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祖의 墨香을 찾아서] 12(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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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9-11 08:50 조회1,562회 댓글0건본문
[先祖의 墨香을 찾아서] 12(김주)
12. 문단공 寓菴 金澍 1512(중종 7)∼1563(명종 18)
디지털한국학 홈
김주(金澍)
1512(중종 7)∼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菴). 안원군(安原君) 공량(公亮)의 아들이다.
1531년에 진사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및 개성유수·대사헌을 지냈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 제학으로 있을 때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 23)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초서를 잘 썼다.
저서로는 《우암유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兪炳勇〉
-槿墨(仁) (오세창, 1995, 성균관대학교박물관, 解題 任昌淳)(서간-초서)
-우암집에 유묵 1점
대동금석서
p31 김공석비(김공석묘갈), 재여주, 김주 문, 송인 서
대동금석속목
p51 김공망비(김공망묘비), 재양주, 이암 송인 문, 김이 서, 김무 전
한국서예사 (金基昇, 1975, 정음사)
金澍의 草書
김주(1512-1563) 는 본관이 안동, 安原君 公亮의 아들로 자는 應霖. 호가 寓庵이다.
중종26년(1531)에 진사가 되고, 1539년의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湖堂에 올랐다.
전라, 황해감사를 역임하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명종18년(1563)에 [종계변무]사건으로 명국에 봉사하였으나 연경 객관에서 52세로 병사하였다.
선조23년(1590)에 광국훈에 책록, 花山君에 봉해졌다.
저서에 우암집이 있다.
[도서해제]와 [안동김씨족보]에 의하면 "文章과 言議에 뛰어났었고, 퇴계이황, 하서김인후, 금호임형수 등과 친하였으며 초서를 잘 썼다."
<김 주 선조님 친필 소개>
1, 출전 : <槿墨(仁)>(성균관대 간. 1995. 87P).
2. 원본 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3. 크기 : 가로-30cm, 세로-34,5cm
4. 자료 조사일 : 2002. 8. 13
87. 김주 중종7년-명종18년 1512-1563, 안동인, 자 응림, 호 우암, 서간 묵 초서 (30*34.5cm)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김윤만 -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 김정중 -
▣ 김항용 -
▣ 郡/김태영 -
▣ 김영윤 - 감사합니다
12. 문단공 寓菴 金澍 1512(중종 7)∼1563(명종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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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澍)
1512(중종 7)∼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菴). 안원군(安原君) 공량(公亮)의 아들이다.
1531년에 진사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및 개성유수·대사헌을 지냈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 제학으로 있을 때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 23)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초서를 잘 썼다.
저서로는 《우암유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兪炳勇〉
-槿墨(仁) (오세창, 1995, 성균관대학교박물관, 解題 任昌淳)(서간-초서)
-우암집에 유묵 1점
대동금석서
p31 김공석비(김공석묘갈), 재여주, 김주 문, 송인 서
대동금석속목
p51 김공망비(김공망묘비), 재양주, 이암 송인 문, 김이 서, 김무 전
한국서예사 (金基昇, 1975, 정음사)
金澍의 草書
김주(1512-1563) 는 본관이 안동, 安原君 公亮의 아들로 자는 應霖. 호가 寓庵이다.
중종26년(1531)에 진사가 되고, 1539년의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湖堂에 올랐다.
전라, 황해감사를 역임하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명종18년(1563)에 [종계변무]사건으로 명국에 봉사하였으나 연경 객관에서 52세로 병사하였다.
선조23년(1590)에 광국훈에 책록, 花山君에 봉해졌다.
저서에 우암집이 있다.
[도서해제]와 [안동김씨족보]에 의하면 "文章과 言議에 뛰어났었고, 퇴계이황, 하서김인후, 금호임형수 등과 친하였으며 초서를 잘 썼다."
<김 주 선조님 친필 소개>
1, 출전 : <槿墨(仁)>(성균관대 간. 1995. 87P).
2. 원본 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3. 크기 : 가로-30cm, 세로-34,5cm
4. 자료 조사일 : 2002. 8. 13
87. 김주 중종7년-명종18년 1512-1563, 안동인, 자 응림, 호 우암, 서간 묵 초서 (30*34.5cm)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김윤만 -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 김정중 -
▣ 김항용 -
▣ 郡/김태영 -
▣ 김영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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