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敬順王) 경모전(敬慕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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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2-09-22 02:44 조회1,843회 댓글0건본문
즐거운 한가위 보내고 계시지요.
성묘길에서 돌아와 홈을 방문하니 불씨가 가~물 가~물
불씨를 지피웁니다.
중복된 자료일지라도 혜량하시길.....
경순왕(敬順王) 경모전(敬慕殿)
신라말(新羅末) 56대왕(代王) 재위(在位) 9년 명(名)은 전(傳)이요, 시호(諡號)는 경순(敬順)이요, 문성왕의 6대손(代孫)이며, 이효종(伊孝宗)의 자(子)이고 모후(母后)는 계아태후(桂峨太后) 헌강왕(憲康王)의 딸이다. 경애왕이 죽은 후견훤(後甄萱)의 힘으로 왕이 되었으나 후백제(後百濟)의 광폭한 공격으로 국력(國力)이 점차 쇠약해지매 고려왕건(高麗王建)에게 평화적(平和的)으로 양국(讓國)했다.능(陵)은 장단(長端)에 있다.
당시 백관(當時 百官)은 지리멸열하고 대세(大勢)는 불리(不利)하여 통탄(痛嘆)하고 일시(一時) 성주산(聖住山)에 은거하였던 관계(關係)로 옥마산봉(玉馬山奉)에 신산묘지(神山廟址)하니 왈(曰) 경순왕(敬順王)이였다. 그리고 그 최하단(最下端)인 왕대산(王臺山)에 순유(巡遊)한 사적(事蹟)이 있어 왈(曰) 왕대산(王臺山)이라 칭(稱)했다 한다. 고(故)로 북민(北民)들이 시뢰(是賴)하기를 이를 숭앙(崇仰)하면 不可泯滅이라 하고 내건 사어자(乃建 祠於玆)하고 경순묘(敬順廟)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전설(傳說)에 의(依)하면 국조정화(國朝鼎華)하고 연구세심(年久歲深)에 우호무인(宇護無人)이라 옥마산(玉馬山)에 있던 사우(祠宇)는 실형(失形)하고 고허(古墟)는 단존초석(但存礎石) 파와이기(破瓦而己)러라 중고(中古) 불지하년대(不知何年代)에 거삼현동 금성(居三賢洞 金姓)에게 현몽(顯夢)하기를 조상(祖上)을 찾으라 하여 즉시(卽時) 심색중(深索中) 또 다시 현몽(顯夢)하기를 종상유이하(從上流以下)라 하여 심험중(深驗中) 하허물(何許物)를 발견(發見) 인양(引揚)하니 청황기이폭(靑黃旗二幅)의 비단으로 싼 것을 펴보니 『경순대왕 금전신주(敬順大王 金傳神主)』라 팔자(八字)가 완연히 써 있어 그때부터 이 위패(位牌)를 옥마산(玉馬山)에 다시 모실것이 아니라 동중(洞中)에서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시는 것이 가(可)타하여 인향산재(隣鄕散在)한 자손(子孫)들과 동민(洞民)들이 삼현리(三賢里)에 신괄묘패건사우(新适廟牌建祠宇)하였으나 적시 수호(赤是 守護)가 불충분(不充分)하여 자손(子孫)들이 거족적(擧族的)으로 규합(叫合)하여 옥마산(玉馬山) 기슭기인 남포면 창동리에 갱신사우(更新祠宇)하여 현금(現今)에 지(至)함.
호일(號日) 경모전(敬慕殿)이라 칭(稱)하고 연중사월초사일(年中四月初四日)에 행헌생폐지예(行獻牲幣之禮)한다.
후손대표(後孫代表)로 청라 김세열씨(靑蘿 金世烈氏)와 종친회장(宗親會長) 김동준씨(金東俊氏)가 관리수호(管理守護)한다.
<보령시 홈페이지에서 퍼 왔습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님덕에 불씨가 살아납니다.
▣ 김정중 - ㅎㅎ 불씨!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
▣ 김주회 - 발용 종친님께서 불씨를 이어가고 계시는 군요. 보령시의 경순왕 유적은 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 김은회 - 발용 아우님 명절 잘 보내는지요?
▣ 김재원 - 한가위 잘 보내셨습니까?
▣ 태영/문 - 대부님 불씨 지키신 덕에 잘 다녀왔습니다.
▣ 김윤만 - 발용 아우님 감사합니다.
성묘길에서 돌아와 홈을 방문하니 불씨가 가~물 가~물
불씨를 지피웁니다.
중복된 자료일지라도 혜량하시길.....
경순왕(敬順王) 경모전(敬慕殿)
신라말(新羅末) 56대왕(代王) 재위(在位) 9년 명(名)은 전(傳)이요, 시호(諡號)는 경순(敬順)이요, 문성왕의 6대손(代孫)이며, 이효종(伊孝宗)의 자(子)이고 모후(母后)는 계아태후(桂峨太后) 헌강왕(憲康王)의 딸이다. 경애왕이 죽은 후견훤(後甄萱)의 힘으로 왕이 되었으나 후백제(後百濟)의 광폭한 공격으로 국력(國力)이 점차 쇠약해지매 고려왕건(高麗王建)에게 평화적(平和的)으로 양국(讓國)했다.능(陵)은 장단(長端)에 있다.
당시 백관(當時 百官)은 지리멸열하고 대세(大勢)는 불리(不利)하여 통탄(痛嘆)하고 일시(一時) 성주산(聖住山)에 은거하였던 관계(關係)로 옥마산봉(玉馬山奉)에 신산묘지(神山廟址)하니 왈(曰) 경순왕(敬順王)이였다. 그리고 그 최하단(最下端)인 왕대산(王臺山)에 순유(巡遊)한 사적(事蹟)이 있어 왈(曰) 왕대산(王臺山)이라 칭(稱)했다 한다. 고(故)로 북민(北民)들이 시뢰(是賴)하기를 이를 숭앙(崇仰)하면 不可泯滅이라 하고 내건 사어자(乃建 祠於玆)하고 경순묘(敬順廟)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전설(傳說)에 의(依)하면 국조정화(國朝鼎華)하고 연구세심(年久歲深)에 우호무인(宇護無人)이라 옥마산(玉馬山)에 있던 사우(祠宇)는 실형(失形)하고 고허(古墟)는 단존초석(但存礎石) 파와이기(破瓦而己)러라 중고(中古) 불지하년대(不知何年代)에 거삼현동 금성(居三賢洞 金姓)에게 현몽(顯夢)하기를 조상(祖上)을 찾으라 하여 즉시(卽時) 심색중(深索中) 또 다시 현몽(顯夢)하기를 종상유이하(從上流以下)라 하여 심험중(深驗中) 하허물(何許物)를 발견(發見) 인양(引揚)하니 청황기이폭(靑黃旗二幅)의 비단으로 싼 것을 펴보니 『경순대왕 금전신주(敬順大王 金傳神主)』라 팔자(八字)가 완연히 써 있어 그때부터 이 위패(位牌)를 옥마산(玉馬山)에 다시 모실것이 아니라 동중(洞中)에서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시는 것이 가(可)타하여 인향산재(隣鄕散在)한 자손(子孫)들과 동민(洞民)들이 삼현리(三賢里)에 신괄묘패건사우(新适廟牌建祠宇)하였으나 적시 수호(赤是 守護)가 불충분(不充分)하여 자손(子孫)들이 거족적(擧族的)으로 규합(叫合)하여 옥마산(玉馬山) 기슭기인 남포면 창동리에 갱신사우(更新祠宇)하여 현금(現今)에 지(至)함.
호일(號日) 경모전(敬慕殿)이라 칭(稱)하고 연중사월초사일(年中四月初四日)에 행헌생폐지예(行獻牲幣之禮)한다.
후손대표(後孫代表)로 청라 김세열씨(靑蘿 金世烈氏)와 종친회장(宗親會長) 김동준씨(金東俊氏)가 관리수호(管理守護)한다.
<보령시 홈페이지에서 퍼 왔습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님덕에 불씨가 살아납니다.
▣ 김정중 - ㅎㅎ 불씨!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
▣ 김주회 - 발용 종친님께서 불씨를 이어가고 계시는 군요. 보령시의 경순왕 유적은 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 김은회 - 발용 아우님 명절 잘 보내는지요?
▣ 김재원 - 한가위 잘 보내셨습니까?
▣ 태영/문 - 대부님 불씨 지키신 덕에 잘 다녀왔습니다.
▣ 김윤만 - 발용 아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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