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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69) 중일전쟁의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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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2-10-31 20:14 조회1,7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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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백범선생님은 62세 되시는 해입니다.



이해 8월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한인애국단 및 미주 5개 단체를 통합하여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결성하시었습니다.



중일전쟁으로 호남성 長沙로 피난하기로 하고 대가족 백여 식구는 목선으로 남경을 떠나 보내시고,



안공근을 상해에 파견하여 안중근 의사 유족을 모셔오게 했으나 성사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동지들의 유족에게도 항상 깊은 관심과 돌보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후방교란을 위하여 특수부대를 만드시고 훈련시켜 유격대로서의 활동이 시작



되어 광복군의 일익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해 7월 일본은 소위 蘆溝橋 사건을 일으키고 본격적인 중일전쟁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노구교 사건이란 서안사변 이후 國(국),共(공) 양측은 일치단결해 항일하기로 원칙을 정하였으나



紅軍(홍군)의 개편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항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중국침략을 재개하였으니 . 즉 1937년 7월 7일 북경 근처의 盧溝橋(노구교)에서



훈련중이던 일본군은 사병이 실종되었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宿平縣(숙평현)성을 수색하겠다고 하여



중.일군간에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 이를 「노구교사건」, 또는 「7.7사변」이라 하며 이로써



제2차 中日(중일)전쟁이 일어나 중국은 1945년까지 8년간의 抗戰(항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일본은 8월12일 상해를 공격하였고, 이에 장개석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紅軍(홍군)을



8로군으로 개편하는 것에 동의하고 내전중지와 항일을 선언하게 되었으며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졌습니다. 제2차 국공합작은 1차 때와는 달리 중공이 자신의 래甘寧邊區(래감영변구)정부와



홍군이란 군대를 갖고 있어 명실공히 당 대 당의 國共(국공)합작이었습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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