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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급 분청사기 묘지호(墓誌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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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1-08-27 20:06 조회2,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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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분청사기는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히 발전된 도자기로서

골동품세계시장인 [소더비] 경매장에서도 그보다 더오래된

고려청자보다도 더 높게 평가되며 질박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기법이 우리 민족을 닮은 듯 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분청사기로 된 지석은 별로 발견 된 일이 없는데 문온공의 아드님이며

성천도호부부사를 지내신 휘 明理 선조의 묘지가 있어 이에 소개합니다.

우선 분청사기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실물은 문온공파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아직 문화재계나 도자기학계, 금석문학계

어느곳에도 보고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선하여 우리 홈페이지 가족에게 먼저 사진으로나마 공개합니다.

myeongri.JPG紛靑象嵌正統4年銘圓筒形安東金公明理墓誌銘 해설

1.유사한 도자기 묘지로 정통14년(1449년)에 제작된 "분청삼감정통14년명원통형묘지"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매우 조잡하다.
이를 보고 우선 이름지었다.

2.粉靑沙器=紛粧廻靑沙器의 줄인말로, 이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우리나라 유일의 미술사학자였던 고유섭 선생께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지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이름지은 것이다.

3.紛靑沙器 陶磁器史=고려말 퇴락해가는 14세기 상감청자의 뒤를이어발생하였고 15세기 초 조선왕조의 기반이 튼튼히 닦여진 시기와 때를 같이하여 새롭게 서서히 탈바꿈하였다.  세종대왕 때에는 기법이 다양하게 발전하여 그 절정기에 이른다.  15세기 후반 이후 경기도 광주 일대에 백자 생산의 官窯가 국가에 의해 운영됨으로써 분청사기는 16세기에 들어와 점점 백자에 흡수된다.  14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 약 200년간 조선 도자기 공예 중 독특한 아름다움을 생산해 낸다.  다른 나라에서는 청자에서 백자로 곧바로 이행되는데 우리나라만이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중에 분청사기를 갖고 있으며 귀족적이며 섬세한 청자, 유교적 이념을 내포하고 풍만한 기형의 백자와는 달리 해학적이며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힘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4.제작시기=銘文에 확실히 나타나 있다.  正統四年은 서기 1439년이며 세종 21년이다.  분청사기의 절정기인 중기에 제작되었다.  그 중기중에서도 가장 발전기(1420-1450년)에 해당하며 이 시기는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과 업적을 남긴 세종(1418-1450년)때이다.

5.제작장소="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전국에 자기소가 139개,도기소가 185개 모두 324개소가 있다고 되어있다.  분청사기는 자기소에 속하며 지금 현재 확인된 곳으로는 약 10여개소가 있는데, 가마터로서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 관음리, 중부면 번천리, 남종면 삼성리, 초월면 학동리,충남 공주군 의당면 가산리, 중흥리, 연기군 창라리, 기룡리, 쌍류리, 공주군 반포면 온천리,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경남 진양군 효자리, 사천군 구암리, 고양군 송전리, 양산군 화제리, 가산리 등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자기의 질을 상품,중품,하품으로 표시해 놓았는데, 경기도에서는 광주군 중부면 번천리가 상품 생산지에 해당된다.  "김명리 묘지"가 어느곳에서 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다만 묘지의 내용이나 도자기 표면에 기법(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번천리, 퇴촌면 도수리의 가마터에서 나오는 陶片는 주로 象嵌, 印花 문양이 주를 이른다.)을 볼 때 경기도  광주일원에서 제작되었으리라 짐작된다.

6.제작기법=몸체에는 글씨를 상감하고, 윗 부분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으로 따로 만들어 붙였으며, 연잎으로 추측되는 삼각형의 문양을 투각하고 그 주위에 삼각 모양을 따라 음각선을 넣었다.

7.상감기법=12세기 중엽 이후로부터 13-14세기를 거처 15세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에 까지 적용되는 기법이며 한국의 대표적이고 독특한 무늬기법이다.  조각한 음각선에 정선된 백토를 넣어 다시 깎아내고 도자기 표면과 같이 다듬는다.

8.원통형 묘지가 온전히 발견된 예가 없고 기면 전체에 작고 정갈한 글씨를 상감한 예도 드물다.  陶磁器史 編年으로나 또 글씨체나 기형, 기법으로 상당히 중요한 도자기로 사료되어 史界에 공표하여 문화재로서 지정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분청사기의 자료는 도자기사 및 국립중앙박물관 발행도서, 이조도자백자편,이조도자분청사기편(계간미술 발행)를 참조하여 작성하였으나 잘못된 점은 연락하여 주시면 다음에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李朝도자기,李朝백자등 李朝를 붙이는 것은 일제가 朝鮮의 권위를 낮추기 위해 써온 말로서 朝鮮도자기, 朝鮮백자, 朝鮮왕조등으로 써야 합니다.  다만 책이름이 그렇게 되어 있어 (그것도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한 "계간미술"에서 그렇게 쓰다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용하였으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김영환  서울 557-0543  016-363-0543  solnae@paxnet.co.kr.

실물사진


myeongr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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