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김주 와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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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김태영 작성일02-11-04 07:14 조회1,402회 댓글0건본문
퇴계의시
<次韻答金應霖, 林士遂在東湖見寄, 二首>
甲辰余癸卯冬下鄕, 病未還朝, 春雨君寄詩來
<김주, 임형수 두 친구가 동호에서 보내온 시를 받아보고 차운하여답함, 두수>
갑진口 내가 계묘년 겨울에 고향으로 내려 왔다가 병이 들어 조정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봄에 두친구가 시를 보내 왔다.
雪盡花開病臥村 / 눈 다녹고 꽃은 피었는데 병들어 산촌에 누웠으니,
消磨未盡只詩魂 / 삭고 갈리었으나 사뭇 없어지지 않은것은 다만 시혼 뿐일세.
榮枯輾轉回雙穀 / 영화와 몰락이 돌고 도는것이 두 바퀴통이 회전하듯 하니,
倚伏冥茫隔九혼 / 화와 복이 아득하게 섞여 있네, 궁중의 아홉문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芝朮養生顔益古 / 봉지와 용출 먹어 양생을 도모하니 낯은 더욱 고색을 띄게되고,
烟霞入骨語無煩 / 안개와 노을이 뼈속까지 사무치니 말을 번거롭게 할것도 없네.
山中氣味君知否 / 산중에서 사는 맛을 그대들은 아느가 모르는가?
世事都無一句論 / 세상일 도무지 없네, 한구절도 논할것이.
金君韶奏鳳來儀 / 김군이 옛날 노래를 연주하니 봉황이 날라와서 자세를 바로 잡았고,
林子兼將百步威 / 임형은 아울러 갖추었네, 백걸음 밖에까지 떨치는 위엄을.
故國春風留病客 / 고향땅에 봄바람 일어 병든사람 만류하고 있는데,
神交書札到紫扉 / 마음 통하는 친구의 편지가 사립문 밖에 와 있네.
半成山屋謨曾拙 / 멧집을 반만 이루니 헤아림이 본래 옹졸 하였고,
全落湖梅事太違 / 호당에 핀 매화 다 떨어졌을테니 조정으로 돌아갈일 너무 늦었네.
知我不材君最甚 / 나같이 보잘것 없는 재주 알아줄이 그대들 가장 으뜸이니,
可無容得會稽歸 / 어찌 용인하여 줄수없겠는가? 회계태수로 돌아가는 것을.
퇴계44세 봄에 답한시로 <요존록>에는 갑진년 2월17일 이라고 첨부 해놓고있다. 퇴계는 그 전해 11월에 예빈시(禮賓寺) 부정(副正)을 받았으나 부임 하지않고 고향에 머물러 있다가 김주가 보내온 편지에 답하면서 향리에 벼슬을 부탁한다. 그리하여 2월에 홍문관 교리로 다시 서울로 퇴계를 불려 올리었다. 이때 김주는 전랑으로 있을때였다.
전랑(銓郞): 조선시대 문무관의 인사행정을 담당하던 정5품관으로 조선 중기 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청요직(淸要職)가운데의 하나로 주로 홍문관 출신의 젊고 명망있는 문신중에 선임 되었다.
시의 맨 마지막 련 "可無容得會稽歸(가무용득회계귀)"의 회계는 절강성(浙江省)과 강소성(江蘇省)사이에 있는 지명. 한나라때 엄조는 회계현 오방 사람이었다. 엄조가 연회에서 임금을 모시고 한가로이 얘기를 하는데 임금이 엄조에게 고향에 있을때를 물어 엄조가 대답했다. 집이 가난하여 동서며 부자들에게 욕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소원을 물으니 회계태수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이에 회계태수에 제수되었다.
퇴계시풀이
중문출판사
이장우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솔내영환 - 보기 힘든 글을 읽게 되어서 가슴이 흔훈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문단공 화산군 김주 선조님과 퇴계 이황 선생께서 이렇게 가깝게 교류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귀한 글 읽었습니다.
▣ 김용주 - 화산군,문단공.17세손 입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次韻答金應霖, 林士遂在東湖見寄, 二首>
甲辰余癸卯冬下鄕, 病未還朝, 春雨君寄詩來
<김주, 임형수 두 친구가 동호에서 보내온 시를 받아보고 차운하여답함, 두수>
갑진口 내가 계묘년 겨울에 고향으로 내려 왔다가 병이 들어 조정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봄에 두친구가 시를 보내 왔다.
雪盡花開病臥村 / 눈 다녹고 꽃은 피었는데 병들어 산촌에 누웠으니,
消磨未盡只詩魂 / 삭고 갈리었으나 사뭇 없어지지 않은것은 다만 시혼 뿐일세.
榮枯輾轉回雙穀 / 영화와 몰락이 돌고 도는것이 두 바퀴통이 회전하듯 하니,
倚伏冥茫隔九혼 / 화와 복이 아득하게 섞여 있네, 궁중의 아홉문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芝朮養生顔益古 / 봉지와 용출 먹어 양생을 도모하니 낯은 더욱 고색을 띄게되고,
烟霞入骨語無煩 / 안개와 노을이 뼈속까지 사무치니 말을 번거롭게 할것도 없네.
山中氣味君知否 / 산중에서 사는 맛을 그대들은 아느가 모르는가?
世事都無一句論 / 세상일 도무지 없네, 한구절도 논할것이.
金君韶奏鳳來儀 / 김군이 옛날 노래를 연주하니 봉황이 날라와서 자세를 바로 잡았고,
林子兼將百步威 / 임형은 아울러 갖추었네, 백걸음 밖에까지 떨치는 위엄을.
故國春風留病客 / 고향땅에 봄바람 일어 병든사람 만류하고 있는데,
神交書札到紫扉 / 마음 통하는 친구의 편지가 사립문 밖에 와 있네.
半成山屋謨曾拙 / 멧집을 반만 이루니 헤아림이 본래 옹졸 하였고,
全落湖梅事太違 / 호당에 핀 매화 다 떨어졌을테니 조정으로 돌아갈일 너무 늦었네.
知我不材君最甚 / 나같이 보잘것 없는 재주 알아줄이 그대들 가장 으뜸이니,
可無容得會稽歸 / 어찌 용인하여 줄수없겠는가? 회계태수로 돌아가는 것을.
퇴계44세 봄에 답한시로 <요존록>에는 갑진년 2월17일 이라고 첨부 해놓고있다. 퇴계는 그 전해 11월에 예빈시(禮賓寺) 부정(副正)을 받았으나 부임 하지않고 고향에 머물러 있다가 김주가 보내온 편지에 답하면서 향리에 벼슬을 부탁한다. 그리하여 2월에 홍문관 교리로 다시 서울로 퇴계를 불려 올리었다. 이때 김주는 전랑으로 있을때였다.
전랑(銓郞): 조선시대 문무관의 인사행정을 담당하던 정5품관으로 조선 중기 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청요직(淸要職)가운데의 하나로 주로 홍문관 출신의 젊고 명망있는 문신중에 선임 되었다.
시의 맨 마지막 련 "可無容得會稽歸(가무용득회계귀)"의 회계는 절강성(浙江省)과 강소성(江蘇省)사이에 있는 지명. 한나라때 엄조는 회계현 오방 사람이었다. 엄조가 연회에서 임금을 모시고 한가로이 얘기를 하는데 임금이 엄조에게 고향에 있을때를 물어 엄조가 대답했다. 집이 가난하여 동서며 부자들에게 욕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소원을 물으니 회계태수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이에 회계태수에 제수되었다.
퇴계시풀이
중문출판사
이장우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솔내영환 - 보기 힘든 글을 읽게 되어서 가슴이 흔훈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문단공 화산군 김주 선조님과 퇴계 이황 선생께서 이렇게 가깝게 교류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귀한 글 읽었습니다.
▣ 김용주 - 화산군,문단공.17세손 입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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