑에 장사하고 "유하장군"이라 칭하였다.
- 1620년 명의 신종황제는 요동백을 봉하고 우리 조정에서도 충무공의 시호와 영의정을 추증.
- 현종7년(1666) 철원읍 화지리에 사당을 지어 이듬해 포충사褒忠祠라 칭함.
- 현재 동송읍 양지리에 장군의 의관만으로 조성한 묘역이 있으며, 철원읍 화지리에 장군의 묘정비(포충사)가 있다.
▣ 영암김씨
익원공파보에 실려있는 김씨분관록에 영암김씨의 시조 金淑(김숙)은 士衡(사형)의 현손 禮童(예동)의 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씨의뿌리(1998, 범우사) 책자에는 金淑이라는 사람은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 전기시대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어 너무 차이가 나는데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참고로 게재하여 봅니다.
125. 영암김씨
시조 김숙은 신라 경순왕 후손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으나 중간 계대를 기록하지 않아 어느 왕자의 후손인지 모른다.
김숙은 고려 명종때 호남안찰사로 있다가 영암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한 공으로 영암군에 봉해졌다. 그뒤 후손들이 영암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나왔다. 영암은 전남 영암군을 가리키는 것이다.
김숙의 아들 金世貞(김세정)은 고려조에서 평장사를 역임했고, 손자 金隆(김융)은 지후를 지냈다.
김숙의 10세손인 金三宅(김삼택)은 조선중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고, 그의 동생 金三達(김삼달)은 역시 중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박사를 지냈다. 金希鍊(김희련)은 호조좌랑, 교리, 평안병마평사를 지냈다.
金應權(김응권)은 명종때 문과에 급제한 뒤 군수를 지냈고, 金義善(김의선)은 고종때 사간원 정언을 역임했다.
조선 세조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金 (익원공파)을 시조로 한다는 상락김씨는 족보나 인터넷상에도 보이지 않으나 "김씨의뿌리"책자에만 기록이 보이고 있고, 金應河(부사공파) 장군을 시조로 한다는 철원김씨는 족보상에는 기록이 없으나 위 책자와 인터넷상에 기록이 보이는 관계로 참고로 게재해 보았습니다.
▣ 상락김씨
시조 김질(金 )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인 김은열의 15세손이다.
김질은 조선조 세종때 음사(蔭仕)로 부사를 지내다가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에 뽑혔으며, 성삼문, 최항, 신숙주 등과 함께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위해 거사를 꾀했다. 그러나 여러번 기회를 놓치자 모의발각이 두려워 스스로 자수함으로써 저 유명한 사육신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김질은 모반을 미리 알린 공으로 판군기감사를 거쳐 좌익공신3등으로 평안도관찰사, 공조판서, 우참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세조14년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그는 상락군에 봉해졌는데, 그뒤 후손들이 상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나왔다. 상락(上洛)은 경상북도 상주의 옛이름이다.
⊙ 상락김씨가 생겨나기까지의 계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978)
② (4남) 김은열 (金殷說) (?-1028, 현종19)
③ (2남) 김숙승 (金叔承)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2남) 김효인 (金孝印) (1192 ?-1253)
⑨ 김방경 (金方慶) (1212-1300) ★구안동김씨 중시조
⑩ (3남) 김 순 (金恂) 1258-1321(고종45-충숙왕8)
⑪ (4남) 김영후 (金永煦) 1292-1361(충렬왕18-공민왕10)
⑫ 김 천 (金 )
⑬ (4남) 김사형 (金士衡) 1333-1407(고려충혜왕2-조선태종7) ★익원공파 파조
⑭ 김 승 (金陞)
⑮ 김종숙 (金宗叔)
16) 김 질 (金 ) 1422-1478(세종4-성종9) ★상락김씨 시조
▣ 철원김씨
시조 김응하(金應河)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19세손이다.
김응하는 조선조 광해군 10년 명나라의 요청이 있자 건주위를 치기 위해 출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는 부차령 싸움에서 고군분투하고 전사했는데, 뒤에 명나라 신종에 의해 요동백에 봉해졌다.
그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갈라져 나와 그를 시조로, 철원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나왔다.
⊙ 철원김씨가 생겨나기까지의 세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978
② (4남) 김은열 (金殷說) ?-1028 (현종19)
③ (2남) 김숙승 (金叔承)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2남) 김효인 (金孝印) (1192 ?-1253)
⑨ 김방경 (金方慶) (1212-1300) ★구안동김씨 중시조
⑩ 김 선 (金 )
⑪ (2남) 김승용 (金承用) ?-1329 (충숙왕16)
⑫ (2남) 김 구 (金玖)
⑬ (2남) 김천순 (金天順) ★부사공파 파조
⑭ 김 담 (金談)
⑮ 김대래 (金大來) 1564-1608 (명종19-선조1)
16) 김 진 (金鎭)
17) 김인상 (金麟祥)
18) 김 인 (金 )
19) 김지사 (金地四)
20) 김응하 (金應河) 1580-1619 (선조13-광해군11) ★철원김씨 시조
⊙ 철원군청 홈페이지 (http://www.cheolwon.kangwon.kr/)
김응하(金鷹河) 장군
김응하는 1580년 철원군 어운면 갈원동 하갈리에서 안동 김씨인 아버지 김지사(金地四) 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나, 14세에 전염병으로 양친을 잃고 동생 응해(鷹海)와 함께 자라면서 사냥을 즐겨 맨손과 단검으로 범과 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25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에서 변방을 지켰고 31세 때 선천 군수를 하면서 청렴하게 백성을 다스렸다.
1616년 만주에서 누루하치가 후금국을 세우고 명나라를 침범하자 명나라의 원군으로 나가 용감히 싸우던 중 뒤에 숨어 있던 적군의 기습으로 1619년 40세로 전사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요동백(遼東伯)의 벼슬을 내리고 조선에서는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갈리어 철원김씨의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 인터넷 검색자료
◇ 철원김씨(鐵原金氏)
시조 김응하(金應河)는 경순왕의 후예로 안동김씨 중시조 김방경(金方慶)의 12세손이다. 그는 철원 출신으로 명나라의 신종에 의해 요동백에 봉해진 훌륭한 장수로 그의 사적이 《안동김씨보(安東金氏譜)》에 보인다. 후손들이 안동김씨에서 분적, 선대의 세거지였던 철원을 본관으로 삼은 것 같다.
1930년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후손들이 강원도 정선군 북면 숙암리에 25호, 평북 벽동군 벽동면 하서리에 15호가 살고 있었다.
◇ 조선-광해군 당시의 명장 충무공 "김응하金應河(1580~1619)장군"
- 선조13년(1580) 철원군 어운면 하갈리애서 출생(철원김씨의 시조).
-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안동김씨 증시조 김방경(金方慶)의 12세손이다.
- 광해군10년(1618) 건주위의 반란으로 명나라에 지원군으로 들어가 종군, 부하3000명으로 적군6만과
대치하여 싸우다가 적군에 포위되어 수십대의 화살과 창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매 오랑캐들은 장군의
용맹과 충절에 감탄하여 버드나무 밑에 장사하고 "유하장군"이라 칭하였다.
- 1620년 명의 신종황제는 요동백을 봉하고 우리 조정에서도 충무공의 시호와 영의정을 추증.
- 현종7년(1666) 철원읍 화지리에 사당을 지어 이듬해 포충사褒忠祠라 칭함.
- 현재 동송읍 양지리에 장군의 의관만으로 조성한 묘역이 있으며, 철원읍 화지리에 장군의 묘정비(포충사)가 있다.
▣ 영암김씨
익원공파보에 실려있는 김씨분관록에 영암김씨의 시조 金淑(김숙)은 士衡(사형)의 현손 禮童(예동)의 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씨의뿌리(1998, 범우사) 책자에는 金淑이라는 사람은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 전기시대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어 너무 차이가 나는데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참고로 게재하여 봅니다.
125. 영암김씨
시조 김숙은 신라 경순왕 후손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으나 중간 계대를 기록하지 않아 어느 왕자의 후손인지 모른다.
김숙은 고려 명종때 호남안찰사로 있다가 영암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한 공으로 영암군에 봉해졌다. 그뒤 후손들이 영암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나왔다. 영암은 전남 영암군을 가리키는 것이다.
김숙의 아들 金世貞(김세정)은 고려조에서 평장사를 역임했고, 손자 金隆(김융)은 지후를 지냈다.
김숙의 10세손인 金三宅(김삼택)은 조선중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고, 그의 동생 金三達(김삼달)은 역시 중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박사를 지냈다. 金希鍊(김희련)은 호조좌랑, 교리, 평안병마평사를 지냈다.
金應權(김응권)은 명종때 문과에 급제한 뒤 군수를 지냈고, 金義善(김의선)은 고종때 사간원 정언을 역임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