栢谷 金得臣의 詩文學硏究(박사학위 논문)및 석사논문. 기타논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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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1-08-22 01:58 조회2,394회 댓글0건본문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신 栢谷 金得臣 선조의 논문을 소개하니
관심 있으신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백곡 김득신의 시문학 연구. 세종대 이재복, 1999. 박사학위 논문
2)백곡 김득신의 시세계 연구. 고려대. 이미정. 1992. 석사학위 논문
3)백곡 김득신 연구. 청주대. 신범식 . 1997. 석사학위 논문 4
)백곡 김득신의 시론.[이조후기의 한문학의 재조명] 창작과 비평사. 정대림. 1983
5)백곡 김득신의 인간과 문학 상.[연민 이가원 선생 기념 논총, 정음사.1987, p415-434
6)백곡 김득신으 인간과 문학 하.[충격과 조화. 동방문학비교연구회편. 1991년.12월.
7)백곡 김득신의 여문 연구. 이영미.[어문연구]21집 1991.
8)백곡 김득신의 가전 [환백장군전,청풍선생전.] 해제및 번역 소개. 한성어문학6집 ,김창룡.1987
9)김득신의 구안론. 김창룡. [조선후기의 시화사연구] 국학자료원.P62-67
10)종남총지 연구. 허경진. [연세어문학]11집.1978.12
백곡 김득신선조의 소개는 본 홈페지 역사적 주요인물 69번을 참조하샙시요.
아래의 글은 디지철한국에 소개된 백곡선생의 소개 입니다.
백곡 김득신(金得臣){1} 1604(선조 37)∼1684(숙종 10).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치(緻)이며, 어머니는 사천목씨(泗川睦氏)로 첨(詹)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김씨이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히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당시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부할 때에 옛 선현과 문인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많이 읽는 데 치력하였는데, 그 중 〈백이전 伯夷傳〉은 억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하였다. 저술이 병자호란 때 많이 타 없어졌으나, 문집인 《백곡집》에는 많은 글들이 전하고 있다. 그 중 시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문보다는 시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언·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용호 龍湖〉·〈구정 龜亭〉·〈전가 田家〉 등은 어촌이나 산촌과 농가의 정경을 그림같이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시를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시를 보는 안목도 높아, 《종남총지 終南叢志》 같은 시화도 남겼다. 이에는 어무적(魚無迹)·이행(李荇)·정사룡(鄭士龍)·정철(鄭澈)·권필(權#필25)같은 앞 세대 유명시인 등과 남용익(南龍翼)·김석주(金錫胄)·홍만종(洪萬宗)같은 당대 문사들의 시를 뽑아, 거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비평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 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 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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