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先祖의 墨香을 찾아서] 21(김응하)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2-10-02 05:48 조회1,523회 댓글0건

본문

[先祖의 墨香을 찾아서] 21(김응하)





21. 충무공 金應河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디지털한국학

김응하(金應河)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의(景義). 철원출신. 고려의 명장 ★방경(方慶)의 후손이다.

1604년(선조 37) 무과에 발탁되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평소부터 그의 장재(將才)를 아끼던 ★박승종(朴承宗)이 병조판서가 되자 비로소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여러 사람의 질시를 받아 파직당했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박승종이 전라관찰사로 나가자 다시 기용되어 비장이 되었다.

1610년에 재차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며, 영의정 ★이항복에 의해 경원판관으로 발탁된 뒤 삼수군수(三守郡守)·북우후(北虞侯)를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조선에 원병을 청해오자, 부원수 ★김경서(金景瑞)의 휘하에 좌영장(左營將)으로 있다가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가 대패하자, 3천명의 휘하군사로 수만명의 후금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그도 전사하였다.

이듬해 명나라 ★신종(神宗)은 그가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한 보답으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으며, 처자에게는 백금을 하사하였다. 조정에서도 그의 전사를 가상히 여겨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海東名臣傳, 密庵集. 〈李貞一〉

*김응하 영정 <조중구 소장>

*김응하 조정비

*김응하 필적





부사공파이신 충무공 김응하(金應河) 장군은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경의(景義)이며. 1580년(선조13) 3월 철원군 어운면 갈운동 (현 하갈리)에서 고려의 첨의중찬 상장군 충렬공 김방경의 10대손 地四(지사)의 장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조선시대 무신의 최고 영예인 충무공 (※조선시대 忠武公은 이순신, 김시민, 김응하 등 10명 이내이라고 함) 으로 봉군되신 분으로 무신이면서도 필적을 남겨 2점이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필적 1점은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에, 또 1점은 안동김씨 화수록에 있습니다.

참고로 충무공 김응하 장군 영정 1점이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에 1점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중구 소장> 으로 되어 있는데 조중구 라는 분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근역서화징에 보면

충무공 김응하의 초상화가 너무 오래되어 닳아 없어져서 신묘년(영조41,1771) 봄에 화사 한종유로 하여금 모사하게 하여 중간했다 (중간충렬록) 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역서화징 (1928, 오세창)

金厚臣(김후신)

호는 이재. 벼슬은 찰방

충무공 김응하가

<적을 만나 군진을 해산하는 그림>과

<나무에 의지하여 적을 쏘는 그림>과

<죽은 뒤에 칼을 들고 선 모습>과

<두 장수가 항복하는 그림>은

전 찰방 김후신이 그린 것이다 (중간충렬록)



韓宗裕(한종유)

본관은 신평. 교수 한후량의 증손. 화원으로 벼슬은 감목관

충무공 김응하의 초상화가 너무 오래되어 닳아 없어져서 신묘년(영조41,1771) 봄에 화사 한종유로 하여금 모사하게 하여 중간했다 (중간충렬록)





국사편찬위원회 홈

金應河筆蹟 s1293

書畵 筆蹟

사자 1293

金應河

1(2), 초서, 25×15cm

필적 말미에 應河의 휘호, 근역서휘 제9책 所收, 촬영:1933. 3.

소장:경성 소격동 144 朴榮喆, 현 서울대박물관(1940 수증)

조선 중기 무신으로서 金方慶의 후손인 김응하(1580∼1619)의 필적.





안동김씨 게시판

김응하 장군 친필 시 해독 및 해석

김응하 장군의 친필시를 金益洙(제, 보명-泰益)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이 해독 및 번역하였습니다.





1. 친필 사진 원본

*1)발견일 : 2002. 4. 11 2)발견자 : 김태서(익) 3)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4)작성연대 : 미상



2. 한문 원본(김익수 해독)

尙之疏讒已回啓恐鏃. 上裁也未知如何. 曰更之鈒 百官同之. 雖水無官 烏得免雪. 唯在夜中相敍. 尙之必犯我. 非細奈何.

卽 應河 頓

3. 번역문

상(尙)의 상소에서 참소하니 이미 회계(回啓)에서 화살처럼 찌를까 염려됩니다.

상감께서 재가하셨는지 어떤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말에 의하면 다시 찌르려한다고 하며 모든 관료들이 그에 동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수군에 관원이 없다한들 어찌 설욕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밤중에 있으면서 서로 얘기해 보았더니 상(尙)이 꼭 나를 범하고자하니 조금이나마 한탄하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즉시 응하(應河) 올림









▣ 김항용 -

▣ 郡/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 김재원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