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곡동 할머니(충렬공 배위) 설단 고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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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2-09-12 19:58 조회1,655회 댓글0건본문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설단 고유문(冷平國大夫人竹州朴氏設壇告由文)
생각건대 우리 先祖(선조) 忠烈(충렬)府君(부군)께옵서는
세상드문 英材(영재)로서 開國(개국)하신 元勳(원훈)일세.
資質(자질)은 智勇(지용)있고 氣槪(기개)는 山川(산천)을 움직였네.
後孫(후손)에게 蔭德(음덕)내려 代代(대대)로 높아졌네.
수많은 後孫(후손)들은 八方(팔방)으로 펴졌는데
오직 그의 현부인(賢夫人)은 竹山(죽산)에서 名門(명문)일세.
冷平(냉평)으로 받은 誥命(고명) 夫人(부인)의 尊稱(존칭)이니
거룩하신 그 淑德(숙덕)은 君子(군자)의 配匹(배필)이요
,
밝고 맑은 그 威儀(위의)를 이어받아 터전되니 가장 미뤄 감동되네.
幽宅(유택)은 詳考(상고)할 길 없어 花林(화림)모두 변했는데
累百年(누백년)간 恨歎(한탄)하여
謙(겸), 梅(매) 두어른과 荷潭(하담), 訥菴(눌암)할아버님은
혹은 封標(봉표)修築(수축)하고 혹은 祭享(제향)드렸으나
어떤사람 作亂(작란)으로 바로 碑石(비석) 잃게되니
子孫(자손)들의 痛嘆(통탄)함이 어찌 極(극)에 있을 손가.
이제 檜谷(회곡) 돌아보니 우리 先祖(선조) 胎址(태지)일세.
착하신 夫人(부인)께서 이에서 늙으시니
田園(전원)에 물러나와 그 家庭(가정)을 즐기심에
需浦(수포)에서 供饋(공궤)받고 洛臺(낙대)에서 遊宴(유연)하니
江山(강산)도 생각나고 草木(초목)도 香氣(향기)나네.
世態(세태)많이 변하여서 그것마저 없어지고
平泉花石(평천화석) 그것만이 보배로 지켜왔네.
京鄕人事(경향인사)計劃(계획)으로 兩湖(양호)에다 通文(통문)해서
그의 터에 設壇(설단)해서 追慕(추모)하게 되었도다.
碑(비)에는 史蹟(사적)쓰고 壇(단)에는 祭祀(제사)모셔
百代(백대) 길이 氣通(기통)하고 八方(팔방)소리 같이하니
壽岑(수잠)은 가까옵고 花山(화산)서로 바라보니
하물며 陵洞(능동)산을 한 脈(맥)에서 갈라진곳,
儒林(유림)의 計劃(계획)으로 占(점)을 쳐서 詳考(상고)하여
아름다운 三尺碑石(삼척비석) 輝煌(휘황)하게 세우는데
이에 吉辰(길신) 擇(택)하오니 삼월 淸明(청명)시절이라.
봄비 처음 적셔주고 밤이슬은 방울지니
百代(백대)千年(천년) 길이 두고 제사드릴 땅이로다.
祭酒(제주)와 丹香(단향)으로 後孫(후손)들이 모여드니
洛東江(낙동강)물 흘러가고 騫芝山(건지산)은 푸르도다.
焚香(분향)煙氣(연기) 서리는데 先靈(선령)께서 降臨(강림)하사
行禮(행례)함이 嚴肅(엄숙)하니 福(복)을 많이 받을거요,
복많이 받음으로 尊靈(존령)또한 昭明(소명)하리.
이제부터 永遠(영원)토록 依支(의지)함이 있으리니
祭壇(제단)앞에 세운 碑石(비석) 於千年間(어천년간) 가오리다.
후손 통정대부 부호군 英洛(영락) 지음
서기 2002년 9월 22세손 榮煥 옮김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충렬공 묘소와 죽주박씨 할머니 묘소가 달리 조성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본 고유문 지은이 영락이란 삼소재 종락 선조를 말하는 것인가요?
▣ 김재이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잘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충렬공 묘소는 實墓, 할머니는 단소입니다. 할머님 묘소는 실전하여 아직도 찾지 못해 충렬공 유허지 근처에 설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본 홈 시조소개란 맨 아래에 에 올렸습니다.
▣ 金在益 -
▣ 김주회 -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입니다. 1321년에 민지 찬 문영공(김순) 묘지명에는 陰平郡夫人으로 봉해졌다고 되어 있는데, 冷平國大夫人은 언제 봉해진 것인가요?
▣ 태영/문 -
생각건대 우리 先祖(선조) 忠烈(충렬)府君(부군)께옵서는
세상드문 英材(영재)로서 開國(개국)하신 元勳(원훈)일세.
資質(자질)은 智勇(지용)있고 氣槪(기개)는 山川(산천)을 움직였네.
後孫(후손)에게 蔭德(음덕)내려 代代(대대)로 높아졌네.
수많은 後孫(후손)들은 八方(팔방)으로 펴졌는데
오직 그의 현부인(賢夫人)은 竹山(죽산)에서 名門(명문)일세.
冷平(냉평)으로 받은 誥命(고명) 夫人(부인)의 尊稱(존칭)이니
거룩하신 그 淑德(숙덕)은 君子(군자)의 配匹(배필)이요
,
밝고 맑은 그 威儀(위의)를 이어받아 터전되니 가장 미뤄 감동되네.
幽宅(유택)은 詳考(상고)할 길 없어 花林(화림)모두 변했는데
累百年(누백년)간 恨歎(한탄)하여
謙(겸), 梅(매) 두어른과 荷潭(하담), 訥菴(눌암)할아버님은
혹은 封標(봉표)修築(수축)하고 혹은 祭享(제향)드렸으나
어떤사람 作亂(작란)으로 바로 碑石(비석) 잃게되니
子孫(자손)들의 痛嘆(통탄)함이 어찌 極(극)에 있을 손가.
이제 檜谷(회곡) 돌아보니 우리 先祖(선조) 胎址(태지)일세.
착하신 夫人(부인)께서 이에서 늙으시니
田園(전원)에 물러나와 그 家庭(가정)을 즐기심에
需浦(수포)에서 供饋(공궤)받고 洛臺(낙대)에서 遊宴(유연)하니
江山(강산)도 생각나고 草木(초목)도 香氣(향기)나네.
世態(세태)많이 변하여서 그것마저 없어지고
平泉花石(평천화석) 그것만이 보배로 지켜왔네.
京鄕人事(경향인사)計劃(계획)으로 兩湖(양호)에다 通文(통문)해서
그의 터에 設壇(설단)해서 追慕(추모)하게 되었도다.
碑(비)에는 史蹟(사적)쓰고 壇(단)에는 祭祀(제사)모셔
百代(백대) 길이 氣通(기통)하고 八方(팔방)소리 같이하니
壽岑(수잠)은 가까옵고 花山(화산)서로 바라보니
하물며 陵洞(능동)산을 한 脈(맥)에서 갈라진곳,
儒林(유림)의 計劃(계획)으로 占(점)을 쳐서 詳考(상고)하여
아름다운 三尺碑石(삼척비석) 輝煌(휘황)하게 세우는데
이에 吉辰(길신) 擇(택)하오니 삼월 淸明(청명)시절이라.
봄비 처음 적셔주고 밤이슬은 방울지니
百代(백대)千年(천년) 길이 두고 제사드릴 땅이로다.
祭酒(제주)와 丹香(단향)으로 後孫(후손)들이 모여드니
洛東江(낙동강)물 흘러가고 騫芝山(건지산)은 푸르도다.
焚香(분향)煙氣(연기) 서리는데 先靈(선령)께서 降臨(강림)하사
行禮(행례)함이 嚴肅(엄숙)하니 福(복)을 많이 받을거요,
복많이 받음으로 尊靈(존령)또한 昭明(소명)하리.
이제부터 永遠(영원)토록 依支(의지)함이 있으리니
祭壇(제단)앞에 세운 碑石(비석) 於千年間(어천년간) 가오리다.
후손 통정대부 부호군 英洛(영락) 지음
서기 2002년 9월 22세손 榮煥 옮김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충렬공 묘소와 죽주박씨 할머니 묘소가 달리 조성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본 고유문 지은이 영락이란 삼소재 종락 선조를 말하는 것인가요?
▣ 김재이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잘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충렬공 묘소는 實墓, 할머니는 단소입니다. 할머님 묘소는 실전하여 아직도 찾지 못해 충렬공 유허지 근처에 설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본 홈 시조소개란 맨 아래에 에 올렸습니다.
▣ 金在益 -
▣ 김주회 -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입니다. 1321년에 민지 찬 문영공(김순) 묘지명에는 陰平郡夫人으로 봉해졌다고 되어 있는데, 冷平國大夫人은 언제 봉해진 것인가요?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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