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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에서 <서애선생모부인곤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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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0-14 04:59 조회1,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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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에서 <서애선생모부인곤문기>를





2002년 9월 28일 역사교사시리즈 제4편 <집중분석,조선시대 여인 어떻게 살았.. >를 시청하는데 유성룡 선생의 어머니 (송은 김광수의 따님) 분재기가 나왔습니다.



율곡과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 위주로 설명되는 가운데,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유성룡의 어머니 김씨 (의성 사촌의 송은 김광수의 따님) 분재기를 유성룡 13대손 류시주 라는 분이 금고에서 꺼내와 보여주며 설명하는 부분이 방영되었습니다.



지난번 제1회 여름캠프 <안동 의성지역 성지순례> 때 충효당에서 관람하지 못했던 바로 그 분재기였습니다.



관련 내용만을 복사해서 소개합니다.









■ KBS1TV 역사스페셜



조선시대의 재산상속은 남녀차별이 없었던 것일 까. 취재팀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전통이 남아있는 안동 하회마을에 또 다른 분재기가 있다는 소 식을 들었다.



서애 ★류성룡의 종가인 충효당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분재기가 하나 있다.



현재 충효당을 지키고 있는 13대 후손 ★류시주씨 는 취재팀에게 그 분재기를 보여주었다.



분재기는 율곡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학자 류성룡의 형제들이 재산상속을 받은 기록이다.



자녀중 영의정 류성룡의 이름은 두 번째에 적혀 있다. 2남 3녀중 둘째이기 때문이다.

5남매는 아들딸 구별없이 똑같은 양의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둘째딸은 ★이윤수의 처라고 적혀있다. 결혼한 딸에게도 재산을 나눠줬음을 알 수 있다.



재산의 내용은 노비와 전답으로, 주목할 점은 수확량을 적은 대목이다. 밭 10두락에 수확량

15부 3속, 3속은 볏단을 가리킨다. 공평한 분배를 위해 작은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재산분배는 경국대전에 그 기준이 명 시돼 있다. 평분, 아들 딸 구별없이 똑같이 나누 는 것이다.



또 시집온 여성이 자식없이 죽은 경우 그 여성의 재산은 본가로 되돌려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가 상속받은 재산은 어떻게 했을 까? 유성룡 가문의 분재기에서 취재팀은 흥미로 운 사실을 발견했다.



5남매에게 재산을 상속해준 사람은 어머니 ★김씨, 남편과 별도로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 부인이 남편이 돌아가시고 그 후로는 80이 넘게 사셨는데 한 78,9,80 가까웠을 때

이것을 생시에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문과 동영상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ww.kbs.co.kr/history/vod.shtml)











■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ocp.go.kr/)



종 목 보물 460-2호

명 칭 서애선생모부인곤문기 (西厓先生母夫人昆文記)

분 류 고문서류

수 량 1축

지정일 1967.07.15

소재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

시 대 미상

소유자 유영하

지정문화재 유성룡종손가유물 (보물 460)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종손가에 전해오는 유물들 가운데 유성룡 선생 어머니의 곤문기로, 크기는 가로 362㎝, 세로 67.2㎝이다.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다. 명종 21년(1566)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예문관검열,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장군인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군비확충에 노력하였다. 또한 도학·문장·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가 죽은 후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안동의 병산서원 등에 모셔졌다.



한지에 행서체로 쓰였는데, 여러 곳이 벌레로 인해 훼손되었다. 이 문서는 선생 어머니의 분재기로 매우 희귀한 것인데, 분재기란 재산과 노비를 자식에게 나누어주면서 이를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문화재명 서애선생모부인곤문기(西厓先生母夫人昆文記)

서애선생모부인곤문기(西厓先生母夫人昆文記) 1축(軸) : 한지에 행서(行書)로 쓴 긴 축(軸)(크기 362㎝×67.2㎝)으로 곳곳에 충해가 있고 특히 첫머리는 손상이 심하다. 서애선생모부인(西厓先生母夫人)의 분재기(分財記)로 매우 예가 귀한 것이다. 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記錄)되었다.



재주모정경부인★김씨(財主母貞敬夫人金氏) (방형묵인(方形默印))



증가옹오촌질종사랑전영능참봉★이보(證家翁五寸姪從仕郞前英陵參奉李輔)(수결(手決))



삼촌질기자전참봉★김응남(三寸姪箕子殿參奉金應南) (수결(手決))



필집사촌손유학★신민(筆執四寸孫幼學申민)(수결(手決))













▣ 김항용 - 우와 귀한 자료에 감사합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영윤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김재익 -

▣ 김재원 -

▣ 태영/문 -

▣ 김윤만 -

▣ 郡/김태영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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